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얘기를 한 번 더해보자. 사건을 여론화시킨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을 빼고 워터게이트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기자는 닉슨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파헤쳐 닉슨을 사임으로 몰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FBI가 직접 수사에 착수하였지만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점점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민주당쪽에서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면서 이 사건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는 무려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거대한 권력을 가진 닉슨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이는 언론의 역사까지도 바꿔놓았다. 한 가지 문제를 장기간에 걸쳐 심층 취재하고 보도한 것은 속보 경쟁만 하고 있던 미국 신문과 방송에 일대 경종을 울렸고, 이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을 탄생케 한 계기가 되어 언론의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당시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브래들리와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였던 그레이엄의 역할도 있었다. 브래들리는 상당한 위험성과 폭발성을 가진 사건 기사를 냉철하게 편집해 그 과정을 진척시켰고, 사주인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붕괴를 각오하고 두 기자를 보호하며 외풍에 맞섰다.

이쯤 얘기했으면 우리나라의 대부분 언론인이 왜 기레기취급을 받고 있는지 간파하였을 것이다. ‘기레기’는 기자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 단어 속에는 단순히 기자를 비하하는 의미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언론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이번 대통령 동남아 순방 과정에서 기레기를 기레기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MBC기자에게 국가비행기의 탑승권을 빼앗자 한겨레와 경향 신문 기자들도 이에 항의하여 탑승을 거부했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얼뜨기처럼 그 비행기를 타고 갔다. 순방지에서도 그 수준은 변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기자들 다 하는 회담장 취재도 못하게 하니 안하였고, 대통령실에서 건네준 자료로 보도를 하였다. 심지어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당사자측이 찍어서 전달해준 사진만 보도하였다. 이 정도면 왜 기자들이 따라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신 박힌 언론인이라면 그런 꼭두각시 보도는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이처럼 받아쓰기나 하고, 남의 기사 베껴쓰기나 하고 있으니 언론이 언론다워질 리 없다. 언론의 본질이 무엇인가? 언론은 사건과 정보를 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정의로운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또 정부나 기업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단체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언론이 그걸 못하면 그 사회는 독선과 부패로 엉망이 되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만다. 참 언론인 송건호는 진실 보도를 위해 사물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하고,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인과 관계를 밝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최소한 기자가 기자다우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무능한 언론인들이여,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 304명의 생명을 살려낼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부패한 언론인들이여, 외한보유고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새어나가고 있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 IMF는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비열한 언론인들이여,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시켜 광주를 짓밟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 무자비한 시민학살은 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자들과 언론사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선별, 확대, 축소는 물론 조작 뉴스까지도 서슴치 않는 한국언론의 왜곡보도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민을 조롱하는 악마스러운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물론 정권과 자본과 언론사주 등 기득권 세력의 반민주적 의식과 억압도 문제이다. 최근 한심스러운 작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당에서 MBC광고 탄압까지 하려했다는 소식이다. 국민소득 500달러 시대인 1974년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가 떠오른다. 국민소득은 100배로 높아졌는데, 언론과 정치의식은 아직도 50년 전의 미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국민의힘 정권은 언론이 자신들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는 기레기 수준에 머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모두 사라져야 할 유물이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 요즘 패널을 배치한 토론 방송이 많다. 나름대로 공정의 틀을 지키려고 그러는지 양쪽의 패널을 같은 수로 배치하고 같은 발언 시간을 주어 토론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의 평등일 뿐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가식이다. 같은 말 반복하며 목소리만 높이는 억지스러운 토론, 이제 진절머리 난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사실과 거짓을 먼저 가리고, 옹호해야 할 것과 비판해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층 취재를 통해 진실을 밝혀 보도해야 한다. 대통령이 새벽까지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심층취재를 하여 밝혀야지 그걸 공개한 사람을 두고 옥신각신 토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은 조금 더 섬세하게 정의를 실천하려는 행위가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 국민이 손흥민 같은 뛰어난 축구선수를 가졌듯이,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같은 훌륭한 언론인, 그레이엄 같은 정의로운 언론 사주를 갖는 행운도 함께 하길 소망해본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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