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파주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영화 <2차 송환>을 봤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 <태일이>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이은 감독이 한반도평화경제회의 동지들을 초청한 자리였습니다.

제가 영화나 TV연속극 등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감동적으로 감상했습니다. 마침 영화 주인공 김영식 선생은 20여 년 전 전주 계실 때 몇 번 만나고, 조연 유영쇠 선생은 익산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십 수 년 가까이 모시던 분이라, 지난 일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12월엔 한반도평화경제회의 동지들과 낙성대 ‘만남의 집’에 계시는 장기수 선생들께 인사드렸습니다. 90 안팎 어르신들이라 돌아가시기 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자는 뜻을 모은 거죠.

인사드리러 갔다가 인사 받고 온 셈이 됐습니다. 맛있는 점심에 막걸리 대접 받으며 책까지 선물로 챙겨왔으니까요. 헤어지기 전 김영식 선생이 저를 따로 부르시더군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주시려고요. “미국은 분단 원흉이고 통일 방해꾼입니다. 교수님은 미국에서 공부했으니 영어 좀 하지 않습니까. 미국사람들에게 제발 우리 민족통일 방해하지 말고 전쟁 위기 부추기지 말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그날 선물로 받아온 장기수 선생들의 분단.전쟁.통일과 관련한 치열하면서도 처절한 삶을 다룬 책 3권을 어제까지 읽고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소개하며 추천합니다.

1) 민병래,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원더박스, 2022)

한글을 모르는 노인과 이주민을 상대로 문해교실을 운영하는 저자가 2020년 송환되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 존재를 알게 된 뒤 2년여 동안 열한 분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20-30년 감옥생활 하는 동안 혹독한 강제전향을 당하고, 겨울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마루에서 새우잠 자며, 굶주림으로 생쥐를 300마리나 잡아먹는 등 고통을 초인적으로 버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은 추천사에서 “세계 최장기수 기록 보유자가 43년 만에 출옥한 한국의 김선명..... 장기수 올림픽이 개최된다면 우리나라가 줄줄이 메달을 따고도 선수들이 남아서 여러 나라에 스카우트당할 판이다.....”

2) 양원진,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오며≫ (양심수 후원회, 2018-22)

1929년생 94세로 생존하는 최고령 장기수 양원진 선생은 일제 때 강제징집 당하고, 해방 후엔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의무교육제 실시’, ‘남녀평등 실시’, ‘8시간 노동제’ 등의 남로당 구호를 보고 ‘공정한 사회’를 꿈꾸며 18세 남로당 비밀당원이 됐다는군요. 서울 경희대학 외교학과에 다니며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에 능통한 지식인도 됐고요. 전쟁이 터지자 의용군에 입대해 휴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3년간 싸운 생생한 기록을 읽으면 마치 한국전쟁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3) 김영식, ≪통일조국에서 화목하게 삽시다≫ (양심수 후원회, 2020)

영화 <송환>에서 ‘세상에서 제일 순박한 얼굴을 가진 분‘으로 묘사되는 주인공이죠. 낙성대 ‘만남의 집’ 정원사 겸 텃밭 농부이기도 하고요. 강원도 깡촌 출신으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감옥에서 나와 일기처럼 꾸준히 써온 글을 정리해 묶어낸 책입니다. 서울에서 20년 동안 지하철과 거리에서 ‘후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자’는 등의 구호가 적힌 ‘몸벽보’를 두르고 유인물을 나눠주다, 폭행을 당하거나 쫓겨나 벌금을 물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중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시위 현장에서 만나는 어린이.학생들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군요. ㅠ

편집 : 박효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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