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정책 이대로 좋은가?

수원에 우리집은 네팔여성이주노동자들의 보금자리가 된 지 오래다. 이제 9년이 되어간다. 이주노동자들에 짐 가방이 늘어져있다.
수원에 우리집은 네팔여성이주노동자들의 보금자리가 된 지 오래다. 이제 9년이 되어간다. 이주노동자들에 짐 가방이 늘어져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변변한 직장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다. 나는 16세 중3 때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변변한 직장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매우 오래전부터 이력서를 쓸 때 하루 이틀을 일해도 좋다. 사장을 내가 자유자재로 바꾸며 살면된다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날 이제 멀지 않아 환갑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으니 참 바보였던 것도 같고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니 행복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살다가 2009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우키라이나에서 만 2년을 보내고 돌아와서 50세 이전에 결혼을 하자고 마음먹고 네팔에 가서 6~7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귀국해서 가장 오래된 1년 7개월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네팔대지진이 나자 다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네팔 현지에 가서 아내와 함께 네팔지진구호활동을 하고 만1년 만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아내는 간간히 네팔식당을 하자고, 네팔인도식당을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번번히 나의 곤궁함을 확인하면서 거절했었다. 그렇게 견디기를 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현재 머물고 있는 대전역 앞에 식당을 차렸다.

식당을 하기 전부터 내가 머물던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에 작은 월세방 옆에 또 다른 셋방을 얻어 네팔이주여성노동자 쉼터를 열어 직장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왔다. 그러다 대전에서 식당을 하게 되어 부득이 쉼터도 정리할 생각이었다. 후일 가능하다면 대전역 주변에 다시 열 생각이었다. 그러나 식당을 시작한 후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당시 짧은 시간 400여명이 머물며 구직활동을 했던 것을 생각하니 쉽사리 정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없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금은 대전역 앞에 식당 영업 공간 39평, 그리고 네팔커뮤니티센타와 쉼터를 동시에 운영하는 60평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식당은 5년 8개월이 되었고 커뮤니티센타는 2년이 넘었다.

쉼터에서만 머물며 지내는 답답함을 덜어주자고 대동하늘공원에 데리고 가서 대전시내를 둘러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쉼터에서만 머물며 지내는 답답함을 덜어주자고 대동하늘공원에 데리고 가서 대전시내를 둘러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최근까지 수원 여성이주노동자쉼터 900여명, 대전 남성이주노동자쉼터 200여명 합이 1,100명이 넘는 네팔 남성과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쉼터를 이용해 불편한 생활이지만 구직활동은 원활하게 하고 새로운 직장들을 찾아 떠났다. 그래서 나는 식당 일과 외에도 이런 저런 잡다한 상담들로 매우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가끔 네팔에 가서도 또 인도에 가서도 그들과 소통하며 숙소를 제공해야 했다. 이직도 자유롭지 못하고 구직도 자유롭지 못한 그들을 살피다보니 이런 저런 잡다한 지식의 량이 늘어만 간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주노동자들에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정책소통 창구는 전무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모든 것이 문서화된 것만을 따르는 현실이 그런 제대로 된 잡다한 현실을 정책에 반영할 여지를 주지 않는 탓이다. 2019년말 2020년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이후 외국이주노동자들은 새로 유입되기보다 기존에 이주노동자들에게 체류기간을 연장해주는 특혜로 노동의 기회를 제공했고 사업주들에게는 고용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다 최근 4~5개월 전부터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다양한 업종에서 인력을 충원하지만 현장에서는 숙련된 노동인력 외에는 일회용처럼 쓰고 버리는 격으로 임시직처럼 고용한 후 해고와 비슷하게 내보내고 만다. 혹한기에 접어든 농촌인력들은 기존에 필수인원들의 숙련도를 감안해서 잔류시킨 채 1~2개월 된 이주노동자들을 내보내 버리는 것이다.

전북에 한 양파농가 고용주 부부가 네팔과 캄보디아 여성이주노동자에게 네팔음식을 먹을기회를 제공한다며 찾아왔다. 고마운 분이란 생각이다.
전북에 한 양파농가 고용주 부부가 네팔과 캄보디아 여성이주노동자에게 네팔음식을 먹을기회를 제공한다며 찾아왔다. 고마운 분이란 생각이다.

그들이 체류할 곳이 안정적이라면 그런 어려운 사업주들에 사정도 이해할 아량을 가질만 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 혹한기에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오갈 곳이 없다. 전국에 많은 이주노동자 쉼터도 정부나 기관의 지원을 받아오던 곳이 문을 닫은 곳이 많다. 그것은 코로나를 맞아 방역정책에 따라 운영되어오던 곳들이 정부나 기관지원이 중단되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곳은 어떤 기관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기에 문을 닫을 일도 없고 스스로 방역장비도 구하고 방역정책에 위반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운영을 이어온 터라 지금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시설이다. 그만큼 개인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한 사업주가 전화를 걸어 구직을 요청해왔다. 쉼터에 노동자들이 공장 취업 가능자 6명, 농업취업 가능자 4명이 있다고 했더니 공장 취업 가능 노동자가 필요하다며 직접 찾아왔다. 노동자들과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사업주에게 그냥 내보내고 채용할 때만 연락하지 말고 이들이 오갈 때 없는 사정을 감안해서 쉼터에도 관심을 좀 가져달라했더니 자리를 떠나면서 계좌를 묻는다. 아니 어디서 후원해주는 곳이 없느냐? 그러더니 명함을 건네며 제 이름을 확인하시면 제가 후원한 것으로 이해하시란다. 말뿐이었던 "그도 고맙더라!"

가끔은 쉼터에 머물던 네팔이주노동자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식당에서 네팔 악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끔은 쉼터에 머물던 네팔이주노동자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식당에서 네팔 악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하의 날씨는 그 어느 해보다 길고 거친 날들이다. 제발 필요할 때만 바라보고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마는 일회용처럼 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멀리 타국에 와서 어렵게 살아가는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부와 고용주들은 좀 더 세밀하게 그들의 이직과 구직활동을 돕는 시스템을 갖추어 주었으면 한다.

제발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멋모르고 살아가는 철부지한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소모품으로 전락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들을 돕는다는 측은지심에 내가 소모된다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세상의 어려움 중에 나는 홀로 독야청청한 소나무처럼 자랑삼아 웃는다. 나는 이 엄동설한의 세월, 엄혹한 정치파탄의 시대에도 굳건히 내 몫의 선한 영향력을 지키며 잘났다고 아내에게 "우리는 잘살고 있다."며 우리는 나중에 돈 벌어서가 아닌 지금 현재 이렇게 1,1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우리 집에서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누가 인정하든 안하든 나는 지금 하고 있다며 웃픈 날의 한파를 이겨간다. 모두 힘내시라. 저 천박한 정치파탄의 주범들은 훗날 반드시 죄값을 치르리라.

김형효 객원편집위원  tiger3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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