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10시15분 이후 11시까지 경찰 신고 120건
“살려주세요” “숨도 못 쉬겠어”…비명만 남은 신고도
아비규환 한 시간 동안 지휘부 공백…“책임 따져야”

지난달 3일 오전 압사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3일 오전 압사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의 모습. 연합뉴스

“이태원 오늘 핼러윈 축제하잖아요. 내 딸 친구가 사람한테 깔려서 죽어간다고 하는데 왜 출동을 안 해요? 딸이 신고했다는데 왜 안 가요? 119도 안 오고 경찰도 안 온다고 딸이 울고불고하는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월29일 밤, 10시15분부터 11시까지 압사 사고를 알리는 120건의 112 신고가 이태원 지역에서 접수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비명과 살려달라는 호소, 말도 채 잇지 못하는 신고가 빗발쳤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밤 11시39분에야 압사 신고가 있다고 ‘윗선’에 처음 보고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저녁 6시34분부터 밤 10시11분까지 11건의 112 신고 녹취록만 공개했었다.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 용산경찰서의 ‘10월29일 오후 10시부터 11시까지 이태원 112 신고 현황’ 자료를 보면, 이날 밤 10시17분부터 11시까지 접수된 112 신고는 139건이었다. 이 가운데 이태원 인근에서 벌어진 단순 시비 혹은 주취자 연행 등의 사고를 제외하면 120건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신고로 추정된다. 43분간 21초에 한번씩 구조를 요청하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신고한 120건 중 “압사” “깔려 죽겠다” “숨을 못 쉬겠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통제해달라”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직접적인 설명과 지원 요청이 담긴 신고만 해도 74건에 이른다. 비명과 신음 소리 등으로 긴급함을 알리는 신고는 24건이 들어왔다. 인근에 사람이 몰려 현장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주차 교통 문제는 17건이 접수됐다. 피해자들이 직접 “살려달라”고 신고해도 소용이 없자 가족들에게 연락해 압사 사고를 알리고 경찰 출동을 독촉한 신고는 5건이다.

“아들이 이태원에서 놀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며 ‘압사를 당하고 있어 숨을 못 쉬고 있다’고 하더라”(10시49분), “딸이 살려달라고 전화가 왔다”(10시54분)는 가족 전화의 기록에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담겼다. 1시간 가까이 경찰과 소방에 신고해도 혼란이 잦아들지 않자 피해자들이 가족과 지인들에게까지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건물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거나 건물 안으로 대피할 수가 없다는 신고도 눈에 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건물로도 대피가 안 된다”는 신고가 들어온 뒤 1초도 지나지 않아 “이태원 술집인데 문밖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쓰러져 있다. 직원이 사태를 파악하고 문을 잠갔는데 두드리고 열어달라고 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의 시민들이 재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안내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시각은 오후 10시27분이다.

말을 이어갈 수 없는 다급한 신고도 여러건 있다. “제발 살려주세요.” “잠깐만요, 내 발 잡고 있어야 돼….” “밀지 마.” “숨도 못 쉬겠어요.” “빨리요.” 비명과 신음만 들리는 신고들도 있었다. 밤 10시56분 ㄱ씨는 “친구가 깔려서 다쳤다”고 했고, 경찰은 다음날 친구의 사망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밤 경찰에는 사고를 알리는 신고가 밀려들었고 비명은 그치지 않았지만 구조는 더디기만 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밤 11시5분,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0시59분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시20분에 참사를 인지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다음날 0시1분에 보고를 받았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동안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112 신고가 쏟아지는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송병주 당시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은 윗선에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신 112상황실 무전망에서 “차도로 쏟아지는 인파를 인도로 올려보내라”는 지시를 반복했다. 야간에 서울경찰청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건·사고를 지휘할 수 있는 류미진 당시 상황관리관은 자신의 사무실에 머물다 밤 11시39분에야 사고를 인지했다.

윤건영 의원은 “이태원 참사 신고 전화가 빗발치던 밤 10시부터 1시간 동안 경찰은 물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 대통령실 등 각 기관 지휘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있었다. 위기관리 능력이 전무했던 셈이다”라며 “현장에만 책임을 묻는 지금 같은 경찰 수사에는 한계 있다. 철저한 수사와 조사로 지휘부 공백의 원인과 그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옮긴이 : 김미경 편집장 

한겨레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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