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겨레> 27면에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 기사를 보았다. 지난 15일 인천 인하대 캠퍼스에서 학생이 추락·사망한 사건에 대한 <한겨레> 보도를 반성하는 기사다.

정은주 콘텐츠총괄팀장은 “10시 43분에 나온 <한겨레> 첫 기사 제목은 ‘대학 내 알몸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 숨져…경찰 수사’였다. 4분 후 편집자가 ‘기사 제목에 선정적·자극적 내용을 부각하지 않는다’는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판단하여 10시 51분 ‘인하대 교내서 피흘린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로 제목을 바꾸었다. 부적절한 표현을 신속하게 바로잡았지만 첫 기사 제목의 흔적은 구글에 남아 있다. 많은 누리꾼은 “젠더편향을 극복한 언론”이라며 칭찬했지만 때때로 부적절한 표현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할 때도 있다.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을 되짚어보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언론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고 고백한다.

사진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51436.html

이런 솔직한 고백이 참 좋다. 나의 청춘은 솔직한 고백이 어려운 시대였다.

남자 선배들이 지나가는 여학생에 대한 명백한 성희롱 발언을 해도 못들은 척 했다. 동기들은 그나마 내가 까칠해서 선배들이 더 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동료 남학생들이 나를 지칭한 듯 안한 듯 지나치듯 말하는 성희롱 발언도 ‘설마 나보고 그런 게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두어 번 듣고나니 나중엔 서글펐다. 직장 상사가 회식 때 부부관계에 대해 떠들어도 모두 고개만 숙이고 밥을 먹었고, 손금을 봐준다고 내 손을 잡고 만지작거려도 슬그머니 뺐을 뿐 따지지도 못하고 어디다 호소하지도 못했다. 징그러운 사람들이니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런 세월을 오래 살다보니 이런 발언에 대한 나의 태도는 ‘회피’라는 습관을 입었다. 불쾌한 발언을 듣더라도 그런 대화를 딱 끊거나, 하고 싶지 않다고 벌떡 일어나질 못한다. 되도록 대화를 바꾸려 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자리를 빨리 파할 생각을 할 뿐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두고두고 화가 나서 다시는 그런 사람들 모임엔 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아직도 잘못된 표현에 즉시 당당히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겨레>는 “성차별·성범죄 보도 악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왔지만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라고 한다. 환갑이 넘은 나도 그런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너무나 오래 되어 시도조차 못해보진 않을까? 그런 시도에 '할머니가 유별나네~~~' 소리나 듣지 않을까?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