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6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완도를 찾은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탓이다. 완도에 가면 명사십리가 있고 그 명사십리를 걸으며 장보고의 넋을 기리고 싶어했던 건 나의 오래된 숙원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나의 발길은 완도에 이르지 못하고, 매번 목포나 광주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번에도 온전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지인들과 완도에 가기로 한 약속 때문에 방문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나의 게으름을 감추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완도를 이렇게나마 늦게 여행하게 된 것도 어쩌면 영화 '천녀유혼'에 나오는 듯한 어여쁜 여인의 혼령을 만나게  될 운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장보고에 대해서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밖에는 없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배운 장고보에 대한 기억은 한편으로 자랑스러운 영광의 역사지만 나중에 신라왕에게 배신당하고 청해진이 해산되는 쓰라림을 잊을 수는 없다. 이는 나만이 느낀 안타까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상왕 장보고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장보고의 후예로서의 아쉬움이다.

장보고는 동남아 일대를 주름잡던 해상왕답게 당나라와 일본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 교토의 적산서원은 일본 천태종의 시조를 모신 곳인데, 이곳에 활을 든 장보고(張保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중국 산둥반도 영성시의 적산법화원에서도 장보고의 영정을 찾을 수 있다. 9세기 서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하고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는 우리 역사서보다 중국과 일본 역사서에 더 상세히 소개된 국제적인 인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당나라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목(杜牧)은 [번천문집]에 장보고 편을 따로 만들어 장보고의 일대기를 소상히 다루었다. 그는 장보고를 안녹산의 난 때 활약한 곽분양에 비유하며,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동방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또한 일본 불교 천태종의 중흥조인 엔닌(圓仁)은 자신의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당나라를 여행할 당시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갔던 인연을 소개했다. 

“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 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습니다. 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갑니다.”

엔닌이 남긴 편지에는 장보고에 대한 존경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렇듯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신당서], 일본의 [일본후기]∙[속일본기]∙[속일본후기],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모두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출처 :www.wando.go.kr)
(출처 :www.wando.go.kr)

완도에 가면 장보고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완도사람들이 얼마나 과거 청해진이었던 완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완도에 이르러 장보고의 넋을 위로하던 나에게 어떤 여인의 혼령이 깃들게 된다는 건 그때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장보고를 추억하며 장보고 기념관에도 들르고 장보고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며 장보고의 넋을 새삼 위로했다. 구경할 건 다 하고, 맛있는 전복도 맘껏 먹어보며 하룻밤을 묵었으니 일행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완도를 뒤로 하고 떠나려는데 누가, 아니 무언가  자꾸 나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어떤 여인의 섬섬옥수 같이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누군가 돌아보니 어떤 아리따운 여인이 내 옷자락을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가만히 보니 일행 중 누구도 그 여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눈에만 그 여인이 보인다는 걸 알았다. 아! 완도에 이르러 드디어 귀신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백주 대낮에 내 눈에만 보이는 여인의 혼령을 만난다는 것은 실로 괴이한 일이요, 두려운 일이기도 하였으나 여인의 혼령이 나를 해치려는 의사는 없는 듯하고 나로서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일행과 서울행 티켓을 끊어놓은 나는 곧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야하니 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여인에게 재촉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서울에야 아무 때나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자신의 신세한탄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여인의 간청이 간절하고 여인을 뿌리치고 가기도 박절한 듯하여 일행을 먼저 서울로 올려보낸 나는 여인의 사연을 들어보기로 작정하였다. 

 그 여인이 누군지, 왜 우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 여인은 누구일까. 누구길래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눈물을 글썽거리는 걸까? 그것도 하필이면 나에게. 그 여인은 고향이 여수라고 했다. 고향이 여수인 여인이 어찌 완도에 머물며 낯선 남자에게 눈물로 하소연을 하는 걸까. 갈수록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여인은 신세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인의 신세타령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그 여인은 자신이 장군의 아내였다고 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절한 사연이었다. 여인은 장군의 아내로서 어떤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사실은 결혼 전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부친의 강압에 못 이겨 남편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하여 속을 태우다가 나이 오십을 넘기고 완도에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토록 반갑고 꿈에도 그리던 만남이었으나 사랑의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남편과 결별하고라도 마음 속의 남자와 같이 하고자 하였으나 그 남자는  여인의 마음을 받아주기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PxHere.com)

 

여인이 그 남자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남자의 메시지는 구구절절 애달픈 사연이었다.

- 차마 애처로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밤이면 창가에 앉아 달빛 속의 그대를 그리고, 별빛 사이에 그대를 끌어내 구름에 싣고 나의 곁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만 하오. 그대를 연모하는 마음으로 나의 곁에 함께 하려 하나 그대는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지는구려. 어이 한숨짓지 아니하겠소.-

메시지로 미루어 보건대 그 남자도 여인을 사모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인의 마음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한 남자의 처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여인은 젊은 시절에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했으나 부친이 아들만 귀하게 여겨 딸의 입학금을 지원하지 않아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도 반대하고 전혀 마음에도 없는 현재의 남편과 결혼해야만 했다. 자세한 신세 한탄을 올리기에는 사연이 너무 기구하여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서는 여인이 나에게 남긴 당부만 밝히고자 한다.

그 여인이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그 남자를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돌아가거들랑 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완도에 같이 온 일행 중에서 유독 나를 선택한 것도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남자는 현재 자신과의 모든 연락을 끊고 전화나 메시지도 차단했다고 한다. 그 남자와 연락할 길이 끊어졌기에 현실속에서는 여수의 자택에 누워 끙끙 앓고 있으면서도  오죽했으면 한맺힌 혼령이 되어 나에게 나타나기까지 했겠는가.

여인이 말하기를 서울에 가거든 모월 모시에 완도의 모 카페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자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내가 아는 그 남자는 얼마전에 상처하고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을 터인데 왜 주저하고 있는 걸까.

여인은 한번만이라도 그 남자를 보지 않으면 상사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며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애절한 여인의 심정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랴마는 그 여인의 당부만은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여인이 나를 겁박하며 말하기를, 그 낭군을 완도에 오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꿈속에서 나타나 나를 괴롭히겠다고 하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러마 하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여인은 이미 그 남자를 마음 속의 낭군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신세 한탄이 끝났나 했더니 그 여인이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야기를 다 끝낸게 아니냐고 묻자, 염치없지만 이왕 수고하는 김에 하나만 더 들어달라는 것이다. 그 남정네에게 꼭 좀 전해달라는 말은 다름이 아니었다. 제발 용기를 내기 바라고 사랑하는 마음을 져버리지 말아 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첫사랑의 연인이었던 마음속의 낭군과 열렬한 키스도 해보고 싶고, 그의 품에 안겨 밤새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를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노라고 했다.  그토록 간절한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남자의 도리가 아니겠냐며 반드시 그리 되도록 힘을 쓰겠노라고 나도 모르게 답변하고 말았다.   

나는 다음 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올랐다.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남의 애정사에 내가 끼어들게 된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고 내세울 것도 없으려니와 여인의 애절한 마음을 모른 체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 남자에게 여인의 당부를 가감 없이 전하였다. 

그 후 남자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남자가 완도에 내려가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는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완도의 꿈과 장보고의 기상을 추억에 남기고 여인의 이야기는 이쯤 해서 마치고자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그 남자가 나에게 고백한 말을 전하며 독자의 상상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심중의 애정과 애욕은 넘치나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니 이를 어이하리오. 하지만 그 여인이 정한 날짜와 장소에는 반드시 갈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시오."

여인의 말을 그대로 전한 나는 부담을 덜어낸 듯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아마도 그 남자는 밤새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을 터였다. 옛 사랑의 여인과 만남을 이어가며 사랑에 골인할지, 아니면  마음으로만 받아들이고 여인과의 사랑을 다음 생으로 미룰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리따운 여인의 혼령이 전하는 애절한 사랑의 사연을 접한 나로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마음이 가득하나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여인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지 않으니 나로서는 할 일을 무사히 마친 셈이다. 완도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완도에서 사랑의 전령을 맡게 되었는지 지금으로서도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천녀유혼에 나오는 듯한 아리따운 여인의 그림자 혼이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장보고의 한과 그 여인의 한이 클로즈업되어 그동안 나의 마음은 완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 여인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다보니 오늘은 기어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꼬박 지새웠다. 이제 천녀유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였으니 나도 마음의 짐에서 벗어난 듯하여 홀가분한 기분이다. 아마도 지금쯤 그 남자는 완도의 모 카페에서 그녀와 만나 사랑의 담판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 연인들이 그토록 그리던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빌며 글을 마친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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