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노비들의 희생을 기리며-

의병 전쟁( 독립 기념관 캡처)
의병 전쟁( 독립 기념관 캡처)

우리의 역사에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전쟁사가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있었지만, 그 중의 왜(倭)의 침략으로 순식간에 국토가 초토화되어 국운이 백척간두에 놓인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비극은 우리 국민의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커서 자손만대에도 잊히지 않으리라 본다.

이렇게 도탄에 빠진 조국과 백성을 구하려 분연히 일어선 애국 충신들이야말로 익히 후세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휘하에서 손과 발이 되어 목숨 바친 병사들에게 우리는 어떤 예우를 했는가 반성해 본다.

필자는 다행스럽게 선무원종공신녹권을 소지하고 있어, 당시 조선에서 천대시했던 노비 신분자를 찾아보았다. 그 이유는 ‘임진왜란이 터졌을 당시 서울 인구는 12만 명이었다. 그중 절반이 노비였다’(출처 : 목장드림뉴스이히)라는 말이 뇌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았던 그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조사 결과 종(奴)의 신분이지만 선무원종공신으로 등재된 자는 다음과 같다.

노(奴) - 22명 (사내종)

사노(司奴) - 2명 (관아에 딸린 사내종)

사노(私奴) - 249명 (사적으로 부리는 종)

관노(官奴) - 37명 (관가의 사내종)

관노(館奴) - 5명 (성균관에 딸린노비)

시노(寺奴) - 107명 (임금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종)

내노(內奴) - 20명 (내수사에 딸린 노비)

영노(營奴) - 12명 (영(營)자가 붙었던 관청에 딸린 종)

창노(倉奴) - 2명 (창고에서 부리는 사내종 )

교노(校奴) - 2명 (향교에 딸린 노비)

원노(院奴) - 1명 (서원에 딸린 사내종)

조노(曹奴) - 2명 (관아 종)

감노(監奴) - 1명 (노예의 우두머리)

부노(府奴) - 3명 (대도호부도호부에 딸린노비)
                                                                                         합계 465명

조선 조정에서 발표한 선무원종공신 9,060명 중 465명은 5%이지만 놀랍다. 대부분의 수령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과 싸우는 것을 회피하고, 왜적이 자기 고을에 침입했어도 막아내지 못한 무능함이 탄로 날까 봐 상부에 아예 보고조차도 하지 않은 사례와는 다르게 노비의 신분이지만 구국의 신념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거룩한 애국정신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공신 3등급에 기록되어있다.

더 들추어 보면 면천(免賤) 자도 공신으로 등재된 분이 503명이니 거의 1,000여명의 천민 신분이 공신이 된 셈이다. 한없이 찬양한다.

후일 선무원종공신을 둔 가문을 우러러보게 되자, 자기 가문과 조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족보나 카페, 블로그 또는 지자체에서 발행되는 인물사 등에 록권의 희귀로 검증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선무원종공신의 칭호를 함부로 도용하는 사례를 보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제의 공신보다 더 훌륭한 공적이 있는 것처럼 꾸며대고 있음을 보고 놀라 어처구니없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선조 조정에서 공신 선정을 잘못했거나 정확성이 없는 엉터리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시정(是正)과 더불어 주의를 당부한다.

선무원종공신으로 선정된 분들은 목숨으로 적을 막아내는 공적이 많거나, 무기를 개발 제조했거나, 군량미를 아낌없이 헌납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살려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병참 활동에 이바지한 점이 지대했기에 엄정히 선발하여 보훈의 대가로 내려진 명예이거늘 이를 도용한다는 것은 짐승도 통곡할 일이다.

또 명심해야 할 일은 나라를 구하려 싸우다 목숨을 잃어 절손이 되어 가문의 문이 닫힌 한스러운 사연과 가장을 잃어 부모와 처자식이 굶주림에 울어야 했고, 부상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았던 자들의 명예를 서슴없이 도용함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양심을 되살려 거짓을 시정하고 더 이상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숙명적으로 태어나 무지와 가난을 이겨내고자 노비의 생활로 생명을 부지해온 그들이었지만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은 못된 수령보다는 훨씬 고귀했음을 보았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수를 구하고자 하는 정신은 영원불멸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애국의 정신이 느슨해지고 방심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는 본보기가 된 노비들의 애국정신을 드높이 찬양하고 그들의 영혼에 하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빈다.

[편집자주]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 1605년 공신도감에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선무원종공신에게 발급한 녹권으로 공신 증서다. 임진왜란 후 민심과 국정을 수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담겨 있는 문서로.  공신들의 신분이나 직역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693)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장 

전종실 주주  jjs62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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