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미국 사람 개개인이 모두 그렇게 처신하지는 않을지라도 미국은 자국의 세계전략에 맞춰 세계를 우지좌지(右之左之) 해왔다. 그 과정에서 애먼 나라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왔음은 아무도 부인하지는 못 하리라.

지난 17일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째다. 그런데도 사회부종리 겸 교육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의 의자는 빈 채로다. 대선 과정에서 없애겠다고 천명한 여성가족부 장관은 임명됐다.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 장관의 핵심 임무는 잘 설거지하는 일이겠지요. 여성가족부는 이른 시일 내에 설거지하고 찬장(饌欌)을 새롭게 정돈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헛갈리게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간으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아직 뉴스로도 접하지 못했다. 현 대통령의 지도력과 협상력, 현 정부의 일머리가 각각 어느 정도인지를 소년처럼 해맑은 눈으로 살피는 사람은 이미 판단했겠지요.

이러한 미증유의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가 한미동맹 지상주의로 읽힘과 동시에 미국 ‘백악관’이 무슨 뜻인지 갑작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본받고자 하는 미국의 대통령 업무공간이 어떤 연유로 지금처럼 불리게 됐는지를 문자대로도 그 파생된 의미로도 풀어보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다.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삼는다면, 적어도 미국의 좋은 양상과 행태는 닮아가야 자연스럽겠지요.

첫 번째 의문이다. 왜, 미합중국에서는 대통령이 일하는 곳을 백악관(White House)으로 이름 지었을까? 말하자면, 백악궁(白堊宮; White Palace)이라 하지 않고 백악관(白堊館)으로 부르는 연유는 무엇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예해방일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에 서명한 뒤 흑인 사회 지도자 등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겨레, 2021-06-18 09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예해방일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에 서명한 뒤 흑인 사회 지도자 등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겨레, 2021-06-18 09

그 뜻을 상상해보건대, 백악관은 보통 사람과 함께 완성을 향해 나아가되 명명백백하게 국사를 다루는 공간으로 풀어진다. 첫째, 백악관은 외벽이 하얗다. 악(堊)은 백토로서 빛깔이 희고 부드러우며 고운 흙이다. 1814년 8월 미영전쟁 시기에 영국군이 저지른 방화로 그 외벽이 검게 그을렸는데, 복구할 때 외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한 연유로 백악관이라 불리기 시작했다(위키백과). 백서(白書; white paper)는 원래 정부가 어떤 사안이나 주제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정리하여 발간하는 책이다. 고용노동부는 해마다 ‘노동백서’를 발간한다. 말하자면, 백색은 국정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겠다는 뜻이리라. 그렇다고 음습한 독버섯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백악관이라고 작명한 자가 아마도 헤아리지 못했을 텐데요, 한자문화권에서 흰 백(白)은 99를 뜻한다. 白은 {一, 白}으로 분해되는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제외한 글자이기에 99로도 통한다. 99세를 백수(白壽)라 부른다. 요컨대, 백(白)은 완성을 의미하는 백(百)을 지향한다는 뜻이리라. 셋째, 궁(Palace)이 아니고 관(House)이다. 관(house)은 보통 사람이 사는 집이다. 평범한 주택이다. 백악관은 백악관(白岳館)이 아니다. 눈 덮인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집이 아니다. 요컨대, 백악관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왕조시대의 왕처럼 군림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렷다.

1930년대 미국의 한 가정에서 사람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도서관 소장. 한겨레, 2020-08-25
1930년대 미국의 한 가정에서 사람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도서관 소장. 한겨레, 2020-08-25

두 번째 의문이다. 왜, 대통령이 실제 일하는 사무실은 ‘타원형 집무실‘(Oval Office)로 불릴까? 오벌(oval)은 타원형(楕圓形)이다. 타원형은 달걀의 윤곽을 닮은 평면상의 닫힌곡선이다. 문자대로, 길쭉한 원형이다. 타원은 평면 위의 두 정점(定點)에 이르는 거리의 합이 일정한 2차원 점의 궤적이다. 두 정점은 타원의 초점이다. 타원은 두 초점에 이르는 거리의 합이 초점거리(두 초점 사이의 거리)보다 크다. 타원형 집무실은 내게 상당히 수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타원의 개념을 사회 부문에 적용하면 타원은 어떠한 의미로 풀어질까? 어떤 은유(metaphor)를 품었을까?

첫째,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 예컨대, 지구의 공전궤도는 타원이다. 타원은 천체 운행의 섭리를 표상한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모행사위원회 제공. 한겨레, 2022-08-17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모행사위원회 제공. 한겨레, 2022-08-17

둘째, 타원은 원(圓; circle)을 지향한다. 즉, 타원은 두 초점 사이의 거리가 0(zero)으로 접근하면 원으로 수렴한다. 집합론으로 풀면, 원은 타원의 범주에 들어간다. 결국, 타원은 두 초점이 일치하면 원이 된다. 원은 평면 위의 정점에서 이르는 거리가 일정한 점의 궤적이다. 따라서 타원의 특수한 경우가 바로 원이다. 원(圓)은 모난 곳이 없고, 부드럽다. 원불교(圓佛敎)에서 동그란 원은 ‘일원상(一圓相, ○)’으로서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상징한다. 원(圓)은 원만·구족·완만·충만을 의미한다. 또한, 원은 빛이다. 이른바, 원광(圓光)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은 시험문제에 답이 맞으면 붉은색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줬다. 동그라미는 답이 올바름을 의미했다. 요컨대, 타원은 원이 함축하여 드러내는 완성을 지향하여 초점거리를 줄여가는 역동성(dynamic)을 지녔다고 봐도 좋겠다.

셋째, 타원의 두 초점은 어느 사회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응한다. 가진 자와 와 못 가진 자의 거리가 커질수록, 두 집단 간의 각종 격차가 커질수록, 어떤 사회가 그리는 타원은 매우 길쭉한 형태가 되리라. 거꾸로, 그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 사회의 타원은 부드럽고 원만·구족한 원의 형태에 가까워지리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2022-05-23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2022-05-23

미국 대통령은 천체 운행 섭리가 작용하는 ‘타원형 집무실’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 간의 거리를 필요에 따라서 어떻게 늘리고 좁힐지를 모색하리라. 그 지향점은 원만·구족한 원이겠지요.

여민동고락(與民同苦樂), 평범한 사람과 더불어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해본 경험이 적어 공감 능력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나 그 지망생은 미국의 백악관 ‘타원형 집무실’이 은유하는 바를 꼼꼼히 살펴보면 자기의 발전에 적잖은 도움이 되겠지요.

올해로 서거한 지 13주년이 된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김대중과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미합중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과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내 머릿속을 스치면서 백악관 ‘타원형 집무실’의 메타포가 영상으로 겹쳐 지나간다.

대한민국 104년 8월 22일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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