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어르신 한글백일장 개최
옥천예총, 문해교육 저변확대 위해 대회 꾸준히 이어갈 것

지난 5일 옥천통합복지센터에서 우리지역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제 1회 어르신 한글백일장 대회가 열렸다.
지난 5일 옥천통합복지센터에서 우리지역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제 1회 어르신 한글백일장 대회가 열렸다.

우리지역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어르신 한글백일장대회가 지난 5일 통합복지센터에서 열렸다. 여태껏 누구에게도 말 못한 속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심사위원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행사를 주관한 옥천예총(회장 유정현)은 문해교육 저변확대를 위해 앞으로도 대회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옛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두루마리를 펼치자 ‘가을’이라는 주제어가 등장했다. 이날 참석한 26명의 어르신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을 시와 수필, 편지글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표현해냈다. 

이 날 장원을 수상한 이정욱(70, 이원면 윤정리)씨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A4용지 2장 넘는 분량의 수필을 썼다. 1시간 반 가까이 글을 썼지만 글을 더 다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정욱씨는 “가을은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고 덥지도 춥지도 않아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좋은 가을이 더 이상 좋지 않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수필로 풀어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퇴직한 이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기행문이나 일상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글을 계속 써왔는데 남들에게 글을 보여주거나 응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며 “뜻하지 않게 장원까지 수상해 자신감이 생겼고 글쓰기에 더 집중해 보려고 한다. 보고 마시고 먹는 행사도 좋지만 이번 어르신 백일장대회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대회 참가자들은 고단했던 일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특별상을 수상한 김홍매(80, 군서면 하동리)씨는 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키운 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형편이 좋지 않은 탓에 자녀들이 대학시험을 치를 때 시험에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홍매씨는 “아이들이 똑똑해서 결국 대학도 가고 지금은 좋은 직장에 다니며 효도도 하니 행복하다”며 “나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셔서 올케 밑에서 자랐다. 올케는 학교를 안 보냈다. 오후반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성적도 좋아 선생님이 계속 학교를 다니라고 권유했다. 근데 집에서는 학교를 보내지 않았고 공책이나 연필도 없어 힘든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옥천예총 유정현 회장은 “어르신 백일장대회는 안남어머니학교처럼 성인문해교육을 확대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앞으로도 대회를 계속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며 “당초 한글날에 맞춰 행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행사가 미뤄졌다. 다른 행사와 일정이 겹쳐 아쉽게 접수를 못한 어르신들이 많은데 다음에는 더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옥천군이 주최, 옥천예총이 주관, 옥천문인협회와 대한노인회옥천군지회가 후원한 제1회 어르신 한글백일장대회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장원 이정욱 △특별상 ▲김기재 ▲김홍매 ▲임동복 ▲하신호 △차상 3명 △차하 6명 △참방 10명.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가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한가위가 있는 좋은 계절이다. 오곡 백과가 무르익는 가을, 형형색색으로 물든 산하를 보고 있노라면 온갖 수심이 눈 녹듯 내리는 가을, 나는 이 가을이 4계 중 제일 좋았다. 

그러나 2020년 작년부터는 이 가을이 좋지 않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8일 요양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민족상잔 6.25 전쟁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 때 어머니 나이는 불과 24살. 꽃다운 나이에 어머니는 청상과부가 되신 것이다.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우리 어머니는 자식 셋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느라 만고풍상을 다 겪으시고 형극의 길을 걸으셔야 했다. 

24살 젊디젊은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자식 셋을 위해서 강원도 산골 평창에서 국토 최남단 해남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셨다.

당신은 없었고 오로지 아버지 없는 자식 셋만 보이는 어머니는 아버지 있는 자식들보다 못하지 않게 키우기 위해서 사시사철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장사를 쉬지 않으셨다. 그 흔한 봄 꽃놀이, 가을 단풍 한 번 제대로 구경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자식 키우는 데만 온힘을 쏟으셨다.

이랬던 어머니가 5년 전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예부터 자식 열은 한 부모가 키울 수 있어도 자식 열은 한 부모를 모실 수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각자 경제생활을 영위해야 하고 자식 셋과 며느리는 선뜻 어머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모시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시고 오로지 당신 삶을 희생으로 일관하셨던 어머니는 스스로 요양병원에 가시기로 결정하셨다. 어머님의 결정에 자식들은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5년동안 생활하시던 어머님은 2020년 10월8일 이 좋은 계절에 단풍 구경도 한번 못하시고 운명하셨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가을이 시작하는 9월부터 벌써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슬퍼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어머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살아 생전 즐기시지 못한 가을 단풍 마음껏 구경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자식 셋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지 않아도 되지요. 자식 없는 그 곳에서 부디 두다리 쭉 뻗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2021년 11월5일 / 불효자 올림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 원문보기 :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743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허원혜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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