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우’의 논리는 집단지성을 갖춘 민초를 병신 취급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발명품”이 아니라 원시시대에도 존재했다.
스위스는 7명 대통령의 합의체이다
당원, 민초는 중우의 이데올로기(가짜이념)에 져서 물러설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집단지성을 논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우(衆愚)를 논한다. 전자는 여럿이 모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된다는 것, 반대로 후자는 여럿이 모이면 군중심리가 작동하여 어리석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반대개념인데, 우리 주변에 모순 없이 공존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우는 민초가 권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맥락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민초가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면, 군중심리가 작동하므로 위험해지니, 소수에게 그 권력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권력을 위임받은 소수가 자신들의 인기가 어떤지를 묻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여론조사를 한다. 그런 경우 민초가 표하는 여론 향배는 위험한 군중심리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정책 혹은 인물에 대한 가치 평가의 의미있는 지표로 간주된다.

정리하면, 민초는 집단지성을 갖추고 있으나, 절대로 직접 권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우 이론이다. 권력은 소수만 행사한다. 그런데 소수가 일인이면 독재가 되고, 여러 명으로 구성되면 과두(寡頭)정치가 된다. 소수의 예로는 행정부 각료나 300명으로 구성된 국회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요즘 일인 대통령, 소수 장관들은 물론이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노라면, 보통 민초보다 더 낫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 못한 것 같아 속이 상할 정도이다. 이른바 도덕성에서도 그러하고, 능력에서도 그러하다.

그런데도 왜 민초가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여론조사 하듯이 정책에 찬반을 묻거나, 여러 개의 정책 가운데서 민초가 선택하라고 하면 될 일이다. 왜 민초는 대의할 사람을 뽑기만 하고 그 사람에 대해 아무런 기속성도 없는 여론조사에 응하기만 해야 하나? 왜 여론 수렴을 넘어서, 잘못한 위정자, 관료들에 대해서 감시,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할까?

한마디로 ‘중우’의 논리는 집단지성을 갖춘 민초를 병신 취급하는 것이다. 대의제라는 미명하에 생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고 입을 틀어막고는, 대의 위정자가 무슨 짓거리를 해도 민초가 견제 처벌할 수 있는 제도는 갖추어 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민초는 ‘어리석은 군중’이므로, 절대로 결정권을 가지면 안 되고, 부패한 위정자를 불러서 처벌할 능력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중우’의 논리가 급기야 한국의 대의정치를 부패의 도가니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유시민이 <신장식의 신장개업> 대담(인터뷰)에 나와서 대통령 윤석열이 민주정치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우선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첫째,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실을 두고 ‘중우’ 정치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 뜻은 ‘어리석은 민중’이 투표를 한 것이라 민주정치에 어울리지 않은 이를 선출을 했다는 것, 다시 말하면, 민중이 어리석어서 윤석열이 뽑혔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발명품이라서, 이 고도의 제도를 다루기에 윤석열이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한다.

유시민이 말하는 이 두가지 이유는 다 틀렸다. 첫째, 사람을 잘못 뽑는 것은 민중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일인이나 소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민초가 모였을 때만 우(愚)를 범하는 것(중우)이 아니다. 하나나 소수나 다수나 우를 범하는 것은 똑 같다. 어리석거나 현명한 것은 사람 수와 무관하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또 속아넘어간다. 도덕적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 썩을 놈이었고, 유능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무능한 데 더하여 욕심만 드글거리는 놈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둘째,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발명품”, “정밀하게 짜여진 제도” 등이 전혀 아니다. 반대로 아주 소박, 간단, 단순한 것이다. 원시시대에도 민주주의는 존재했다. 아니, 단순하고 원시적인 사회일수록 민주적 요소가 더 강했다. 민주란 중우의 논리에 져서 대의 위정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일 없이, 각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민주정치에 부적합한 까닭도 간단하다. “민주주의가 높은 문화적 발명품,고 도의 제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윤석열이 평등 아닌 차별 지향적이고, 권력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윤석열이 남의 목소리를 무시하고,자기 목소리만 대수인 줄 알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자기 뜻이 곧‘국민 민초’의 뜻일 줄로 착각한다.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20%대에 머문다고 하는데도, 자신은 그런데 개의치 않겠다고 하고, 여전히‘국민의 뚯’만 보고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 같은 독선은“높은 문화”, “정밀하게 짜여진 제도”뿐 아니라, “낮은 문화”, “조야한 제도”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회 발전의 단계를 불문하고 독선, 불평등, 특권 의식은 그 어느 사회, 어느 인종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이 뽑힌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된다고 결론을 냈다. 대통령을 두 명을 뽑을 수도 없으니,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2명 아니라 7명을 뽑는 데도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4년 임기의 대통령을 7명 뽑고, 추첨으로 돌아가면서 한 해씩 대표를 맡도록 한다. 7명 합의제이기 때문에 독재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스위스는 26개 주(州캔톤)가 모여 연방을 구성하고 있고, 주는 각각 독립국에 버금가는 체제와 자체 헌법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연방정부에는 최소한의 권력만 주어져있다. 그 최소한의 권력도 1명의 독재가 아니라 7명 대통령의 합의체에서 행사한다.

또 유시민은, 민초가 어리석어서 윤셕열을 뽑게 된 배경에는 기존(레거시)언론의 호도(조작질)가 한몫했다고 한다. 한쪽 후보의 장점을 침소봉대하고 단점은 가리는 한편, 다른 쪽 후보의 장점은 가리고 단점은 집중, 반복, 침소봉대하여 떠들어대고 해서, 민중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시민은 그냥 자신은 그런 상황을 이해한다고 할 뿐,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체념만 할 것이 아니다. 언론이 조작질한 것은 대통령이 가진 권력의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과실이 너무 탐나서 그것을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그 대통령의 권한을 줄여서 1명을 7명으로 늘린다면, 그렇다면 누구도 지금같이 제멋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언론도 그렇게 죽기 살기로 조작질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그 과실이 별로 탐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축소할 것은 대통령의 권력만이 아니다. 무지랭이 같은 국회도 있다. 검찰공화국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왔으나 검찰개혁 할 염은 내지 않고, 다수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얼른 소수당에 내주고 일찌감치 손을 뗐다. 거기다 상식으로 이해 불가능한 검찰의 편파 수사 관행을 눈앞에 보면서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소만 하면 당직 정지할 수 있다는 당헌 제80조를 바꾸지 않기로 결정 했다고 한다. 혹여 여론 나빠져서 표심 잃을까 봐 몸사리고 있는 것이라고 회자하기도 한다.

민주당 7명의 비상대책위원회가 7만 여명 당원의 요구를 깔아뭉갰다. 그 원인은 7명의 소수가 합리성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7만 당원이 중우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7명이 7만 당원의 의견을 무시한 것은 결정의 합리성 여부와 전혀 무관하게 7명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절차에 근거하고 있다.이렇게 7명의 결정에 불복하고 분쟁이 일면, 당원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일인이나 소수 독선의 문제는 윤석열 뿐 아니라,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에도 총체적으로 만연해있다. 이럴 때 당원, 민초는 중우의 이데올로기(가짜이념)에 져서 물러설 것이 아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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