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전력질주 한다고 다 이뤄지지 않는다. 그게 인생사다. 또 그래야만 한다. 원하는 대로 모두 이뤄지고 매순간이 행복가득하며, 만사가 모두 진실이라면 어쩌하겠는가? 감내하고 견딜 수 있겠는가? 부족하고 모자람이 삶의 끈인 것을. 인간수명은 특히 더욱 그러하리라. 어떻게 자기의 생존기간을 목표로 정하겠는가만 그래도 난 일단 80세로 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라 웃음이 나오지만 그리했다. 그러므로 백세는 애시당초 나에게 가당치 않고 가망도 없다.

그래도 천재일우 행운으로 백세가 되었을 때, 누가 내게 무엇을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를 생각해 본다. 사실 백세가 되었을 때를 예측할 수 없지만, 현 수준에서 상상해본다. 또 아무리 백세를 가정한다 해도 그때 가봐야 알겠지, 지금 백세가 된 경우를 가정해 말할 수 있겠는가? 혹자들은 어처구니없다고 실소하리라. 혹 백세가 되었다 해도 유명인사도 아닌 나에게 누가 묻기나 하겠는가? 그런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실제 백세까지 산다면 그 때 가서 지금 생각과 비교해 보리라.

출처 ; pixabay

사람이 오래 산다고 훌륭하거나 존경스럽지 않다. 생의 모범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잠시라도 생을 뒤돌아보면 그 자명함을 수긍하리라. 철이 들면 죽는다 했는데 철이 들어감일까? 살아갈수록 내 이력의 추함이 부끄럽다. 이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말글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행동은 그에 따르지 못했으니. 어떤 경우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만 그런 것일까, 인간이란 이런 존재일까를 생각하며 회한에 젖는다. 언제가 내 단점과 어리석음을 정리하여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배꼽을 잡고 통쾌하게 웃는다. 카타르시스 해소? 그녀는 나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더욱 통쾌했으리라. 나의 단점과 부족함을 나만큼 아는 자도 없을 테니, 합당하게 자아비판이 되었구나 여기고, 그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사후세계인 천국과 극락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어떻게 그를 확인하랴. 종교와 신앙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마음과 정신상의 위안은 충분하리라 본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낭하와 질곡이 기다리지 않을까? 살아 있음은 이런 사물사안의 현실을 인식하고 깨우칠 수 있음인데, 이런 생을 실증할 수 있는 이승이, 실증할 수 없는 저승보다 낫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장수를 그려 본다. 이는 사는 동안 수신과 수양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문: 백세를 축하드립니다. 건강비결이 무엇입니까?

답: 무슨 축하를... 쑥스럽습니다. 제가 초로 때, 거리에서 꾸부정한 연세 높으신 분을 보면 ‘나도 더 나이 들면 저렇게 되겠지? 음~ ’ 했는데 현실이 됐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살았군요.

우선 저 때문에 힘든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일찍 가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가끔 저보다 일찍 간 친구들과 젊은 나이에 가신 분들을 생각합니다. ‘난 이 나이까지 살고 있는데 그 분들은...’ 거기서 멈추곤 합니다.

오래 산 비결? 살다 보니 이 나이까지 온 거지, 무슨 큰 비결이 있겠어요. 그날그날 주어진 대로 살았고 매사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서 그랬지요. 물론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살게 해주신 조상님과 천지신명님께 감사드립니다.

문: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까?

답: 사실 이 한 목숨 유지하려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켰습니까? 식용이랍시고 내 작은 입으로 들어간 동식물들 말입니다. 살기위한 먹이사슬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항변할 수 있지만, 요즘 생각이 자주 거기에 미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를 끼쳤습니까? 알게 모르게... 피해도 주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주었겠지요. 더구나 남들보다 오래 살았으니 더 많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제게도 꿈과 희망이 있었지요. 초년시절엔 세속욕망이 상당했습니다. 누구 못지않았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던가요? 아니더군요. 저도 욕망을 이루고자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역량이 부족하여 억지도 부렸지요. 전후좌우 상하가 꽉 막힐 때도 있었고, 암흑상자 속에 갇힌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정도로 살았다는 게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한계를 일찍 깨달았다고 할까요. 명예욕과 권력욕도 있지만, 특히 물욕에서 그랬습니다. 물질이 필요하기는 하나 행복인생의 결정인자는 아니더군요.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평화로운 삶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정도면 차고 넘치지요.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뭘 더 원하겠습니까?

문: 그 또한 비결이 있을 텐데요.

답: 살아보니 만사만물을 대하는데 특별한 비결과 비책은 없습디다. 천하 만물과 세상은 늘 그대로인데, 그를 보는 제가 문제였습니다. 제 처지와 상황에 따라 그들이 달리 보였고 달리 대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지요. 모든 문제의 시종은 저에게 있었지요. 그러나 제가 백세까지 원만하게 살아왔음을 구태여 말한다면, 그것은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분수에 맞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평범하지요. 自足과 止足으로. 저에겐 삶의 일터가 있었고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니,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어요.

문: 예, 그렇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크고, 더 많이, 더 높이 오르고자 하는데요. 그 분수를 지키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까?

답: 한때는 저도 그랬지요. 분수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과 인생에 너무 크고 많은 것을 담으려하니까요. 원한다고 다 되지 않음을 알지만, 그를 지키지 못하기에 고달프지요. 저도 같았습니다만... 인생을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나, 세상을 울리는 무슨 큰일을 하고 사회적인 대성공을 위해 태어났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요. 평범함과 상식이란 분수를 알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저녁이면 해지고 아침이면 해뜨니 신비로운 천지자연이로다. 이보다 아름다운 행성이 우주에  또 있을까? 이곳이 천국이로다.

문: 분수를 지키고 현실에 만족하라는 말씀이군요. 후배들이나 권력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답: 무슨? 고맙고 미안할 뿐인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제가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고 능력도 못됩니다. 사실 저는 해야 할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지만, 그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약자들에게 죄송하지요. 그분들과 나누지 못했고 그분들에 비해 호의호식한 삶이 죄송스럽습니다. 그분들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고, 못남을 감추기 위해 잘난 척했던 것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는 책임자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요. 세상은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습니까? 그 분들이 시대조류에 맞게 해쳐 가리라 믿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면 오늘 현재가 가장 난세이고 위기라 말들 했지만,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지 않습니까? 다만 환경이 걱정이긴 합니다. 그것도 다 알아서 하겠지요.

문: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답: 그것 참. 이 나이 되도록 산 것도 고맙고 미안한데, 또 여러분께 짐이 되는 말씀을 더 하겠습니까? 다만 의식주에 너무 많은 재물을 소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단순하게 말하면 의식주의 해결과정이라 할까요.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모든 불공평과 환경파괴가 거기서 나오더군요. 저도 이 작은 몸 하나 유지하려고 너무 많은 물질을 소진했습니다.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에 그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지요. 반성합니다.

반면에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환경을 위해 제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을 희생시키고 수고만 받았을 뿐. 그래서 시신이라도 그들에게 온전히 주고자 수목장을 원합니다.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은 서약했습니다만, 제가 죽은 후 어떻게 처리할지 확신할 수 없기에... 제 시신을 가장 잘 썩는 헝겊에 싸서 나무 아래 묻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미생물과 땅속에 사는 곤충, 벌레는 물론 나무의 먹이가 되리라 봅니다. 작지만 죽어서라도 내 몸이 다른 동식물의 먹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가 말했듯이 아름다운세상에서 잘 살았습니다. 지난 삶을 뒤돌아보면 천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해와 달, 사계의 아름다움, 산과 들, 강과 바다,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 풀과 나무, 꽃과 나비, 각종 동식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이런 행성과 세계가 지구 말고 또 있을까요? 정말 멋진 세상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누리고 사십시오. 젊어서는 당연시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자신에게 당부한다면, 끝까지 善하게 살지 못했음이 아쉽습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이상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 양성숙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