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㉑ 이경훈
매일 밤 “엄마, 잘 자” 안아주던
다정다감한 아들…꿈은 영화감독
구상하던 엔딩 장면도 ‘따뜻한 햇살’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엄마, 내가 만든 밥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 잘 먹어야 아픈 걸 이겨낼 수 있대.”

엄마의 휴대전화에는 음식 사진이 가득하다. 다정한 아들, 경훈에 대한 기억이 깃든 사진이다. 요리 솜씨가 좋은 경훈은 2022년 6월 코로나19에 걸려 자가격리하는 엄마를 위해 삼시 세끼를 차려 방문 앞에 놓아뒀다. 엄마가 똑같은 음식만 먹으면 질릴까봐 메뉴도 다양하게 골랐다. 친구가 기꺼이 투자할 생각이 있으니 ‘식당을 열어보라’고 진지하게 조언할 때는 웃어넘겼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요리 솜씨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이경훈씨가 가족에게 만들어준 요리들. 유가족 제공
이경훈씨가 가족에게 만들어준 요리들. 유가족 제공

 

 

“엄마 절대 영화 중간에 일어나지 마”

경훈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스크린 밖에서 노력하는 스태프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잖아. 이제 절대 중간에 일어서서 나오지 않을 거야. 엄마도 영화 보면 꼭 스태프 이름을 끝까지 다 봐줘.” 경훈은 고향인 경남을 떠나 인천의 대학교에 진학한 뒤로도 서울 방송사를 오가며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 뒤 외주제작사 피디(PD)로 취직해 일했다.

직장에선 매일 야근했기에 지하철이 끊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경훈은 불평하지 않았다.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는 길엔 엄마에게 전화해 그날 있던 일을 도란도란 얘기했다.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덕분에 직장에서도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시나리오도 혼자 공부해 공모전에 1차 합격하기도 했다. 경훈은 그렇게 꿈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이경훈씨의 방. 유가족 제공
이경훈씨의 방. 유가족 제공

스무 살부터 집을 떠나 있던 경훈은 스물일곱이 된 2022년 초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조금 쉬면서 본격적으로 광고회사 입사를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취미로 쓴 곡을 시험 삼아 작곡가 오디션에 냈다가 1차 합격하는 기쁨도 누렸다. 2차에서 탈락했지만 경훈은 만족스러워했다.

“작곡가가 되려고 절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합격해야지. 난 1차에 붙어본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엄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걸 깨달은 경훈에게, 2022년은 삶의 새 날개를 준비하는 해였다.

꿈 많은 경훈은 가능성의 도시, 서울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역동적인 이태원을 사랑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널 때면 심장이 뛴다고 했어요. 바쁘고 활기찬 사람들을 보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특히 이태원에 가면 낯선 외국인들과도 친구가 되고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고 말했죠.”(경훈 엄마)

2022년 10월29일은 경훈이 좋아하는 인디밴드가 코로나19로 미뤄온 공연을 오랜만에 이태원에서 열기로 한 날이었다. 표를 예매한 경훈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엄마에게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길게 공연한다고, 사람이 굉장히 많이 올 거라며 자랑도 했다. 서울에 간 김에 직장 동료들도 만나고 싶어 공연 전날 미리 올라갔다. 10월28일 오후에 “잘 도착했고 선배와 점심을 먹고 있다”고 한 게 경훈과 엄마의 마지막 통화였다.

 

마지막까지 부끄럽지 않으려 한 선택

“토요일 저녁에 전화할까 하다가, 공연 보는 데 괜히 방해할까봐 안 했어요. 사고가 나리라고 생각도 못 했고 일찍 잠들었죠. 다음날 일어나서 이태원 사고 뉴스를 보고 남편이 경훈이에게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는다고 하더군요.” 엄마와 아빠는 심장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전화를 뒤늦게 받은 곳은 용산경찰서였다. 엄마와 아빠는 바로 서울로 향했다.

경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것은 10월30일 오후 1시가 지나서였다. 가족 여럿이 이 병원 저 병원 연락을 돌린 끝에 경기도 부천의 순천향대병원에서 경훈을 찾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엄마는 아직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매일 저녁 자기 전에 와서 “잘 자라”고 인사하며 애교도 부리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던 아들은 그렇게 차가워진 몸으로 돌아왔다.

경훈의 몸에는 이마에 살짝 긁힌 상처가 있을 뿐 외상이 없었다. “이렇게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아이가 압사를 당했다는 게 경찰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인파) 뒤쪽이라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버텨주다가 이렇게 된 게 아니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는 위로가 된다고 했다.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왔으면 죄책감에 시달렸을 착한 아들 경훈이, 마지막까지 부끄럽지 않으려고 한 선택을 존중하자고 되뇌었다.

이경훈씨 사진. 유가족 제공
이경훈씨 사진. 유가족 제공

하지만 참사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가슴속 멍울로 남았다. “그날은 충격이 커서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억울했어요.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이 어땠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이런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엄마에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가실 거다”라는 지인들의 위로조차 원망스럽게 들린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데 막상 용기가 안 나. 언젠가는 끝내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걸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 부모님이 키우는 열대어가 조금만 움직임이 둔해져도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걱정하고 안달하던 마음 여린 경훈. 경훈이 먼저 떠난 지금, 세상에 남아서 오롯이 이별의 아픔을 견뎌야 하는 건 가족의 몫이 됐다. 엄마는 꿈에서조차 경훈을 보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매일 밤 꿈에 나와달라고 비는데, 다른 가족들 꿈에는 다 나오는데 저한테만 안 오네요.”

경훈이 찍고 싶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경훈은 언젠가 찍고 싶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엄마에게 설명해줬다. 따뜻한 가을 햇살에 황금빛으로 익은 벼가 물결치는 경관. 그 장면을 노년의 주인공이 지켜보면서 지난 인생을 회고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끝맺고 싶다고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였어요.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한 이 세상보다 지금 있는 그곳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경훈 엄마)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엄마가 보내는 편지

“훈아, 아들.” 엄마는 아직도 매일 대답 없는 너의 방문을 열며 이렇게 부른다. 네가 좋아했던, 너를 가슴 뛰고 설레게 했던 서울의 한강. 뭐 그리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다가) 이제야 너도 없는 한강을 가슴 무너져라 건너는구나. 네가 좋아했던, 마지막 순간까지 있었던 젊음의 거리 이태원도 두 달이 지나서야 용기 내어 찾았단다. 그날의 아픔과 고통, 두려움에 떨었을 널 생각하니 나에겐 통곡의 거리가 되었고 네 모습은 녹사평 한켠에 딸랑 사진 한 장으로 남았더구나.

 

엄마는 네가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길 바랐고, 세상에 소소하고 잔잔한 감동을 줄 네가 만든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낡은 사진첩과 추억으로만 널 그리워해야 하네.

 

엄마는 너에게 힘들 때 와서 그저 쉬었다 가는 쉼터이길 바랐는데, 정작 네가 엄마에게 해준 게 너무 많구나. 추운 겨울 따뜻한 햇살 같았던 경훈이. 그래서 너 없는 지금 엄마는 너무 춥고 외로워. 널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한단다.

미안해 기억할게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한겨레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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