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2018년까지 약 25년 5개월간 배관공으로서의 노동 생애! 그 결말은 무엇인가?

이번에 살펴보는 직업병 인정 신청인은 건설현장에서 배관의 설치와 교체 작업을 해온 배관공이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림프조혈기계 암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캐머런 디아즈가 연기하는 엄마는 혈액암 아이에게 필요한 조혈모세포를 얻기 위해 맞춤형 아기를 임신한다.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출처: 한겨레21,  2021-03-12.
캐머런 디아즈가 연기하는 엄마는 혈액암 아이에게 필요한 조혈모세포를 얻기 위해 맞춤형 아기를 임신한다.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출처: 한겨레21, 2021-03-12.

우선 작업 이력과 환경을 보기로 한다. 직업병 신청인은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 반도체 및 페인트공장, 조선소, 아파트 등 다양한 건설현장에서 배관공으로 배관의 제작, 설치, 교체 업무를 수행하였다. 대부분 일용직 형태로 근무하였으며 2009년도 이후 간간히 QC 관리자로서 직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신청인은 QC 관리자(품질관리)로 직접 배관업무를 하지 않았지만, 배관 설치 이후 부적합 판정이 발생했을 경우 개선을 담당했고 현장에 상주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였다. 신청인은 공사현장에서 신축 건물의 설비 중 소방 설비 배관 작업을 하였지만, 현장에서 방사성 폐기물은 취급하지 않았다. 증기발생기 교체 용역 업무를 수주한 담당 관계자는 신청인이 현장소장으로 사무공간에 상주하였으며 현장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신청인은 현장 배관업무를 동일하게 수행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보강판이 주배관에 있는 분기배관 용접 정렬.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배관제작 및 설치에 관한 기술지침, 2016.
보강판이 주배관에 있는 분기배관 용접 정렬.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배관제작 및 설치에 관한 기술지침, 2016.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신청인은 2018년 10월 26일 ■사업장에 입사하여 2018년 12월 3일까지 원자력 발전소 외부에 시공 중인 현장에서 현장소장으로 사무실 근무를 주로 하는 현장관리직 업무를 하다가 2018년 12월 3일 새벽에 일어났더니 입안에 혹이 있어 터뜨렸더니 피가 났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였는데, 걸으면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상이 있어 지나가던 행인이 신청인을 부축하여 숙소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당일 △의원에 내원하여 영양제와 수액을 맞았고, 처방전을 받아서 방문한 약국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여 12월 6일 □병원을 방문하여 시행한 혈액검사 상 범혈구감소증(혈구 세포가 감소한 상태)이 관찰되어, 앰뷸런스로 어느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시행한 골수생검에서 백혈병 세포의 침윤이 관찰되었다. 최종적으로 ‘ 전골수성 백혈병/레티노산 수용체 알파’(PML-RARA) 검사 결과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cute promyelocytic leukemia; APL)으로 진단받은 후 3차에 걸쳐 관해(寬解;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진 상태) 유도 치료를 받았고, 2019년 5월 27일부터 ATRA(tretinoin; 트레티노인)를 복용하며 유지요법(초기 암 치료 후 더 이상 암이 재발하지 않거나 악화하지 않도록 시행하는 후기 치료)을 받는 중이다. 평소 음주는 하지 않았고, 흡연은 과거 15년간 흡연 후 2004년부터 금연 중이며, 당뇨병 외 기저 질환은 없었으며, 신청 상병과 관련된 가족력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출처: 한국산업안전공단, 건강관리수첩 교부대상물질 건강간리 매뉴얼-벤젠, 2007.
출처: 한국산업안전공단, 건강관리수첩 교부대상물질 건강간리 매뉴얼-벤젠, 2007.

신청인 노동자는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약 25년 5개월간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 반도체, 페인트 공장, 아파트, 조선소 등 각종 건물의 신설 및 보수공사 현장에서 배관의 제작, 설치, 교체 작업을 장기간 수행함으로 인하여 벤젠, 1,3 부타디엔,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어 신청 상병이 발현하였다고 생각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질병 인정을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질병의 업무 관련성 확인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벤젠 노출 근로자의 건강관리, 2018.
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벤젠 노출 근로자의 건강관리, 2018.

2020년 제7회 역학조사평가위원회(2020.08.07.)는 노동자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신청인은 만 64세가 되던 2018년에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둘째, 신청인은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약 25년 5개월간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 반도체, 페인트 공장, 아파트, 조선소 등 각종 건물의 신설 및 보수 공사 현장에서 배관의 제작, 설치, 교체 작업을 수행하였다. 셋째, 신청인의 질병과 관련된 직업·환경적 위험요인으로는 벤젠, 1,3-부타디엔, 방사선, 고무산업 등이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째, 신청인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용한 방청 도료와 접착제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벤젠에 노출되었고, 화학플랜트 보수작업 중 1,3-부타디엔에 고농도 노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비파괴검사가 수행되었던 화학플랜트 현장, 조선업 현장에서의 간접 피폭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신청인이 2018년 12월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받은 이후 2020년 8월 역학조사평가위 심의 완료에 이르기까지 약 1년 8개월이 떠나갔다.

신청인이 이른 시일 내에 쾌차하길 빈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별이 떠도, 새가 날아도, 꽃이 피어도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3년 12월 24일

편집: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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