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퇴근길
박 명 수 (목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먼지를 뒤집어쓴 시력으로는
달팽이 관속으로 퇴근하기가 쉽지 않다
온몸을 회복하는 밤에는 가장 밝은 촉수를 달고
아침이 오면 연체동물 같은 몸짓으로 길 위를 헤집는다
하루 노동을 마친 가장은
점액질로 끈끈한 달팽이가 되어
어스름한 귀갓길에 푸줏간에 들러
더듬이 손을 하고 돼지고기 한 근을 들어 올린다
손에 붙잡기도 버거운 곳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붙인 채
천근 무게로 덮은 삶의 보따리가 시간을 곁눈질하면
웅크려 앉은 석양의 그림자가 되어 고단함을 갈무리한다
초승달이 떠오르면
반달이 뒤따라 나선 것처럼
남풍으로 고단한 싸락눈을 잠재우고
꽃샘바람에 저항하는 달팽이는 절지동물이 되어간다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퇴근한 가장 얼굴에 또 다른 촉수를 달고
구겨진 팔 꺾인 발목에서 질펀한 점액을 분비한 후
숙면 같은 밤에 상실과 회복 사이를 밤새도록 넘나든다
곰팡이는 습기를 찾아 좋아하고
양서류는 젖어있는 곳을 찾아 즐기듯이
어둠에 저항하는 옷자락은 희망이라는 날갯짓
이름표를 찾아 옷자락을 붙잡은 달팽이는 아침에 퇴근한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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