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06년 된 날이다. '안 의사 순국 106주년 추모식'이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주관으로 이날 낮 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열렸다. 그는 1909년 2월 11명의 동지들과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태극기에 ‘대한독립’ 혈서를 썼다. 그 해 10월26일 오전 9시30분 초대 조선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1910년 3월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요즘 안 의사를 제대로 아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다고나 할까. 그가 독립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한 사상가란 것을 아는 이는 더욱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일 오후 방송된 KBS2-TV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은 ‘하얼빈 의거’ 직전 3일간의 흔적, 거사 당일, 뤼순감옥의 재판과 최후에 관한 내용들을 시청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했다. 이날 시청률은 14%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프로그램 기획과 탄탄한 구성, 역사적 사실을 대체로 바른 관점에서 보여주었음에도 불편하지만 지적할 것이 하나 있다. 출연자들은 안 의사가 의거 3일 전인 1909년 10월 23일 아침 동지들과 거사를 논의한 후 들렀다는 시내 사진관에 들어갔다. 거기서 안 의사가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던 중 한 개그맨이 “여기서 (안 의사가 사진을 함께) 찍고 이토오를 암살하고~”라고 말했다. 안 의사의 의거를 ‘암살’이라고 표현한 내용을 거르지 않고 방송했다.

암살(暗殺). ‘몰래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안 의사 의거 후 일제는 그를 ‘이토 암살자’라고 했다. 지금도 일본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부른다. 1910년 3월 26일 그가 처형당한 후에는 '이토 암살자 안중근' 사진엽서까지 만들어서 그가 범죄자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그가 처형되기 전인 2월17일 그는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에게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것을 반대했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해할 뿐이다. 동양의 한 사람인 내가 이런 나쁜 자를 제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자료사진: '이토 암살자 안중근'이라는 제하의 사진엽서

당시는 1904년 러-일 전쟁이후 대한제국 의병과 일본제국 사이에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안 의사의 거사도 이때 발생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안 의사의 의거는 해외 의병전쟁의 일환이요, 전시에 합법적 교전행위였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전쟁 포로였다. 그래서 안 의사는 법정에서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하여 이토를 죽였고, 따라서 일반 형사범으로서의 ‘암살자’가 아니라 국제법상의 (송환해야 하는) '포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 의사를 잘 아는 이가 거의 없으니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도 적을 것이다. 문제는 한 개그맨이 무심코 사용한 말이 영향력이 큰 공중파 방송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날 방송에 여러 매체들은 ‘울림을 준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칭찬하며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는데 버젓이 ‘암살’이란 용어를 썼다. 역사교과서가 왜곡되고 저널리즘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일은 그냥 눈감고 넘길 수만은 없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세심한 관심과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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