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권력에 저항하다 실직한 참 언론인들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털었던 한겨레 창간 주주 마광남, 김신 주주를 뵙고자 늦가을 완도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누구보다 이른 아침 완도의 여명을 자주 올려주어 친숙해진 이름 마광남. 80여 성상을 바다와 함께 살아오며 완도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신 어른.
마광남 선생을 처음 본 지도 5년이 지나갑니다. 2018년 고창에서 비싼 전복을 서로 양보할 정도로 원 없이 먹게 하셨지요. 자신의 선행을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숨기려는 분. 그러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까칠해 보이는 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올겨울은 춥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배를 만드는 목수 마광남.
마광남 선생님은 한선기능전승자이며 전남 무형문화재 조선장입니다. 즉 전통 기법으로 우리 배를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장인입니다.
바다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경험과 완도와 주변 도서의 역사를 이미 <한겨레:온>에 올려주셨고, 배목수 이야기를 연재하여 배에 관한 전문 기술과 항해법까지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완도에 관한 흥미진진하고 해박한 이야기를 듣기에는 1박 2일이 너무 짧았기에 후일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완도 일주도로를 지나며 세상의 으뜸이요 머리라는 이름의 천지두(天地頭)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주마간산으로 바라만 보고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또 한 분 역시 한겨레신문 창간주주이며 자치분권 위원회 정책자문위원으로 완도의 미래를 개척하는 김신 부의장입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자신의 입신양명보다는, 공익과 정의를 위해 몸을 일으켜 헌신해온 30여 년. 김신 부의장은 완도가 해양 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해양 문화와 산업을 연계시켜 함께 발전해야만 완도의 미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완도에 가칭 해양문화대학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호랑이는 배가 불러 호랑이의 기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배가 고파 사냥을 나서기 위해 하산할 때의 호랑이가 가장 용맹스럽지요. 대륙을 향한 호랑이보다 해양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상이 장차 대한민국이 세계로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해양 문화의 중심 완도가 김신의 꿈과 희망이며, 젊은이의 미래이며, 대한민국의 번영이 될 것입니다.
또 한 분 수십 년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며 여러 나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완도에 정착한 (주)완도요트마리나 황장복 대표.
완도야말로 무궁무진한 즐거움과 가능성 그리고 완벽한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해양 수도라고 합니다.
덕분에 난생처음 요트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가 청정해역에서 신지도 명사십리(鳴沙十里) 해수욕장과 등대 아래 한가로운 강태공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무릉도원보다 더 행복한 해양 수도 완도의 꿈과 희망에 빠져들었습니다.
황장복 대표는 노화도에서 태어나 고향 완도에 터 잡은 지 10여 년, 지금도 완도의 10%도 다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지금은 세계 1위라고 하여도 규모나 물량 면에서 곧 추월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대형 선박 건조에서 저변확대를 통해 소형 고급화 전략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광남 장인에 의하면 1910년 무렵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전역의 선박을 조사하여 도면을 작성하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나라 전통 배를 복원할 수 있었는 데, 그 중 함경도 쪽 어선을 복원하였더니 현대의 요트와 유사하게 복원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고급 목조 K-요트의 탄생을 기원합니다.
다행스럽게도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이곳 청해진에서 우수한 무역선을 이용하여 바다의 패권을 장악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의 무역선을 복원한 마광남 기능 전승장이 후배를 양성하고, 김신 부의장이 해양문화대학을 설립하여 저변을 확대시키며, 황장복 대표가 K-요트와 해양 스포츠를 연구 개발하여 완도가 해양스포츠의 수도가 된다면 완도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머지않아 전 세계 젊은이들이 크루즈 선을 타고 완도로 몰려들어 K-문화를 함께 즐기는 꿈이 현실이 되기를 빕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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