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임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은 법관을 한 줄로 세우는 관료체제의 두목 같다/
상고심제를 통해 대법원장의 권력은 군주와 같이 강화될 전망이다/
업무가 많아 중요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민초를 백안시 해/
법원의 상고심제 도입 시도는 국회의 의원내각제 개헌 시도와 같은 효과

‘한겨레’ 신문이 서로 모순된 주장을 한 지면에 실었다. 한편으로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왕적 대법원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했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가 설립하려 했던 대법원 상고심사제도를 “사법부의 숙원과제”로 시급히 마무리해야 하는 개선작업으로 꼽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1107.html

상고심제 관련하여 ‘한겨레’는, ‘상고제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소제목 하에 “사법부 숙원 과제인 상고제도 개선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대법원은 6년에 걸쳐 대법관 4명을 증원하고 ‘상고심사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상고심 개선 방안을 최근 내놨다. 상고심사제란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 중 법으로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사건만 본안판단으로 넘기고, 나머지 사건은 상고기각으로 종결하는 제도다. 대법관 1인당 연간 4천건의 사건을 담당하는 살인적 업무량을 줄이고 보다 중요한 사건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등 내용의 기사를 써 내보냈다.

또 ‘한겨레’는 현 대법원장 김명수가 법관 사회 수평화를 위한 밑돌을 놓았다고 긍정 평가하고, 한 고위법관의 말을 빌어,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김명수 대법원이 시작된 만큼, 법관 독립성 보장과 법관 사회 수평화는 사법개혁의 큰 기조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전했다. 한편으로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법관 ‘독립성 보장과 법관 수평화’를 사법개혁 기조로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 양승태가 옹골차게 추진하려고 했던 상고심사제를 최근 대법원이 상고심(대법원) 개혁 과제로 내놓았다고 하는 ‘한겨레’의 말은 서로 모순된다.

한겨레가 김명수를 두고 “법관 사회 수평화를 위한 밑돌을 놓았다”고 긍정 평가한 근거는,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 성과’를 냈다는 점이란다. 고등부장 승진제도란 대법원장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부장으로 보임했던 제도다. 법원장이나 대법관 후보군에 오르기 위해선 우선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등부장부터 돼야 했고, 고등부장 승진제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법관들을 대법원장이 가진 인사권으로 줄세우며 눈치 보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김명수가 이런 제도를 없앳다는 것이다.

또 고등부장이 돌아가며 맡던 (지방)법원장 인사도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후보군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2019년 첫 도입)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을 두고 ‘한겨레’는 “3천명에 달하는 전국 법관을 한 줄로 세워 평가하던 사법 관료화 대못을 뽑는 데는 일단 성공한 셈”이라고 김명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이 같은 한겨레의 평가는 하릴없다. 사법관료화 대못은 아직 뽑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화될 조짐에 있기 때문이다.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후보들 중에서 법원장이 뽑힌다고 하지만, 그 복수의 추천자 가운데서 최종 낙점하는 임명권자는 여전히 대법원장이다. 그래서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판사들은 여전히 줄을 서게 되어 있다. 대법원장을 두목으로 한 법원 관료체제가 법관 독립왕국을 이룰 판이 되었다. 대못을 뽑는다고 하려면, 지역에서는 추천만 하고 대법원장이 그 중에서 임명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각기 직접 법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대못 뽑기는커녕 오히려 법원 관료주의가 더욱 강화될 조짐에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 바로 대법원 상고심사제(상고심제) 도입의 시도이다. 상고심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무리한 권력욕으로 추진한 것으로서, 상고법원을 빙자해 대법원장 자신이 고위직 법관들의 인사권을 확대하려 한다고 의심을 샀던 것이다.

2015년 양승태의 ‘돌격대’로 나선 법원행정처가 먼저 국회 로비에 나섰고, 나중에 박근혜 청와대와도 모종의 거래에 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기록한 민정수석 고 김영한(돌연 사망)이 남긴 2014년 업무일지에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9.6일), “위헌소지, 대법원 궁여지책, 간단한 문제 아님”(9.22일), “상고법원 (대) 9.7 발족 - 대통령 임명권 배제 민주적 정당성 – 의원입법(꼼수)”(11월25일) 등의 글이 적혀있다.

이 김영한 업무일지 관련하여, 2년 반 전쯤(2018.6.4.) ‘한겨레’ 스스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종합해 보면, 청와대는 상고법원을 대법원도 고등법원도 아니면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돌연변이’로 인식하고, 고위법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배제해 법원이 공룡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대법원장이 3심을 담당할 고위 법관 임명권을 가질 경우 ‘민주적 정당성’ 논란이 파생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의원입법’을 통해 편법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봤다. ‘꼼수’라는 표현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짚은 것으로 읽힌다.” 또 같은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여론도 좋지 않았다. 3심 제도의 의미와 대법원의 업무 부하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변호사들조차 과반이 상고법원을 반대했다.

당시 판사 출신인 홍일표 의원을 대표로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상고법원은 상고심 법원으로 대법원 외(바깥)에 신설”, “상고법원은 판사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권 행사”, “상고법원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는 때에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한다”, “상고법원은 사건을 종심으로 심판하지만, 헌법 위반 판례 위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법원에 특별상고 또는 특별재항고 가능”한 것으로 했다.

당시 상고법원 설립을 지지하는 연구책임자 허 모 교수가 “상고법원은 오심 가능성이 71%나 감소한다”고 밝혔다. 이 말은 “그럼 지금 대법원이 그만큼 오심을 한다”는 반증으로 조롱을 사기도 했다. 또 상고심 법관을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한 것은 위헌으로서, 최고(3심) 법관 임명권을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한 현행 헌법에도 맞지 않았다.

문제는 ‘한겨레’가 대법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상고심제를 “사법부 숙원과제”인 것이라고 하고, 1년 임기를 남겨둔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기간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하고, 그 안에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추동하고 나선 것이다. “여론이 움직이려면 사법부 먼저 뼈를 깎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법원이 스스로의 뼈를 깎아서 대법원장 권한을 더 막강하게 하는 ‘상고심제’를 설립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그 근거로 ‘한겨레’는 대법원 1인당 연간 4천건에 이르는 사건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더 중요한 사건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겨레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였다. 첫째, 대법원 법관의 업무가 연간 4천건에 달할 정도이면, 일반 지방 및 고등법원 판사는 그 몇 배의 사건을 처리한다. 인력부족에서 오는 격무의 부담은 대법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대법원 판사만 늘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재판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일인 판사가 맡는 사건 수가 많아질수록 재판은 부실해진다.

일반 지방 및 고등법원에서 하루에 판사가 심리 혹은 선고하는 사건수가 100건, 200건 된다는 사실은 상식 이하이다. 한 인간이 그만큼 맡은 재판은 부득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민초가 도매금으로 넘어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권위적 사법 관료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재판관 수를 늘리지 못하면 시민 재판관 법정을 개설하면 된다. 권력을 관료만 행사하라는 법이 없다. 법관 관료의 수가 한정되어 여력이 없으면, 시민 재판관 제도를 운용하면 된다.

둘째, 대법원이 더 중요한 사건 심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업무가 많으니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관료 법관의 편이를 위한 것이고, 재판받는 민초는 그들 안중에 없다. 억울한 처지는 중요성의 대소를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고심제 도입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별’한 사건을 홀대하겠다는 뜻이다.

중요성을 가리는 주체는 다름 아닌 법관들이 될 것이고, 시민 민초는 법관들의 자의적 취사선택 앞에서 헌법에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할 위기로 몰리게 되었다. 지금도 고무줄 잣대로 상대에 따라 달라지고 상식으로 이해 안 가는 판결을 남발하는 법원이 자기 눈높이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판별한 민초의 사건을 홀대하고 더욱더 권위적 관료주의 기관으로 군림하려 한다.

대법원 상고심제는 ‘중요한 사건’이 아닌 사건의 영역으로 시민 민초를 추방함으로써,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마저 이들로부터 박탈하려 한다. 이는 마치 국회에서 암암리에 추진되는 의원내각제 같다. 의원내각제란 현재 시민이 선출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로 옮기고, 그 총리를 시민 민초의 손이 닿지 않은 국회에서 선출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한겨레’ 신문이 상고심제와 의원내각제 도입을 충동질하는 기수가 되어 살살 연기를 피우고 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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