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 글을 쓴다. 하지만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너무 형편없다. 이게 뭐야, 글 쓰레기잖아? 얼굴을 붉히며 낙담한다. 매번 그렇다. 검토하고 수정 보완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정도 글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의구심도 갖는다. 절필도 고려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다 부족함의 소산이니 제 글들을 읽을 때 감안하시면 좋겠다.

 

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을 바보멍청이라 부른다. 어떨 때는 똑똑한 자를 부르는 반의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기에게 위험과 위협을 가하지 못할 쉽고 약한 상대를 그렇게 부른다. 이는 놀림이며 희롱이고 멸시하는 말이다. 상대가 이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때 한다. 화내기보다는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웃기도 한다. 자기를 조롱하는 말임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문제 삼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편하게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놀리는 자나 놀림을 당하는 자나 별 부담이 없다. 그를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렇다. 농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그러함을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자도 있다. 나쁜 의도로 말하는 사람은 진정 부족하고 열등한 자이리라. 이 경우 바보멍청이와 똑똑한 자가 전도되지 않을까?

 

그런데 바보멍청이는 어떤 자를 말하는가? 표현이 솔직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천진하고 순수하며 순진무구하다. 감정을 속이지 않고 몸과 맘에서 울어 나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은유가 없고 직관적이다. 숨김과 가식이 없으므로 정직하다. 그의 마음은 맑은 물과 같고 정신은 푸른 하늘과 같다. 때로는 진실하고 솔직함에 가슴이 먹먹하여 부럽기도/부끄럽기도 하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하고 흠칫 놀란다. 나같이 음흉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에 그럴까? 그것 참... 이럴 진데 바보멍청이가 어찌 조롱의 대상이고 폄훼할 수 있단 말인가? 바보멍청이는 우리 모두의 삶의 표상이요 모델이 아닐까? 누가 잘못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부족하고 모자람이란 군더더기가 없음이다. 외양에 덧댐이 없음이다. 껍데기가 매끄럽지 못하고 빛나지 않음이다. 겉만 보고 속도 비었다 단정하고, 철이 없다 여기며, 가식과 비유가 없음을 탓함이다. 사실 군더더기가 없으면 분명하고 확실하다. 단박에 이해하니 소통도 원활하다. 숨긴 비밀이 없으므로 속내가 바로 탄로 난다 할까? 그래도 거리낌이 없다. 분명함은 단순명료하고 확실하기에. 뻔한 것을 빙빙 둘러대지 않고 직설한다. 바보멍청이가 그러리라.

 

만사는 단순명료해야 결단이 쉽고 실행도 빠르며 삶도 가벼워진다. 복잡함은 속임과 숨김이 있다. 확실하지 않기에 군더더기가 붙어 복잡하다. 속이기 위해서는 꾸밈과 장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진리와 진실은 허울을 다 벗어버린다. 모두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만천하에 당당히 공개된다. 잘 보이거나 예쁘게 보이기 위한 포장외피가 필요 없다. 어떤 자들은 더 복잡함을 위해 미묘하고 신비하게 표현한다. 하다하다 안되면 기적이나 기행을 들먹이고 심지어 신을 불러 그의 뜻이라 하기도 한다. 거기에 속은 자들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내 몸과 맘부터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걷어 내리라. 바보멍청이라 손가락질 받고 조롱거리가 되더라도. 우선 그래야 내 자신을 속이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자신을 속이면서 어찌 진실한 자신이 되겠으며 내부충실을 기하겠는가? 내부충실 없이 어찌 사람다운 외형을 갖추겠는가? 실제 삶에 있어서는 뼈대만으로 살기 어렵고 살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 또한 무시할 수 없으리라. 속세에 살므로 속인의 기질로 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최대한 그 허울을 벗기 위해 노력하리라. 당장 의식주부터 그리하고 내면의 양식을 쌓아 찌꺼기를 청소하리라. 어찌 단박에 뜻대로 되겠는가만 최대한 가까이 가도록 힘쓰리라. 이런 상태가 되지 않고는 참 삶, 참 나의 인생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자초한 것도 있지만 불시에 당하기도 한다. 자초했다면 스스로 벗어나야겠지만 남에 의해 덧씌워진 경우엔 난감하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이랄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미 심신에 굳어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문제 삼고 조롱한다. 당하는 자보다 가하는 자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귀책으로 여기리라. 어떤 경우에는 당하는 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가하는 자들은 역지사지해야 하리라. 바보멍청이 기질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깨어있는 자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하리라.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규약 및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하리라. 앞장서 그들을 자신에겐 씌우고 솔선하여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남에게 씌워서 강요 말아야 하리라. 특히 자신은 회피하거나 부당하다고 외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 만약 상대가 부당하게 씌워져 있음을 모른다면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이 같이 사는 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한땐 바보멍청이로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실제가 아니어도 흉내라도 내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에는 너무 요원했고, 나의 어정쩡한 상태가 이도저도 아니었다. 아마 저세상에 가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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