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 11. 25. 12시30분
만남; 경천사지 10층 석탑 앞
참석; 우영, 우빈, 탄월, 한송

오랜만의 만남이다. 지난해(2020) 10월 마곡 서울식물원을 찾은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꼭 1년여만의 만남이다. 한데, 참석률이 저조했다.

범산과 정재는 사전에 사정상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우사는 어제저녁 갑작스러운 식중독으로 참석이 어렵겠다는 통보가 왔다. 그 밖에 다른 회원은 아무런 사전 통보가 없었다.

약속 시간 12시 30분, 우영이 제일 먼저 나왔다. 이어 멀리 동두천 우빈, 전곡 탄월이 왔다. 모두 4명만이 참석했다. 조촐한 모임이 됐다.

우선 점심을 먹으려 늘 찾았던 전주식당으로 갔으나 문이 굳게 닫혔다. 코로나 영향으로 휴업을 한 모양이다. 망설이다 대중식당으로 가서 돈가스로 간단히 마음에 점을 찍고, 2층 커피숍으로 올라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로 환담했다. 오늘은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며...

나란히 앉은 반가사유상,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 -

입구에 보이는 이 글귀를 읽으며 '사유의 방'으로 들어갔다.

통로 왼쪽 벽에는 인간의 마음속에 울렁이는 회로애락(喜怒哀樂)의 상념들을 형상화한 듯한 미디어 영상이 흘러갔다. 어두운 실내에서 불상과 만남에 익숙해지기 위한 전이(轉移)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라고 한다.

본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타원형 전시대를 따라 반가사유상의 전체 모습을 사면에서 두루 감상할 수 있도록 널찍하게 공간이 트여 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에 담으려 '찰칵!'하는 셔터 소리에 고요함이 깨진다. '사유의 방'이란 말이 무색하다.

검붉은 우주를 담은 방에서 1500년이 지나도록 생각에 잠겨온 두 분의 반가미륵불 사유상!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에 걸치고 오른 손을 턱에 괸 채 미소 짓는 그 모습!

439평방미터 규모의 본 전시실은 어둠을 통과하는 긴 진입로에 나타난 소극장 만한 크기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검붉게 빛나는 벽체.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한 광채를 내쏘는 조명 천장 등으로 이뤄진 얼개다.

특히 각 불상 위 천장에는 각각 특제 조명등 20개가 원형으로 설치됐고, 두 불상 앞 정면 천장에도 조명등 6개가 일렬로 배치돼 섬세하게 두 불상의 윤곽을 부각하도록 했다.

이 전시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인 프랑스 루브르 뮤지엄의 대표작 <모나리자>처럼 두 반가사유상을 한국 문화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 아래 최욱 건축가가 디자인한 것이라 한다.

최욱 건축가는 기존 단독상 전시 관행에서 벗어나 각기 독특한 조형 요소를 지닌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배치해 앞으로 계속 내보인다는 점이 이번 전시 개념의 핵심이라 했다.

한데, 전시실 어디에도 좌우 두 사유상 중 어느 것이 국보 78호고, 어느 것이 국보 83호란 설명이 없다.

사유상을 정면으로 오른쪽 것이 국보 83호이고, 왼쪽 것이 국보 73호이다.

벌거벗은 부처님, 국보 83호 금동미륵불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활짝 큰 양쪽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기에 그대는 웃통 벗고 울음 웃음 웃고 있는가!?

모든 것 다 내던진 뒤 삼산관(三山冠) 달랑 쓰고 지긋이 내려다보는 삶!

둥그런 코, 어진 두 눈, 오른 무릎 살짝궁 들어 오른 팔꿈치 드리 잡고 왼무릎 위 편한 자리, 엄지발가락 굽은 긴장. 손가락 살짝 모아 무건 시름 잡아내고 살포시 힘 뺀 허리, 하늘 땅 기(氣) 이어준 길이어라!

버려서 얻은 깨달음
신의 손 도공 마음
천 오백 해 뛰어넘어
고운 숨결 피어난다!

이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남성적이라면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여성적이다.

벌거벗은 부처님!
장식을 뺀 그 단순한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6세기 후반 삼국시대 주조된 높이 83.2cm의 국보78호 금동 미륵반가유상은 풍부한 균형과 함께 뛰어난 주조 기술을 선보이는 동양 조각사에 있어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불상으로 이러한 자세는 출가(出家) 전에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인 6~7세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대다수가 독립상으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늘 여기 전시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이 두 상은 반가사유 형식의 불상에서 뿐만 아니라 석굴암 조각과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다.

국보 83호 반가유상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어떻게 다른가?

이 두 불상은 우선 조형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머리에 쓴 보관의 형태이다. 국보 83호 상은 머리에 낮은 관을 쓰고 있는데, 이를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한다.

또한 국보 78호 상과는 달리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으며,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하였다.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분명하게 표현된 이목구비로 보아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국보 78호 보다 조금 뒤 시기인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대체로 보고 있다.

또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높이가 93.5cm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일본 교토(京都) 교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아, 우리나라 불상의 고대 일본 전래와 관련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한편,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제작국과 관련하여 정확히 출토지가 알려져 있지 않아 백제 혹은 신라의 것이라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신체와 천의의 힘찬 기세, 고구려에서 특히 중국의 북위와 동위 시대 양식의 불상이 유행한 점,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일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하나의 특정 국가를 지목하기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이 반가사유상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범용적 예술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정면, 측면, 후면으로 돌아가면서 두 불상의 차이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이 두 불상을 독립 공간에서 함께 전시한 일은 1986년, 2004년, 2015년 세 차례에 불과 했다.

오늘 우리는 진열장이 없고, 조도를 조절해 두 불상의 몸체에만 집중되는 정밀 조명을 사용한 덕분에 두 불상을 훨씬 도드라진 이미지로 대비해 볼 수 있었다.

우영은 "한송, 여기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며 아쉬어 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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