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애기 섬에 수장된 고 이윤복 님 편 (필명 김 자현)

유족 이자훈 선생의 부모님 , 부친 고 이윤복 선생과 어머니
유족 이자훈 선생의 부모님 , 부친 고 이윤복 선생과 어머니

 

무엇이 잘못되어 형과 내를 잡아 총질하였소!

이윤기의 아우님, 애기섬 앞바다에 수장 된 우리 아버지 이윤복! 어디로 길놀이 떠나셨을까. 새벽이면 멸치잡이 나가던 금오도 앞바다에 붉은 태양 떠올라도 멸치잡이 갈치잡이 배 띄우지 말아라. 우리 아버지 이윤복, 어느 뱃길 따라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지발 잘 헌다고 배 띄우지 말아라. 여운형 따라 지역건준 위원장 이윤기 시작으로 한 가문 여덟 사람 총살하고 불 질러 수장시키니 멸문지화 따로 없네.

죄가 있다면 남보다 새벽이슬 먼저 밟은 죄
늦은 밤까지 달빛 아래 그물 기은 죄
백 명 넘는 선원들 한 식구 한 가족 내 식구로 섬긴 죄
만선이든 흥선이든 좌우 치우칠까 공평하게 나눈 죄!
명치대학 졸업 후
못 배운 사람 가르치고 성심껏 노동하여
다 함께 잘 사는 공평 세상 외치니 그것이 잘 못이요
정의로운 세상에 자유와 민주를 꿈꾸는 게 잘못이요
선원들 노동자 착취하지 않으니 잘 못 됐소
노동자 농민도 잘 먹고 잘사는
계급 없는 세상 어서어서 오라는 게 뭔 잘못이요!
 

역사를 겁탈하고 민족정기 훼손하니 나라가 흥합디까 노동자 농민 고혈을 짜 거지와 화전민에 아사자 속출하니 즐겁습디까 무엇이 잘못되어 내 형과 내를 잡아 총질하였소 찾지 못할 큰 바다로 떠나라고 애기섬 앞바다에 수장시킨 원수들아! 물결물결 따라 저 넓은 해원을 향해 우리는 간다마는 전국을 망라하는 애국 인민위원회, 정의로 보를 쌓고 자주로 다리 놓아 평등 평화 물결치니 민주가 널뛰는 세상 만들 수 있도록 양심과 정의를 팔아먹은 불의한 자들아 전쟁을 좋아하는 자들아 이 행성을 떠나거라

고 이윤복 님의 유일한 소생 이자훈 선생
고 이윤복 님의 유일한 소생 이자훈 선생

현재 여순항쟁 서울유족회 회장이신 이자훈 선생은 올해 82세 이십니다. 전체 유족들 가운데 대체로 가장 연세가 높으신 분으로 <여순민중항쟁> 때 희생당하신 부친 고 이윤복님의 유일한 혈육이시죠.

부친 고 이윤복님의 셋째 형님이 당시 여운형 선생과 뜻을 같이하여 지역건준 위원장까지 지내시던 고 이윤기 선생으로, 하여 연좌제에 걸려 한 가문에서 8분이나 희생당하셨다 합니다. 당자들은 물론이요 형제분들의 장남들, 고모와 고숙 등도 행방불명, 수장, 총살 등으로 학살, 희생당하십니다.

고 이윤복님은 셋째 형이 일본에서 대학 재학 중이던 당시, 형님의 주선으로 통신강좌를 통해 명치대학을 졸업하시고 막스의 자본론 등 사회철학에 입문하십니다. 본래 타고 난 성정 자체가 욕심이 없고 정의로운 분으로 평등주의자이셨다고 합니다.

가업으로 거느리고 있던 100명 넘는 선원들, 그 가족들과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며 대학에서 배운 것을 삶과 노동현장에서 실천, 무소유를 역설하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이셨다 하니 제 영달에 눈이 뒤집힌 골수 친일파 이승만 도당과 토착 왜구들의 제1 표적이었을 것으로 감히 상상해 봅니다.

분단의 조짐을 느끼고 그토록 좌우합작을 역설하시던 분이 여운형 선생이셨던 바, 고 이윤기 선생이 공산당이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이요, 이윤복 선생 역시 빨갱이 빨자도 모르는 분이셨던 것이지요.

고 이윤복님은 공부를 마치자 1945년 사시던 여수에서 선친이 계시던 금오도로 이주, 대대로 내려오던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습니다. 멸치잡이 선박(발동선)을 수십 대 소유하는 금오도의 제2의 재산가로 가업을 일으키고 있던 중, 1948년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후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경찰서에 자주 불려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여순 항쟁이 1948년 10월 19일 발발합니다. 그 전해는 여운형 선생도 암살당하시고 돌아가는 정국의 분위기가 수상하여 여순항쟁 발발 직후, 건국 준비위의 지역 인민위원장을 지내던 셋째 형과 함께 두 분이 부산으로 피신하십니다.

정국을 살피면서 일본으로의 망명을 준비하시던 중 여수 경찰서는 두 분을 체포하기 위해 특별수사대까지 설치합니다. 드디어 1950년 6.25 직전에 셋째 형 이윤기 선생이 수사대에 먼저 체포됩니다. 여수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셋째 형을 보필하기 위해 여수로 돌아오던 이윤복 님도 집에 드나들던 밀정(친일 경찰)에 의해 6월 말경 율촌역에서 체포되어 며칠 후 총살, 애기섬 앞바다에 수장되셨다 합니다. 한 분은 총살 후 불에 태워져 여수 바다에 뿌려지시고 한 분은 수장되시니 두 분은 묘소는커녕 흔적조자 없으시답니다.

올해가 여순민중항쟁 74주기입니다. 이 치가 떨리는 왜곡된 역사가 이제야 서울유족회의 이자훈 선생을 선봉으로 진실의 덮개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2021년 6월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에 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하루속히 억울한 고인들의 정명 작업이 이루어져 70년 넘게 검은 역사의 지하에 묻혀있던 고인, 그리고 그 유족들의 해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저의 언급이 깃털처럼 가볍더라도 용서하시고 유족 분들, 그리고 고인들께 먼지만큼이라도 解冤에 가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학살 피해자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문화제에 참석하신 이자훈 선생- 세 분 중 오른쪽
학살 피해자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문화제에 참석하신 이자훈 선생- 세 분 중 오른쪽

 

* 고인들의 사진은 유족께로부터, 나머지 사진은 필자가 직접 촬영 함.

* 본 원고는 필자가 직접 취재한 것이며 오늘부터 앞으로 게재될 사연들은 모두 유족의 허락을 받은 것임을 고지합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