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담산 위의 추석달
모담산 위의 추석달

'나'는 누구인가? 어제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어제는 이미 지나간 과거 '히스토리'(history), 내일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스터리'(mistery), 그러니 현재의 '지금'을 즐겨라!"란 말이 있다. 그렇다. 현재의 나는 어제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니다.

그러면 '나'라고 하는 우리의 '몸'은 과연 무엇일까? 동양에선 일찍이 우리의 몸은 '精'(정), '氣'(기), '神'(신), 3요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精'은 유형의 물질로 음식물을 통해 얻은 영양물과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 즉 DNA로 전자를 후천적 정, 후자를 선천적 정이라 했다.

또 '氣'는 이 정(精)인 영양물질에서 나온 에너지로 기능적 작용을 말하며, '神'은 기(氣)의 상위 개념인 정신적 작용으로 마음 또는 영적 작용을 말한다.

서양의학에선 우리의 몸이 세포를 단위로 한 조직, 기관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세포를 인체의 기초 단위로 보았다. 하지만, 동양의학인 한의학에선 우리 몸의 기본 단위를 기(氣), 또는 원기(元氣)로 봤다. 한편 세포는 정적 물질(靜的物質)로, 기는 동적 기능(動的機能)으로 인식하고 기의 운동성인 '변화'를 강조했다. 즉 인체는 물질이 아닌 생명체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1초 전의 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지금의 내가 아니고, 1초 후의 나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며 다만 상상의 존재 일 뿐이다. 여기 운동성의 변화, 그것이 곧 <易>(역)의 원리이다.

지난달 언젠가 우리 <한겨레. 온> 편집위원인 김동호 선생이 대만에서 '活在當下'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대만이야기 124]). 김 선생은 이 말이 불교용어라 하면서 "나란 존재는 현재에 있다. 지금의 내가 나의 본 모습이다"라 했다.

불교에선 '참나'(眞我)와 '가짜나'(假我)를 말하면서 참나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지금의 내가 진짜의 나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몽환(夢幻) 속에서 깨어나 본원적 불성(佛性)을 찾으라 한다.

그러면 "지금의 이 순간을 살아라."(活在當下)한 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 '活'이란 '살다, 생활하다'란 뜻으로 지금의 삶 자체를 말한 것이고, '當下'란 '어떤 일을 만난 그때, 그 자리'로 당면한 그때 또는 그 자리를 강조한 것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다.

김 선생은 "과거와 미래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고 어디에 살던 모두 행복하기 바란다"하면서 "행과 불행, 사랑과 미움, 귀천과 미혹은 절대적이 아니라 나의 판단이고, 그 판단은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고 어디에 살던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화엄사상의 '一切唯心造'를 말한 것이다.

그렇다! 몸은 이미 과거(身在過去), 마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心在未來), 오직 생활(삶)만이 지금의 당면한 그 자리(活在當下)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지금'의 현재이다.

享受現在! Living in moment! 원효는 "마음이 일어나면 만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만법이 소멸한다"(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하였다.

카톡!
이때 누군가 카톡을 보냈다.

"꽃은 다시 피는 날이 있으나, 사람은 다시 젊어질 수 없다. 어제의 일은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오늘은 멋지게 즐길 수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후회 없는 삶을 서세요!"
"당신 멋져!"

어제 누군가가 보내준 카톡 글이 또 문득 떠올랐다.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

이때 모담산 위의 추석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임인 추석명절에 구름 속의 보름달을 바라보며!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늙은이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