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서늘했습니다

바람도 서늘했고

마음도 서늘했고

가슴도 서늘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따뜻했습니다

그 가을을 못내 잊을 수 없습니다

 

한 땐 모든 생명들은 왕성하고 찬란했지요

하지만 이젠 가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잎은 가지에서 떨어졌으니 뒹굴며 그곳으로 가야했고

꽃잎도 봉오리에서 떨어졌으니 미련 없이 길을 가야했고

열매도 제 소임이 끝났으니 떨어져 씨알이 돼야 했습니다

가는 것이 자연과 생명의 이치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다음 절기를 약속했습니다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와서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가을하늘은 파랗고 드높았으며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땅은 넓고 공고하여 만생명의 터전이 되었고

만물은 제 터에서 뛰놀며 생식하고 번성하였습니다

짙푸른 잎과 가지는 세상을 향해 두 팔을 펼쳤고

오색 꽃잎들은 하늘하늘 아름다움을 뽐냈습니다

가지마다 매달린 풍성한 열매는 만물의 배를 채웠고

생명들은 기쁨과 즐거움에 노래하며 춤추는 절기었습니다

그런 지난 가을을 추억합니다

 

나도 이제 그대 곁을 떠나 나의 길을 가렵니다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게 당연타 하겠지만

쌓은 숱한 정에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대여!

그간 우리의 사랑은 뜨겁고 포근했습니다

부디 서운타 하지 마소서!

우리 그만큼 행복했으면 되지 않겠소

나누고 쌓인 정 고이 간직한다면

남은 세월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으오리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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