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이라

오촌과의 송년회 약속을 전하려고 그저께 사촌 동생 가게로 전화를 세 번이나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깐 가게를 비웠나? 날이 추워 가게를 안 열었나? 생각하며 결국 통화를 못 하고 어제가 되었다. 

동생은 핸드폰이 있는 데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전화 오는 것이 싫다고 안 쓴다. 내가 답답해서 핸드폰의 편리함을 알려줘도 그 고지식한 고집을 꺾지 못했다 어제 오후가 되어 갑자기 그저께 통화 못한 생각이 들어 다시 가게로 전화했는데, 어럽쇼! 이번에는 전화 전원 자체가 꺼져있다는 멘트가 나온다. 

이것은 또 무슨 상황인가? ‘어제는 세 번이나 전화를 받지 않더니 오늘은 아예 전원을 꺼놓다니, 무슨 일이 있나?' 답답해하고 있는데 점점 기분이 불안해졌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니 똑같은 '전원 꺼짐' 멘트가 나온다.

날은 어둑해지고 춥고 밖에 나가기 싫은데 불길한 생각이 엄습하더니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동생은 활달하지 못한 성격으로, 작년에 조상 땅을 포기한 것에 대해 내가 며칠 전 격앙되어 꾸중 비슷한 말을 했는데 그것에 충격받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차를 몰고 동생의 가게로 향했다. 

38년 전 입사 동기가 자살하기 전날 나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나는 자살 신호의 악수를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쳤던 일이 있었다. 그 친구의 자살 이후 나는 한동안 멍청하게 악수만 한 내 손을 자책하며 털어내곤 하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그런 우를 저지르면 안 되겠지, 생각하면서 차를 달려가는데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내가 최초 불길한 현장을 발견하면 경찰이 나를 또 얼마나 귀찮게 하고 의심할까? 그런 중에 동생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가르치는데 그것을 아는 동생이 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니 불안감이 사르르 녹으며 마음이 안정되었다. 

가게에 도착하여 보니 불이 켜져 있어 안심하고 문을 열고 가게 안에 들어서니 동생은 손님과 대화하고 있었다.  안심되면서도 좀 머쓱한 기분이었다. 아무 일 없는 세상에 나 혼자 세상 걱정 다 했구나.

"왜 전화도 안 받고 꺼놓고 그러느냐" 물어보니 동업자들 모임에 갔다 오느라고 전원을 빼고 갔다 왔다는 것이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오촌과의 모임소식을 알려주고 함께 저녁식사 후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는 또 어제 아침부터 부부싸움을 하고 기분이 상해 안방에 칩거하고 있는 지엄하신 아내가 계신데 내가 말도 없이 나와 무슨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새로운 걱정이 나를 또 사로잡았다

 

제주 애월읍 하늘의 먹구름과 흰구름 사이를 떠가는 반달 /필자사진
제주 애월읍 하늘의 먹구름과 흰구름 사이를 떠가는 반달 /필자사진

 

편집 :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july2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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