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4일은 24절기 가운데 맨처음에 해당하는 입춘(立春)입니다. 이제 소한(小寒), 대한(大寒) 추위가 다 지나고, 봄이 들어서기 시작한다는 뜻의 절기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입춘과 잘 어울리는 시 한편을 골라보았습니다. 목가적(牧歌的) 서정시를 많이 발표한 신석정(辛夕汀) 시인의 대춘부’(待春賦)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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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춘부(待春賦)

                                       - 신석정 -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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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는 한번 읽어보아도 그렇게 난해(難解)한 시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평이한 우리말로 시인이 느낀 감정을 운율이 드러나도록 잘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좋은 시는 누구나 읽어도 쉽게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되는 시'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1연에서 알수 있듯이, 이 시의 구체적 계절적 배경은 한겨울인 것 같습니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이라는 시행에서 추측해보면, 아마도 입춘(立春)이 그리 멀지 않은 1월 말경이 아닐까요?

3연을 읽어보면, 시인은 아마 아직도 영하(零下)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산()을 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라는 시행에서 추측할 수도 있고, 1연의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라는 시행에서도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시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마지막 4연은 이 시의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나무(식물)와 짐승(동물)과  우리(인간)’이라는 모든 생명체는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 라는 인식을 확인하고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은 계절적인 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겨울처럼 엄혹한 시대적 배경의 현실에서, 봄처럼 자유와 정의가 꽃피는 시절을 꿈꾸고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시인은 왜 대춘부’(待春賦)라는 시제를 우리말로 쓴 시에 붙였을까요? ‘대춘부’(待春賦)는 한자 그대로, ‘봄을 기다리며 운()을 맞추어 지은 한시(漢詩)’라는 시의 한 형태인데, 여기서의 운()이란 한시 각 행()의 마지막 한자어가 지닌 발음상의 각운(脚韻)을 말한다고 합니다.

위의 시 전체를 놓고 보면, 각 연의 각 행()에서 우리말 각운이 잘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예를 들어보면) 1연에서는 1,2,4행의 ‘-3,5행의 ‘-가 그렇고, 2연에서는 1,2행의 ‘-’ 3연에서는 1,3행의 ‘-이 그렇고, 마지막 4연에서는 1,2,3행의 ‘-()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1,2,4연의 마지막 행() 끝의 글자만 보아도 ‘-‘-‘-라는 글자가 모음 라는 각운(脚韻)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석하고 보니, 신석정 시인은 봄을 기다리며 운율을 맞추어 지은 우리말 시의 제목을 일부러 각운이 들어있는 한시(漢詩)처럼 대춘부’(待春賦)라고 시제를 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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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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