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동창 모임

며칠 전, 서해 앞바다 고군산 열도 장자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중학교 졸업 후 54년 만에 처음 동창들 20여 명이 만난 것. 

우리들의 모교가 두메산골임에도, 그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 군산에 사는 황반장이라는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함께 장소를 준비하고 먹거리를 마련하는 등 많은 노고를 기울였기에 이런 특별한 만남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친구 황반장은 경찰로 근무, 형사반장을 역임하면서 일반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익산, 약천오거리 살인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정의의 줄기를 외롭게 부여잡고 수십 년간 많이 힘들어하며 지내왔었다.

그 사건 발생 후, 18년이 지난 후 일지라도, 그나마, 이 친구가 정의로운 재심 판결 승소의 결정적 근거를 제공한 의인이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고, 그는 전국구 인사가 되었다. 요즈음 우리 시대가 고뇌하고 있는 뜨거운 핵심 과제를 매우 많이 연상할 수 있게 한다.

별난 친구 황반장 외에도 인공지능 컴퓨터 공학박사로 변신한 친구를 포함, 두메산골 깡촌 무지렁이들이 반세기도 훨씬 지난 시간 동안, 각자 나름, 전국을 무대로 다양한 직업인으로 변신, 폭풍우를 가로질러 치열하게 살다가,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나이, 7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흰 머리카락 휘날리며 다시 모였다. 밤늦도록 담소하고 세월을 풀어내며 보낸 짧은 하룻밤! 모두에게 벅찬 감동을 갖게 했다.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감흥에 취해 같이 보낸 모든 친구에게 시 한 수 보내고 싶어진다.

<장자도>

유통기간 지난 연륜 지절의 친구들아
이 깊은 가을날 끝자락에
섬돌에 둘러앉아 
광어회와 쐬주를 곁들이며
각자 살아온 길들을 회상했구나.

그 길이 54년이나 되었다더냐?
당차게 뽐내던 시절도 말해보고,
아프고 쓰린 때도 곱씹어 보고,
누구는 눈물도 글썽이더구나

누군가는 우리를 일컬어
낀세대라고 하더라
모질게도 험난했던 고행길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살았지

전쟁 전후 두메산골 깡촌에 태어나
산업 광야 폭풍우 속 질주해온
우리나라 현대사 본 줄기들

격랑의 시대
두 옥타브 계단 오르내리며
넘어지고 일어나며
뛰고 걸었던 세월

이제, 우리는
낙엽 지고 계절이 바뀌는 때, 
한번은 옷장을 비워내고  
새롭게 채워야 하는 것처럼,
한바탕 우리 시절도 정리해야 할까나

친구들아, 고맙다
모두 모두 행복하기 바란다 

율하와 진송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재준 주주  izs41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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