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주인 되는 통일된 겨레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오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최 선생을 애도하며

                                                                         김 광 철

 

최 선생이 가는 날 오늘따라

며칠 멈칫했던 장미비가 마구 퍼붓는다

최 선생을 아는 이들의 마음을 읽음인지.

장례식장 제 상 앞에 놓인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니

훤한 이마에 곱슬곱슬한 머리를 하고

환히 웃으며

“형, 여긴 웬일이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나, 여기 있잖아.”

다정한 음성으로 말을 걸어온다.

따스한 손이라도 한 번 잡으려고

손을 내밀어 보건만

그는 기어이 손을 내밀질 않는다

향을 태우며 신주를 바라본다

‘顯考壆生...神位’에 눈길을 잠시 멈춘다

‘學生’ 맞아?

‘열사’, ‘투사’가 맞지 않아?

이런 칭호들이 입가에 맴돌다

이내 생각을 접고 만다

‘열사’ 면 어떻고, ‘투사’ 면 어떨 건가?

그런 말놀이 그만 하라며

받아놓은 막걸리 잔 거나하게 비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다

 

최고 명문이라는 대학,

전설의 80학번

그것도 ‘역사교육과’라

나는 그를 본 지 1년 여 밖에 되질 않는다

그를 잘 모른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탁주 잔이라도 부딪힐 땐

운을 떼어 보려 하건만

그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전두환이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고

광주를 피로 물들일 떼

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을지

듣지 않아도 다 보인다

역사 선생님이 되어 정의와 평화가 무엇이며

겨레가 외세에 침탈당하여 힘들 때

우리 선조들은 어찌했으며,

두 동강 난 겨레를 하나로 잇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건만

역도들이 그런 그를 가만히 두었겠는가?

 

전가, 노가가 활개 칠 때

고시원에 틀어박혀 법률서를 끼고,

당구알을 굴리며 술독에 빠져

세월아 내월아 하던 자가

큰 칼자루 쥐는 세상이 되었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내달리던 학우들을 비웃으며

검찰이 되었다

총장까지 시켜준 주인을 그 칼로 베고

이, 박, 전, 노, 이, 박의 길을 가겠단다

국민의 생각 따위는

당구알 정도로 보이는지

오백 당구 고수 실력 믿으라며

제 셈법대로 굴리고 가면서

자신은 당당하다고 한다,

 

최 선생,

가시려거든 그자의 세상 문턱을 넘어 보지나 말고 가셨으면

짜증이 좀 덜했을 텐데 말이오

최 선생이 아이들 앞에서 외치고자 했던

민중이 주인 되는 통일된 겨레의 꿈은

결국 토리에 의하여 또 한 번 농락당하는구려

힘이 빠진다

무기력하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리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후배, 자식, 후대들이여

내 꿈은 그대들 가슴에 묻어두고 가나니

그대들이여

내 꿈 이루어 주는 날 나는 벌떡 일어나

막걸리 한 말 받아놓고

그대들과 주거니 받거니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니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오

 

절 두 번을 하며

‘최 선생, 잘 가시게.’

‘민주화된 세상에 거듭나서 영면하시게’

너무 일찍 보내는 것 같아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김광철 객원편집위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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