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근대국가 체제 자체가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윤석열의 자유민주 담론은 ‘자유’가 아니라 ‘통합’의 독재적 근성으로 연결된다

윤석열, 이낙연, 김종인, 원희룡, 손학규의 내각책임제는 민주 아닌 과두정부를 지향한다

윤석열 (사진출처: 한겨레 2021.8.2.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06213.html)
윤석열 (사진출처: 한겨레 2021.8.2.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06213.html)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80년대 민주화운동 하신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 민주화운동이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한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과 같은 길을 걸은 것”, “그 시대에는 민주화라고 하는 공통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됐다”, “그러나 실제 문민화가 되고, 우리나라 정치에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전체적으로 고도 선진 사회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아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의 말이 문맥으로 보아 딱 아귀가 맞는 것이 아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대충 추려보면 그 뜻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다”, “(아마도, 이 문장 주어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이’) 문민화, 민주화, 고도 선진 사회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우선 이 말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이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이념”으로 폄하되고 있다. 윤석열이 이해하는 ‘민주’는 외국에서 수입하면 안 되고 우리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또 그 “80년대 민주화운동”이 고도 선진 사회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아왔고 지금도 잡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명제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말하는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고” 또 “고도 선진 사회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민주화운동은 어떤 것일까? 아니면 윤석열은 ‘80년대’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일까? 윤석열은 지향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부정형으로 표현했을 뿐, 정작 어떤 것을 지향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가 밝힌 것은 ‘민주화운동’과 무관하게 정권교체의 필요성이다. 그가 부정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항으로 등장하는 것은 ‘도대체 문재인 정부가 뭐 잘한 게 있는지“,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엮이고 똘똘 뭉쳐진 소수의 이너서클(핵심관계자)이 돌아가면서 국정을 담당해서이다”, “대장동, 백현동 사건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데도 사건 관련자들, 초과이익 환수조항을 뺀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죽어 나가고 있다” 등이다.

윤석열의 이 같은 말이 갖는 문제는, 첫째,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게 없으면, 그 이전 정부는 잘 한 게 있어서 촛불혁명까지 일어나게 되었나?, 둘째, ‘소수의 이너서클(핵심관계자)이 돌아가면서 국정을 담당’하는 것이 문제라면, 윤석열 자신을 둘러싼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담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셋째, 대장동 관련하여 윤석열 자신은 연루된 바가 없나? 넷째, 검찰 수사 제대로 안 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 윤석열이 검찰에 있을 때는 검찰이 수사를 잘했다는 말 듣나?, 다섯째, 대장동 관련 사람 죽어 나가는 것이 누구 탓인 줄 알고 문 정부를 겨냥하는 것이며, 자신은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을 어떻게 확신하고 남의 탓을 하는가 하는 점 등이다. 자살을 하는 이도, 자살 ‘당하는’ 이도 그 원인과 배경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고, 섣불리 누구 탓할 수가 없다. 나쁘게 말한다면, 누구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사람들 ‘자살당하게’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뜻은 간단하다. 내로남불, 모든 탓은 현 정권에 있으니 국힘당과 자신에게 표를 달라는 것이다. “호남인들의 마음의 문만 열게 한다면 전국 선거에서 대승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렇게 되면(즉, 국힘당이 승리하지 않으면) 나라가 아니다. 망하는 지름길이다”“는 말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게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끌어들이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윤석열은 원래 민주와는 거리가 멀고, ‘통합’을 지향하는 독재적 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윤석열이 내거는 담론이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80년대 민주화운동’ 반대 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직 사직하고 대선판에 들면서 그가 내걸었던 표어는 공정, 정의, 상식, 법치 그런 것이었고, 또 그 후 한동안 ‘통합’을 내걸기도 했다. 그것이 민주로 바뀐 것이다. 사실은 바뀐 것이라기보다 앞의 개념들에다 하나를 더 한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민주’는 보편적 ‘민주’라기보다 자기 방식의 ‘윤석열식’ 민주, 아니면 윤석열주의(主義)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선 구호들보다 민주는 진일보한 것이다. 공정, 정의, 상식, 법치, 통합 등의 개념은 뜬구름 잡듯이 실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인 데 비해, ‘민주’란 ‘민(民, 민중, 인민, people)이 중심이 된다는 것으로 구체적이다. 그런데 ’민이 중심이 된다‘는 개념을 포장으로 들여와서 왜곡하여 ’민‘이 아니라 ’윤석열‘ 중심의 윤석열식 민주주의로 왜곡하고 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민주‘를 획일적인 가치와 획일적 내용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문정부 비난 일색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다양한 견해의 존재를 무시하고 획일성을 지향하는 윤석열식 민주는 정확하게 그가 앞서 말한 ’통합‘과 맥을 같이 한다.

민(民)이 주인이다라는 뜻의 민주는 ’결정의 주체‘가 민초라는 말이다. 정답으로서의 결론을 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결정의 주체가 ‘민’이라는 말이다. 그 민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은 때와 장소,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 결정의 주체로서의 민의 뜻은 한 가지로 수렴될 수가 없다. 다양한 뜻을 토론으로 수렴하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는 필히 다양한 의사와 갈등, 격열한 토론을 수반하게 된다.

민주는 일정한 사회경제 체제와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민초가 결정한다는 뜻이므로 그 결정에 따라갈 뿐이다. 그래서 다수 민이 자본주의를 원하면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원하면 공산주의가 된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 하나만이 반드시 민주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렇게 해서 남쪽  ‘대한민국(대한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에 기초를 두고, 북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둘 다 ‘민주’란 말을 쓸 수 있는 것이 그런 뜻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남북이 다 민(民)이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해방의 틈바구니에서 각기 다른 외세의 입김으로 남북이 갈렸고, 가난에 찌들고 ‘민주’의 경험이 없는 민초는 직접 결정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일제 식민지 잔재, 혹은 그와 결탁한 외세가 체제를 결정했다. 그 역사가 지금까지 내려와서 민초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마냥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기초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치 윤석열이 자기 뜻을 마치 ‘국민’의 뜻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과 같다. ”(현 정부가) 잘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게 국민의 중론이다“라고 할 때, 그 ‘국민’은 전체 국민이 아니다.

지금도 위정자들은 민초의 입을 막고 위정자들만의 결정권을 철옹성같이 옹호하려 하고 있다. 그 한 예가 내각책임제 담론이다. 간단히 말하면, 대통령제가 문제가 많으니 국회로 그 권한의 일부를 넘기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초가 보기에는 국회도 참으로 문제가 많고, 대통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들 위정자는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이 앗아간 국민개헌발안권, 국민소환권 등 민초가 공권력과 공직자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도 민초에게 다시 되돌려줄 생각이 없다. 이들은 민주가 아니라 위정자의 과두정치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반대하는 윤석열이 내각책임제 운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민초가 결정권을 갖는 민주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민초‘의 이름을 팔고, 속 알맹이는 자신이 가진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고 싶은 것이다.

그 독선의 윤석열 옆에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일단의 과두파가 내각책임제를 합창하고 있다. 그 주요 인물을 보면, 이낙연 전 총리로부터 시작하여, 원희룡 제주지사, 김종인 국힘당 선대위원장, 한동안 칩거했다가 다시 대선판에 등장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등이 있다.

손학규는 대선 출마 선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또 개헌으로 1987년제를 청산하고 “의회중심의 연합정치 새길 열겠다”고 천명했다. 손학규가 보기에 1987년 헌법은 국회를 대통령에게 종속시킨 것으로만 이해한 것에 틀림 없다. 그 눈에 민초는 보이지 않고 오직 위정자 의회와 대통형의 힘 관계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987년 헌법에 기초하여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도 권한을 가졌다. 오늘같이 지리멸열한 국회는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국회 그 자체에 주어진 직무를 유기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민초를 우롱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같이 ’내각책임제‘를 합창하는 이들은 ’민주‘가 아니라 의회 과두정치를 지향하는 이들이다. 윤석열이 언급한바, ’이너서클(핵심관련자)‘ 중심 정치에 대한 우려는 현 문 정부보다 오히려 전 박근혜 정부를 비롯하여 국힘당, 윤석열 자신에게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너서클(핵심관련자)‘의 폐단은 위정자 중심의 폐쇄적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일 뿐, 어느 특정 정부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각책임제 운운하기 전에 국회에서는 모든 권력의 주권자로서 민초의 정치적 발언권부터 제도화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하겠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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