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도읍지 예천을 찾아 길 떠난 우리 4인은 의구한 산천을 돌아보며, 간 곳 없는 인걸의 발자취를 따라갔습니다.

병산 서원을 뒤로하고 나서니 갑자기 과거에 장원급제라도 한 양 의기양양 보무당당 주막을 찾았지요.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데, 예쁜 주모가 눈웃음이라도 칠라치면 일필휘지 시 한 수 써주고 곡주 한 잔 얻어 마시면 금상첨화렷다!

경북도청의 맛집. 시절이 하 수상한지라 주모 대신 사미샘 친구의 환대로 깔끔하고 시원한 손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오찬을 즐겼다.
경북도청의 맛집. 시절이 하 수상한지라 주모 대신 사미샘 친구의 환대로 깔끔하고 시원한 손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오찬을 즐겼다.

자원방래(自遠方來)한 붕우(朋友)를 위해 박효삼 샘이 소개하는 비장의 명승지는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선몽대였습니다.

소나무 숲에 이르자 선대동천이란 탑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동천(洞天)이란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 신선이 사는 세계”라고 알려줍니다.

선대동천(仙臺洞天)
선대동천(仙臺洞天)

45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선몽대는 내성천 유역에 퇴계선생의 종손이 정자를 지었고, 당대 석학인 이황, 류성룡, 김상헌, 이덕형, 김성일 등의 친필 시를 목판에 새겨 전해져오지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선몽대와 주변 경관
선몽대와 주변 경관

너른 모래와 유유히 흐르는 강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보노라니 잠시 시간이 정지된 듯 세속의 희노애락도 멀리 달아납니다.

혹시 4~500년 전에 탁족을 왔을지도 모를 4인의 유생.
혹시 4~500년 전에 탁족을 왔을지도 모를 4인의 유생.

다음으로 찾은 곳이 천하명당 십승지지, 금당실 전통 마을입니다. 표지판 소개에 의하면, 병란이나 자연재해로부터 가장 안전한 10승지의 한 곳이고, 지형이 한양(서울)과 유사하나 강이 작아 도읍지가 되지 못해 반은 서울이라고 불렀답니다.

금당실 전통 마을 초입
금당실 전통 마을 초입
금당실 전통 마을의 초가. 돌도 많고 물도 많은 마을.
금당실 전통 마을의 초가. 돌도 많고 물도 많은 마을.

인류 역사는 물과의 싸움이었지요. 그런 면에서 예천은 물의 질과 양에서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예천의 '醴'는 단술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물이 좋았으면 단술이란 지명을 썼을까요? '泉'은 샘을 말하지요. 사미 박효삼 샘은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예천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았다’라고 전합니다.

무불통지, 모르는 것이 없는 이야기꾼 심창식 샘도 예천 출신 동료로부터 예천 자랑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고 합니다.

양반집의 사랑채와 장독대를 보니 과거 그 집안의 권세와 규모가 실감이 남.
양반집의 사랑채와 장독대를 보니 과거 그 집안의 권세와 규모가 실감이 남.
양반집 안채의 전경.
양반집 안채의 전경.

우리가 돌아본 금당실 옛 마을은 규모가 국내에선 가장 크지 않은가 생각했고, 집성촌임에도 양반집, 초가집 가릴 것 없이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으니 참으로 살기 좋은 지형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뒤로 보이는 정사(精舍)가 초간정
뒤로 보이는 정사(精舍)가 초간정

초간정을 찾아가는 길은 괴나리봇짐에 짚신이 제격이련만 사위가 적막강산인지라 최신 최고의 탈것을 이용했습니다. 놀랍게도 주인장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음성 인식 내비게이션을 위해 조수석에 앉은 내가 출두하여야 했지요.

이번 유람을 위해 많은 노고를 감수한 사미 박효삼 선생
이번 유람을 위해 많은 노고를 감수한 사미 박효삼 선생
초간정사 현판이 걸려있음.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학사나 서원
초간정사 현판이 걸려있음.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학사나 서원
개울에서 흐르는 냇물 소리와 송림이 잘 어우러지는 정사가 쌀쌀하였지만, 고금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시간이 아쉽기만 하였다. 
개울에서 흐르는 냇물 소리와 송림이 잘 어우러지는 정사가 쌀쌀하였지만, 고금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시간이 아쉽기만 하였다. 

초간정은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 초간 권문해가 1582년에 세웠고, 거듭된 화재로 다시 짓고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주변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많이 이용된다고 합니다.

K-문화의 뿌리는 바로 역사와 전통. 왼쪽 건물이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정사(精舍)
K-문화의 뿌리는 바로 역사와 전통. 왼쪽 건물이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정사(精舍)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과 윤장대를 견학하기 위해 산사로 들어섰습니다. 쇠락해져 가는 서원이나 정자 또는 전통 마을과는 다르게 용문사는 입구부터 규모와 화려함이 현란합니다.

개인의 수양보다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종교의 힘이 인간에게 월등한 영향을 준다는 박효삼 샘의 지적대로 한 눈에 비교되었습니다.

고해의 연속인 사바세계에서 기댈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리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천년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있겠지요.

용문사 대장전 내부. 국보 아미타 부처님과 후불목각탱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용문사 대장전 내부. 국보 아미타 부처님과 후불목각탱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대장전 좌우에 있는 윤장대. 불경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 글을 모르는 신도는 이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은 것과 같다. 동아시아에서도 사례가 없는 국내 유일 윤장대.
대장전 좌우에 있는 윤장대. 불경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 글을 모르는 신도는 이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은 것과 같다. 동아시아에서도 사례가 없는 국내 유일 윤장대.

영원히 남을 아름다운 여행에 동행해주신 세 분 박효삼, 심창식, 형광석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후일을 기약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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