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⑤김옥사나
고향 연해주에서 간호학 공부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 와 살다
차가운 몸으로 4년 만의 귀향

김올리아나, 김엘레나, 예고르씨가 직접 고른 김옥사나씨의 웨딩드레스. 유가족 제공
김올리아나, 김엘레나, 예고르씨가 직접 고른 김옥사나씨의 웨딩드레스. 유가족 제공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그는 2018년 한국에 왔다. 이제 막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한 스물한 살이었다. 어려서 친구처럼 지낸 두 언니를 따라온 한국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그에겐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미래를 약속한 애인 예고르(27)씨와, 반려묘 살라몬이다. 스물다섯 김옥사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다.

옥사나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43㎞가량 떨어진 스파스크달니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옥사나와 다섯 살 위 언니, 엄마, 아빠는 이곳에서 4대째 살고 있는 고려인 가족이다.

옥사나의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네 살 위인 사촌언니 김올리아나씨의 집이 있었다. 사촌이지만 옥사나에게 올리아나씨는 친언니나 다름없었다. 같은 마을에 살며 대학교 입학 전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어딜 가든 함께였다. 옥사나는 항상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가장 먼저 두 언니를 소개했다. “여기는 내 언니들이야.”

피아노 잘 치고 케이팝 사랑한 소녀

옥사나는 남을 잘 도왔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유쾌했다.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다. 생일 때면 마을 파티가 열린 듯 사람들이 모였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도움을 줬어요. 정말 친절했어요. 누구와도 갈등이 없었고,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모두가, 그를 사랑했어요.”(사촌언니 김올리아나씨)

언니들이 먼저 대학에 간 뒤, 옥사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간호전문대에 진학했다. 주사와 피를 무서워하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옥사나에게 ‘딱 맞는' 전공이었다.

소녀는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를 곧잘 불렀고, 피아노 연주에도 소질이 있어 연주회에 나갈 때마다 입상했다. 케이팝(K-Pop)에도 푹 빠졌다.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과 제이와이제이(JYJ)의 김재중을 가장 좋아했다. 옥사나는 언젠가는 한국에 가는 것을 꿈꿨다. 먼저 대학을 졸업한 올리아나씨가 2015년 한국으로 향했다. 이듬해 옥사나의 친언니 엘레나씨가 출국했다. 옥사나는 2018년 11월, 한국에 발을 디뎠다.

 

한국에 온 뒤 언니들과 함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했다. 1년 뒤부터는 서로 떨어져 일하는 곳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한 달에 두세 번은 만났다. 서울 동대문에서 일한 올리아나씨와 서울 용산에서 일한 옥사나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22년 여름 퇴근길이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함께 퇴근했다. 부평역에서 올리아나씨가 먼저 내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 본 옥사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올리아나씨는 상상도 못 했다.

결혼 약속한 애인이 안치실에서 입힌 드레스

10월29일, 옥사나는 핼러윈을 좋아하는 친구가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에 이태원에 갔다. 옥사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싫어했다. 이태원처럼 사람 많은 곳에는 잘 놀러 가지도 않았다. 핼러윈은 좋아하지도 않았고, 즐겨본 적도 없었다.

그날따라 우연이 겹쳤다. 그날 옥사나가 만난 친구가 핼러윈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태원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옥사나 남자친구 예고르씨가 허리가 아프지 않아 함께 갔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올리아나씨는 참사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되감아보며 의미 없는 가정의 질문을 거듭한다.

그날 밤 11시40분, 올리아나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옥사나와 이태원에서 만난다는 친구였다. “옥사나 남자친구 전화번호 알아요?” “왜?” “옥사나가 숨을 안 쉬어요. 한 시간 동안 도로에 누워 있어요.”

올리아나씨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사람이 너무 많아요. 엄청 몰려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숨을 안 쉬어요.” 정신없는 상황에 전화가 끊겼다. 20분가량 흐른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구급차가 왔는데, 너무 늦었어요… 옥사나가… 죽었어요.”

올리아나씨는 바로 이태원에 갔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 갔지만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병원 앞에서, 다시 오전 11시까지 한남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다렸지만 누구도 옥사나의 행방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올리아나씨는 구급차가 갔다는 병원 목록을 받아 엘레나, 예고르씨와 같이 하나씩 하나씩 찾아다녔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강동경희대병원에 옥사나가 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10월30일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경찰은 옥사나가 해밀톤호텔 뒤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 10시께 나왔다고 했다. 인파에 눌려 40분가량 옴짝달싹 못했던 옥사나는 넘어졌다가 구조됐다. 이후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김옥사나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김옥사나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10월31일, 올리아나와 엘레나, 예고르씨는 옷가게를 돌았다. 옥사나에게 입힐 웨딩드레스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자란 동네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숨지면 땅에 묻기 전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전통이 있다.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는데 옥사나가 입을 하얀색 드레스를 골라야 했다. 울면서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모습에 가게 직원이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고 물었다. 때마침 가게 텔레비전에서 이태원 참사 뉴스가 흘러나왔다. 올리아나 일행은 대답 대신 목놓아 울었다.

2023년 미국이나 러시아로 이주해 결혼하자고 약속한 예고르씨가 병원 안치실에서 직접 옥사나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혔다. 예고르씨는 일 때문에 러시아로 함께 갈 수 없었다. 올리아나씨와 엘레나씨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옥사나와 함께 배를 탔다. 동해항에서 출발한 배는 24시간이 꼬박 지나 러시아에 도착했다. 옥사나는 11월5일 밤에야 스파스크달니의 집에서 엄마 아빠를 만났다.

 

러시아에서 치른 김옥사나씨의 장례식. 유가족 제공
러시아에서 치른 김옥사나씨의 장례식. 유가족 제공

아빠 김이고리(56)씨와 엄마 김주안나(52)씨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누워 있는 옥사나를 처음 봤을 때의 마음을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고통스럽다. 다음날, 옥사나를 추모하기 위해 수백 명이 집을 찾았다. 옥사나의 친구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넌 천사였어.” “정말 그리울 거야.”

말 잇지 못한 아빠 “거기선 행복하렴”

그 뒤 아빠 김이고리씨는 홀로 한국에 와서 이태원을 찾았다. 막내딸이 눈감은 장소를 직접 보고 싶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나오자, 역 앞에서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해밀톤호텔 옆골목에 다다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옥사나의 사진이 골목 한쪽 벽에 붙어 있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러시아에 있는 김옥사나씨의 아빠 김이고리(오른쪽)씨와 엄마 김주안나씨가 <한겨레21>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러시아에 있는 김옥사나씨의 아빠 김이고리(오른쪽)씨와 엄마 김주안나씨가 <한겨레21>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너무 안타까워요. 한국에도 희생자가 많은데 유가족들에게 추모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12월7일 화상으로 만난 김이고리씨가 말했다. “옥사나야, 거기선 자기 자신을 잘 챙겼으면 좋겠어. 늘 행복하렴.”

1997년 5월7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김옥사나는 2022년 10월30일 대한민국 서울 이태원에서 눈을 감았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류석우 <한겨레21> 기자 raintin@hani.co.kr

원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1324.html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장 

한겨레21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