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Sebae(세배)에 출연하다

7년 전에 연기 및 광고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조금씩 해 오다가 이번 월마트 월드컵 광고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유명한 사진작가 산드로 밀러(Sandro Miller) 감독의 지휘하에 화이자(Pfizer) 제약회사의 코로나 치료 약 팍스로비드(Paxlovid) 광고를 찍었다. 그전에는 2세 Jackie Lee 감독의 단편영화 Sebae(세배)에 출연했다.

Jackie Lee 감독, 단편 영화 Sebae(세배)
Jackie Lee 감독, 단편 영화 Sebae(세배)

70세에 연기를 시작했다. 그 나이에 젊은 미국 애들과 어울려 생판 다른 문화 속에서 영어로 연기 공부하고 그 얼떨떨한 오디션 무대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 전쟁과 피난을 겪어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이 경직된 장애를 뚫고 나가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끊임없는 훈련과 다짐이 필요하다.

원래 나는 예술가의 기질이 있었으나 집안이 연예계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예술 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딸은 7년 전에 우리가 할리우드 부근으로 이사 왔을 때 연기로 나갈 것을 권유하며 이 길이 나의 평화 운동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해 왔다.

사회학을 전공한 딸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계는 엔터테인먼트계라는 말을 듣자 내 마음이 설득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5년 10월 3일 내 칠순 생일을 미국 ABC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TV 드라마 Dr. Ken을 촬영하며 맞게 되었다.

연기 훈련과 공부는 다른 데서 만날 수 없는 자기 계발과 의식 확장의 기회를 준다. 이 때문에 연기자 생활이 의미가 있다. 일찍이 박사 논문을 ‘Self-Transcendence and Education 자아 초월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썼고 심리분석과 자기 개조의 과정을 오래 밟아 왔다. 겹겹이 쌓여있는 심리적 구속의 요소들을 털어버리고 순수한 기운들과 즉흥적으로 어울려 꿈을 이루어가는 훈련이다.

많은 사람은 부모와 사회가 심어준 자아상(自我象)이 자아내는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날 것을 간절한 소망으로 삼고 있다. 나는 전쟁 동안 충청북도 산속에 피난을 들어가서 검푸른 밤하늘의 수만 개의 별과 초자연적인 진동을 체험한 기억이 있다. 그것이 나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과 어울려 초 일상적인 진동을 구현하는 것을 행복의 지침으로 삼아 왔다.

자아의 함정을 인식하고 벗어나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바로 영성 교육의 목적이다. 이런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회색 옷을 입고 수도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삶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새로운 진동을 창조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연기자들이 받는 여러 가지 훈련 중에 임프러브(IMPROV) 라는 장르가 있다. 두 사람이 팀이 되어 즉흥적으로 하는 임프러브는 원래 연기, 코미디, 노래 또는 음악으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말하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Improv는 Improvisation의 줄인 말이다.)

임프러브는 깊이 들어가보면 지성-영성-감성을 통합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자기중심적 틀을 뛰어넘어 상대 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안내하는 정신적 (psycho-spiritual) 접근법이다. 임프러브에는 습관적으로 자기 위주로 행동하던 것에서 패러다임을 바꾸어 관계 중심적으로 넘어가게 하는 큰 기운과 통찰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 방법으로 훈련해가면 자기 앞세우기를 중단하고 전체의 흐름을 살피게 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존재로 대하는 순간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임프러브는 지금, 이 순간의 신성함을 초점으로 하고 상대와 조율해간다. 그래서 “임프러브 = 평화 프로세스”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임프러브는 모든 상황을 동의하는 말로 시작한다. “YES“ 한 후에 자기 말을 한다. 그러면 평온한 분위기에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임프러브는 20세기 초 시카고의 사회복지사 비올라 스폴링 (Viola Spolin)이 창시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스폴링은 시카고에서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하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상호 작용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임프러브를 고안해 냈다.

임프러브 실천의 5가지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그래... 그리고"라고 하며 자기 말을 하라.
2. 상대의 말속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선택해서 들어라.
3. 상대와 어울려 훌륭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져라.
4. 상대가 멋지게 보이게 하라.
5. 이 방법으로 하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알라.

임프러브는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개인 및 그룹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휘하게 한다. 임프러브의 핵심 기술인 능동적 경청, 협업, 집단 창의성은 앞으로 인류 사회가 보여 줄 진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반아 주주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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