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 선생이 창단을 주도한 흥사단은 ‘기러기’를 상징으로 할까? 도산 선생이 점진주의(漸進主義)를 주장한 근거는 무엇일까?

도산 선생의 자연에 대한 관찰이 돋보인다. ‘기러기’의 뜻은 두 가지다(흥사단 누리집). 첫째, 기러기는 반드시 떼를 지어 날아간다. 그러기에 단결과 협동을 본받자. 둘째, 기러기는 질서와 방향 감각이 뛰어나다. 그런 특성을 배우자. 이에 따라 흥사단은 그 기장(記章·어떤 일을 기념하는 뜻을 나타낸 휘장)을 사(士)자를 기러기 모양으로 도안하였다.

흥사단 단기. 출처: https://www.yka.or.kr/html/introduce/symbols.asp
흥사단 단기. 출처: https://www.yka.or.kr/html/introduce/symbols.asp

도산 선생은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 중에서 교육을 중시하였다. 흥사단은 1913년 창단 이후 2022년 현재 109년간 이어오는 NGO 단체로서 평생교육을 지향해왔다고 할 만하다. 도산 선생의 교육사상은(최진영, 2010.08.) 덕·체·지 삼육, 무실·역행·충의·용감, 실력양성, 인격개조 등이다. 그중 실력양성론의 기초는 점진주의다. 도산 선생의 점진주의는 쉬지 않고 꾸준히, 서두르지 않고 단계를 밟아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 희망을 안고 용기를 내어 전진하자는 의미다.

이상의 두 가지 근거로 ‘기러기’의 상징성과 도산 선생의 점진주의를 이해하기에는 조금은 공허하다. 사오일 전, 주역(周易) 공부 모임(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冬孤松) 주역반·강사 고용호)에 가서 주역 53번째 괘 ‘풍산점’(風山漸)을 공부하면서 그 공허함을 조금 털어냈다.

풍산점의 6개 효를 설명하는 효사에는 모두 기러기 홍(鴻)이 보인다. 홍은 그 종자가 본래 작은 기러기 안(雁)이 아닌 큰기러기다. 글자 雁이 들어간 고사성어 중 하나는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물고기는 물속으로 숨고, 기러기는 넋을 잃고 떨어지며, 달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꽃은 부끄러워 시든다)다.

대체로 주역 괘는 자연스러운 생태를 말하고, 거기에서 사람이 취하고 실천할 지혜를 은근히 드러낸다. 풍산점 괘의 핵심은 여자가 시집감이다. 이는 출산, 양육의 시발이다. 세대를 확대 재생산하는 근본이다. 또한, 여자는 친정을 떠나 시집살이 초기에 마치 큰기러기가 물가로 불안하게 나아가는 듯이 보이나 마침내 딸과 아들을 낳고 결국에는 안방을 차지하는 궁극의 단계로 나아간다. 요컨대, 차츰차츰, 점점 나아가면 궁극의 단계에 이른다. 점진주의의 유효한 효과성이다. 그러려면, 뭣보다도 나아감에 끊임이 없어야 한다.

주역 53번째 괘  풍산점
주역 53번째 괘  풍산점

풍산점은 주역의 대성괘 64괘 중 53번째 괘다. 소성괘 8괘 중 5번째 괘 풍(☴)이 소성괘 7번째 괘 산(☶) 위에 자리 잡은 괘다.

풍산점의 괘사는 여자가 시집가는 일은 길하니, 마음을 곧바르게 하라는 뜻으로 풀어진다.

괘사를 풀이한 단전의 내용은 여자가 시집가는 일은 길하여 공적을 쌓음과 같으니 움직이더라도 막다르지 않으리라는 뜻으로 풀어진다.

괘사를 달리 풀이한 상전에서 漸은 바람(風)을 나무(木)와 똑같이 여기고 그 덕을 본받아 풍속(風俗)을 선하게 한다는 뜻으로 풀어진다.

효의 순서는 아래에서 위로 세기에, 맨 아래 효는 제1효로, 맨 위의 효는 제6효로 불린다. 괘의 6효는 효의 순서대로 큰기러기가 물가로, 반석으로, 뭍으로, 나무로, 언덕으로, 하늘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전개방식은 점층법이다. 큰기러기는 처음엔 물가로 나아간 후 점점 큰 곳으로 나아가 마침내 그 절정인 하늘로 나아간다. 요컨대, 점진(漸進)이다.

먼 길을 날아온 여독을 목욕으로 푸는 큰기러기. 출처: 한겨레, 2022-10-07.
먼 길을 날아온 여독을 목욕으로 푸는 큰기러기. 출처: 한겨레, 2022-10-07.

 

제1효는 음효다. 干은 물가 간이다. 즉, 수애(水涯)다. 참고로, 날마다의 살아감이 누적한 삶은 위태로워 보이는 물가에서 지낸 자취다. 이른바, 두 글자로 생애(生涯)다. 한자 사전에서 干의 첫 번째 뜻은 방패 간으로 나온다.

제2효는 음효다. 반석은 넓고 편편한 바위다. 너럭바위다. 물가나 물 가운데서 물보다 더 높이 보이는 너럭바위다. 너럭바위에서 먹이를 먹으며 즐겨 노는 새가 머릿속을 스쳐 간다.

제3효는 양효다. 뭍은 강이나 바다처럼 물이 있는 곳이 아니다. 즉, 땅이다. 제2효와 제3효는 큰기러기가 물가의 반석에서 즐기다가 땅으로 점점 나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큰기러기는 월동 기간에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안전을 도모한다. 출처: 한겨레, 2022-10-07.
큰기러기는 월동 기간에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안전을 도모한다. 출처: 한겨레, 2022-10-07.

 

제4효는 음효다. 제3효와 제4효는 땅으로 나아간 큰기러기가 푸른 나무의 평평한 나뭇가지로 나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큰기러기는 발가락이 모두 붙은 탓에 나뭇가지를 잘 쥐지 못한다. 나뭇가지가 비록 평평할지라도 거기에 앉은 큰기러기의 자세는 상당히 불안하다.

제5효는 양효다. 제4효와 제5효는 나뭇가지에 불안한 자세로 앉은 큰기러기가 언덕으로 내려와 힘을 비축하고 날려고 준비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제6효는 양효다. 陸은 큰길 규(逵)다. 큰길은 곧 하늘이다. 제5효와 제6효는 언덕에서 힘을 비축한 큰기러기가 큰길, 즉 하늘로 나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큰기러기는 하늘을 선회하다 방해요인이 없으면 논으로 다시 내려앉을 것이다. 출처: 한겨레, 2022-10-07.
큰기러기는 하늘을 선회하다 방해요인이 없으면 논으로 다시 내려앉을 것이다. 출처: 한겨레, 2022-10-07.

안창호는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을 공부한 뒤 9세에서 13세까지는 평남 대동군 남부산면 노남리에서, 14세에서 15세까지는 심정리에서 서당에 다니면서 유학의 기초 지식을 배웠고(이태복, 23쪽), 특히 심정리 서당 김현진(金鉉鎭) 훈장에게 한학과 성리학을 수학하며 유학을 공부하였다(이태복, 23쪽. 위키백과). 이로 미뤄보건대, 도산 선생이 주역에 대해 몰랐을 리 만무하다.

주역 괘 풍산점은 흥사단 상징 ‘기러기’와 도산 선생의 점진주의에 대한 전거로 삼을 만하다. 김석진(2009, 204쪽)은 제6효를 설명하면서 종합하여 풀이하길, “물에서부터 날기 시작한 기러기가 여섯 단계를 거쳐 이제 하늘을 날게 되고, 또 그 나는 모습이 질서정연하여 모범을 삼을 만하니 길하다. 또 여섯 단계를 체계적으로 거쳐 나니, 아무도 어지럽게 못한다.” 흥사단 ‘기러기’는 한자(韓字)로는 鴻이다. 적어도, 종자가 작은 기러기 雁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104년 10월 20일

[참고 문헌]

김석진, <대산 주역 강해>(하경), 수정판, 2009.

이태복, <도산 안창호 평전>, 개정판, 2019.

최진영, “도산 안창호의 교육사상과 교육운동”,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08.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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