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26일 오후,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다 거의 비슷한 시점에 올라온 두 개의 기사에 눈길이 붙잡혔다. 하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얼마 전 재판에 출석한 뒤 서울구치소로 돌아가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시점이 너무 얄궂고 절묘하다. 이 기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 동안 두 사람의 ‘같은 혐의, 다른 운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문서 위조 및 행사, 업무방해, 자본시장법 위반…. 김건희-정경심 두 사람이 똑같이 받고 있는 혐의와 의혹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2019년 10월 구속된 뒤 중간에 6개월 정도의 구속 만료 석방 기간을 제외하고 꼬박 1년 8개월가량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남편이 똑같은 다른 여성을, 그것도 자신의 아내가 받고 있는 의혹과 똑같은 혐의로 구속시킨 업적에 힘입어 대선주자 자리를 꿰찬 결과로 말이다.

“진솔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다.”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증명서 문제 등에 대해 <국민의힘> 쪽에서 하는 말이다. 야당뿐 아니다. 진중권 교수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어떤 경우든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며 “조국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진 교수는 정경심 교수 등 조국 전 장관 일가를 비판해온 대표적인 사람이다. “정경심 교수는 성모마리아다. 상장, 수료증, 표창장, 증명서 마구 처녀잉태한신 분” 등 휘황찬란한 ‘어록’을 숱하게 생산했다. 일말의 동정심도, 조금의 봐주기도 없이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김건희씨의 잘못은 사과하면 끝’ 주장의 대표자격인 진 교수에게 묻고 싶다. 정경심 교수에게는 사과나 해명할 기회조차 변변히 주었는가? 검찰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시작되기 전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사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검찰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속전속결 작전을 펼쳤다. 진 교수는 한 번이라도 정경심 교수를 향해 “진솔한 사과를 했으면 될 일인데 왜 사과를 하지 않아서 화를 자초했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오직 검찰 수사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수사의 총사령탑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정과 정의의 사도’로 칭송했을 뿐이다.

”정직이 최선“이란 당부도 마찬가지다. 과연 김건희씨의 사과는 ‘정직’했는가? 김씨의 26일 행사는 사과 내용에 앞서 형식부터 ‘정직’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언론은 김씨의 사과 발표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이라고 표현했다. 이 행사가 과연 ‘기자회견’인가? 기자회견(press conference)이라는 게 원래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니 그쪽에서 통용되는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니 ‘뉴스메이커가 저널리스트들을 초청해 정보를 전달하고 질문에 답하는 공식 행사’라고 나와 있다. 김건희씨는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기자들은 질문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맥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 이날 행사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냥 일방적인 ‘사과문 발표’다. 좀 더 장중하게 표현하자면 ‘영부인 후보의 대국민 담화’ 발표라고나 할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958.html)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958.html)

발표의 내용은 어떤가. 인터넷을 통해 ‘김건희 대표 입장문 전문’을 읽다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사과문’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제목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자신감에 넘치고 호탕했고 후배들에게 마음껏 베풀 줄 아는 그런 남자”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어라 늘 전화” “예쁜 아이를 낳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이것은 국민에 대한 사과문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공개적인 애정 고백문이 아닌가. 아내한테서 이런 용비어천가급 존경과 애정 표시를 받는 남편이야 무척 행복하겠지만 그런 글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김건희씨가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의 강과 높은 존경의 산을 넘어 어렵게 당도한 사과는 너무 허무했다. “부정확한 표기” “교명 혼동” “오인할 수 있는 표기”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등 사과라기보다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가까웠다. 김건희씨는 발표문을 읽으면서 울먹거리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 울먹거림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죄의 눈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서러움에 겨운 울먹거림으로 보였다.

김건희씨는 “저 때문에 남편이 비난받는 현실에 너무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건희씨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후보가 비난받는 것은 김씨의 생각처럼 단지 의혹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건희씨의 의혹에 대처하는 윤석열 후보의 반응‘도 ’비난받는 현실‘의 큰 원인이다. 윤 후보는 “전체적으로 허위 경력은 아니다” “시간강사를 어떻게 뽑는지 현실을 좀 보라” 등 김씨를 옹호하기 바빴다. 때로는 언론을 향해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후보 부인 검증’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인 검증에 대한 후보의 반응’도 중요한 ‘검증’ 포인트다.

김건희씨는 26일의 ‘사과 이벤트’에서 보도진의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기자들로서는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겠지만 질문 자체가 원천봉쇄됐다. 기자들의 수많은 ‘불발 질문’들에 더해 이런 질문 한두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당신의 잘못과 비슷한 혐의로 다른 한 여성이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남편이 그 여성에 대한 구속수사를 한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마침 김건희씨가 사과 이벤트를 연 날에 정경심 교수의 병원행 소식이 들려와서 머리에 떠오른 질문이다.

 

 

<편집자 주> 김종구 언론인은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서 한겨레21 편집장,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편집인,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남서울대 객원교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매스컴과 글쓰기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종구 언론인  kjg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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