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사랑채를 집 당(堂)이라 하고 안쪽에 자리한 방을 방 실(室)이라 했으니, 당은 주로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요, 실은 집주인이 잠을 자는 곳이리라. 내실(안방), 객실(손님 방), 화장실 등등에서 보듯, ‘실’은 대단히 사적인 공간이라 타인이 침해하면 곤란하다는 뜻을 머금었다. 한편, 어렸을 적에 많이 들었는데요, 할머니는 고씨 집안으로 출가한 딸을 ‘고실’(高室)이라 불렀다. ‘고실’은 고씨 집안의 방이자 2세를 양육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왕실, 어떤 영상이 머릿속을 지나가는가? 왕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 즉 왕의 사생활(私生活) 공간이다. 더 좁히면, 왕실은 왕이 잠자는 곳이다. ‘잠잔다’는 문자대로 실제 잠을 잔다는 뜻이기도 하나, 때로는 ‘남녀가 함께 잠잔다’처럼 음양합덕(陰陽合德)을 뜻한다. 본래, 왕실은 왕과 그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 이뤄지는 영역이다. 뒤집으면, 왕실은 순전한 공적 공간으로 보기는 어렵다.

왕조체제는 아닐지라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권분립에 기초하여 선거를 통해 뽑힌 대통령은 만인지상(萬人之上)이다. 대통령은 거의 모든 권력을 빨아들인다. 블랙홀(black hole)과 다르지 않다. 민주체제의 대통령은 왕조체제의 왕에 대응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왕실에 대응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내밀한 사생활 공간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사실을 잊은 채 권력에 취해 자기를 왕으로 동일시할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겠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의 모습.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06-14.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의 모습.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2022-06-14.

이명박 정부 시기(2008.2.25~2013.2.24.)에, ‘대통령실’(大統領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보좌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으로서 2008년 2월 29일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개편하여 발족했다. 그 근거는 정부조직법[법률 제8852호, 2008.02.29 전부개정] 제14조였다. 당시 대통령실장은 순서대로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등이었다. 대통령실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3월 23일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고, 경호 업무는 대통령경호실로 이관되었다(위키백과).

정부조직법[법률 제17814호, 2020.12.31, 일부개정, 시행 2022.1.1.] ‘제2장 대통령’은 제14조(대통령비서실), 제15조(국가안보실), 제16조(대통령경호처) 등을 두었다. 현행 정부조직법에는 ‘대통령실’이 없다. 현행 대통령실은 과거 ‘청와대’에 대응한다. 청와대는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한 시설이라는 고유명사였다. 즉, 청와대는 법률에 명시된 개념은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실의 조직도.  출처: www.president.go.kr/ko/group_new.php
제20대 대통령실의 조직도. 출처: www.president.go.kr/ko/group_new.php

제20대 대통령실의 누리집을 살펴보니, 그 조직의 양대 기관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다. 2022년 7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하는 공간에 대한 공식 명칭은 ‘제20대 대통령실’이다. ‘대통령실’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대통령실과는 다르게 정부조직법에서 보이지 않는 명칭인지라, 무엇인가 뒷받침이 부족하고 생경한 이름이다.

한겨레가 보도하길(2022.06.14.), 대통령실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의 새 이름을 정하지 않고 당분간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는 지난 6월 14일 대국민 공모를 통해 가려낸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등 후보작 5개를 두고 논의했으나 결국 기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경복궁 근정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경복궁 근정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그 누가 모르랴,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왕조 시대의 법궁(法宮)이다. 왕권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왕이 평상시에 직접 사무를 보는 중심 궁궐이다. '경복‘(景福)은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이란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Geunjeongjeon Hall)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다.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이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왕조시대에도 왕이 사무를 보는 공간을 왕실, 혹은 왕궁이라 하지 않았다. 조선왕조는 지향하는 바와 그 실현방안을 각각 내포하는 ‘경복궁’과 ‘근정전’으로 왕권과 그 발현방식을 표상하였다. 한편,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비서실이 위치한 건물이자 대통령 관련 업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을 '여민관‘(與民館)으로 불렀다. 문자대로, 여민은 ’국민과 함께 더불어‘이다. 여민관은 국민과 함께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곳이라는 뜻이겠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가. 이른바, 여민동고락(與民同苦樂)이다.

청와대 여민관. 출처: www.opencheongwadae.kr/introduce-map07
청와대 여민관. 출처: www.opencheongwadae.kr/introduce-map07

‘제20대 대통령실’, 그렇다면 조선왕조 20대 임금 경종은 ‘제20대 왕실’이라 했을까? 2022년 7월, 우리는 왕조시대보다 못한 유리창 틀(frame)에 갇혔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내게 밀물로 밀려온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文民政府)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參與政府)로 각각 자기의 정부를 불렀다. 각 정부의 별칭만 봐도 그 당시의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그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는지가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바뀌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무인정권, 즉 군사정권에서 일반 국민이 수립한 정부로, 더 발전하여 국민이 주인으로서 기능하는 정부로, 더 나아가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로 발전하는 길을 지향했다.

그 이후 권력을 쟁취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가 무엇을 지향할지 몰라서 그랬는지, 각각 그냥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라고 불렀다. 아마도, 자기 이름 석 자를 지향한다는 뜻이렷다. 과장하면, 자기 성깔대로 가겠다는 뜻이리라. 자기를 객관화하는 잣대가 없으니, 흔들리는 진폭은 컸고 균형 잡힌 기간은 길지 않았다. 각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그랬고 그렇게 나타나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2022-08-0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2022-08-03

대통령실 명칭도, 정부가 지향하는 자리매김주제(positioning theme)도 객관화해서 제시하지 못하는 ‘제20대 대통령실’을 마주하노니,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거센 삼각파도(초저출생·초고령화, 인구감소, 세계 패권 변동 등)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펼쳐지려나? 각자도생해야 하나요? 여러 물음표만 난무하지요.

대한민국 104년 8월 3일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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