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교환 HomeExchange’ / 이양숙, 이순신장군의 후예

2022년 10월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고 추수감사절이 다시 찾아왔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LA에 사는 딸 식구와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Mill Valley 라는 아름다운 계곡마을 꼭대기에 있는 어떤 분의 주택에서 지내기로 했다. 거리는 7시간가량. 운전은  외손자가 16세가 되자 받은 연습용 운전면허 (Permit)를 가지고 첫 장거리 운전을 하기로 했고 내가 옆에 앉았다. 아슬아슬 하지만 생각보다 운전은 빨리 안정되어갔다. 그래도 순간순간 조마조마 해서 곁에 앉은 내 몸이 심한 긴장으로 아플 정도가 되었다. 손자가 혼자 운전을 해야 엄마가 좀 쉴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장거리 여행 동안 운전 연습을 단단히 하기로 결정했다. 뒷자리에서 보고 있던 13세 손녀딸도 15.5세가 되면 연습용 운전면허를 신청하기로 했다. 

Mill Vally 주민들은 대부분 백인들이고 노숙자가 전여 안 보이는게 눈에 보였다. 계곡에 빼곡 들어서 있는 주택들은 3백만~일천만불 상당이 된다고. 이번에 우리는 특별한 숙박을 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맘 편하게 지나고 있다. 딸이 “주택교환 HomeExchange“의 멤버이고 이 집 주인도 멤버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세계 여러 지역에 홈엑스체인지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은 가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고 홈엑스체인지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집을 선택하면 숙박비용을 안들이고 가는 곳 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다. 홈엑스체인지 멤버가 되면 안심하고 집을 무제한 교환할 수 있다. 

홈엑스체인지로 Mill Valley 에서 우리가 묵은 집
홈엑스체인지로 Mill Valley 에서 우리가 묵은 집

HomeExchange 멤버십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첫째로 돈을 절약하면서 세계 각지에 가서 생활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연휴 기간에 여행을 하면 숙박비가 경비의 3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런 경비가 들지 않는다. 음식도 부근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와서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유경험자인 딸은 요리를 하기로 작정하고 집에서 여러 가지를 차에 싣고 왔다.

HomeExchange 멤버들은 안심하고 집을 내 줄 수 있다. 멤버들의 모든 교환은 호스트 및 게스트로서 보장되는 HomeExchange 서비스의 혜택을 받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HomeExchange에서 처리한다. 또  큰 장점은, HomeExchange에 가입하면 이런 문화를 애호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루고 교류하게 된다.

이번에 우리가 와있는 집의 주인은 60대 후반의 미국계 유태인 하바드대 졸 변호사로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다가 은퇴하고 이혼하고 유럽에 여행을 다니고 있다. 거실에 있는 책을 돌아보면 그의 전공과 취미를 짐작할 수 있다. 집주인은 자기 집에 와서 머무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아야 할 정보를 A4용지 9쪽으로 정리해 놓았다. 오랜 동안 HomeExchange를 해온 자취가 보인다. 자기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다고도 적혀있는데 집이 산 위에 있어서 우리는 자전거 탈 엄두는 못 낸다.

(참조: Home Exchange 홈페이지:  https://www.homeexchange.com/)

참으로 여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전쟁의 위협, 이태원 참사, 국가보안법, 등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는 한국 사회가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여유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두 엇갈리는 심정이 시시각각으로 교차한다.

한 가지 사건이 추가로 일어났다. 60년 전에 서울에서 보고 못 본 육촌 오빠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카톡으로 연결된 오빠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 추수감사절 식사는 Mill Valley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Freemont에 살고 있는 82세 오빠 집에 가서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1964년에 부산항을 떠나 이민 길에 오른 후에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사남매가 4개국에 흩어져서 살기 때문에 친척이 귀하다. 그래서 친척 만나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노력해서 만나도록 한다. 

60년 만에 만난 육촌 오빠 집에서 추수감사절 식사
60년 만에 만난 육촌 오빠 집에서 추수감사절 식사

원래 친오빠가 없는 나는 어릴 때부터 성수 오빠를 따랐다. 내가 여중에 다닐 때 오빠는 공대에 다녔다.  그리고는 1964년에 우리는 브라질로, 1966년에 오빠네는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왔다. 육십년 후에 카톡으로 연결되었다. 우리가 먼저 육십년 전 사진과 지금 모습의 사진을 교환하며 만날 준비를 했다.

혜화동에 살 던 성수 오빠네 집 현관에는 이양숙 치과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어머니는 그 당시 여성 치과의사로서 우리 식구의 치아 문제가 있을 때는 항상 이양숙 치과의원에 갔다. 성수 오빠의 아버지는 시인 용아 박용철의 작은 동생 박남철이고, 그들은 우리 아버지 박성철의 사촌 형이다. 박남철 아저씨는 일찍이 강제로 납북 되었다. 연좌제에 걸려있던 성수 오빠의 식구는  미국으로 이주해서 우리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아들·손자·손녀 모두기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2세 3세인 우리 아이들과 만나자 언어문화가 비슷해서 즉시로 대화가 잘 된다. 서울공대 출신인 오빠는 x-ray 찍는 기계들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여 1에이커 땅의 집에서 잘 살고 있다. 20대에 한국 떠나기 전 직장을 다니면서 저축한 돈으로 서울 혜화동에 학림 다방을 차렸다. 지금도 대학로의 명물로 남아있어 비전과 사업가 소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빠집 거실에 이순신 장군 친필의 족자가 걸려있다.
오빠집 거실에 이순신 장군 친필의 족자가 걸려있다.

Freemont 오빠 집 거실에는 치과 의사 였던 이양숙 아주머니가 미국에 이주 후에 도자기 예술가가 되어 만든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 중에는 놀랍게도 거북선 모형을 세라믹과 칠보로 만든 작품이 있었다.

이양숙 도자기 예술가가 만든 칠보 거북선
이양숙 도자기 예술가가 만든 칠보 거북선

그 옆에는 더 놀랍게 이순신 이름이 적혀 있는 족자가 벽에 걸려있었다. 이 원본이 어떻게 여기 걸러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양숙 아주머니의 계보가 덕수 이씨로 이순신 장군의 12대 손이고, 그 족자는 집안에 내려오는 가보라는 것이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친필을... 60년 만에 캘리포니아에서 찾아 간 오빠 집에서 대면하게 되다니... 

이순신 장군 친필의 족자
이순신 장군 친필의 족자

족자의 한문으로 쓰여 있는 글을 <한겨레:온> 필진인 형광석 교수에게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誓海^魚龍動

서해 어룡동

盟山^草木知

맹산 초목지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음(陣中吟)에 나오는 구절)

(李舜臣  아래의 글자는 사인 (수결) 으로 아마  一心 일 것이라 함.)

 

나는 무엇을  바다에 서약하여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도록 하고 산에 맹세하여 초목이 알도록 할까?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오도록 하고 싶다.  나는 매일 한반도가 중립화를 이루어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평화를 알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오늘은 내 머리 속에 남북한 사람들이 “주택교환 HomeExchange“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고 산천이 바뀌면  남쪽에서 음식을 차에 싣고 북쪽 누구의 집에 가서 지내고 오는 주택 교환을 꿈 꾸게 될까?  

윗세대의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는  자기 집을 남에게 와서 얼마간 쓰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그랬다. 내가 웨스트 헐리우드와 전남 영암에 작은 거주지를 만들어 가지고 왕래하며 활동하게 되자,  자기 집도 주택교환을 하고 있는 딸이 나에게 HomeExchange에 등록하여 한쪽 집을 비어 놓을 때 누가 와서 지나도록 하라는 말을 해 왔다. 그러나 그럴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내 개인 생활공간 속으로 누가 들어 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남한 사람 북한 사람들과 주택교환 하는 꿈을 그려 보고 싶다. 주거지라는 것은 살다가 옮기기도 하고 죽으면 두고 가는 것이 아닌가.

HomeExchange에 나의 집을 등록하는 것은 쉽고, 연락하는 사람들과 상황을 맞춰보고 주택교환을 하는 것은 어렵잖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이미 주택교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꿈을 가지고 그려가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마음을 내고 환경을 만들어 가면 이루어진다. 

Build, and they will come.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반아 주주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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