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경에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 공부를 조금씩 했다. 중학생 시절 영어 공부할 때 주어, 동사, 목적어가 무엇인지를 구별했듯이 한문 문장을 보면서 그렇게 했다. 아직도 문리가 터지지 않아 해석해놓은 글을 보고서야 조금 이해하는 편이다.

2010년경에 '대학'을 배우면서 글자는 단순하고 문장은 짧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의 제6장(성의(誠意)에 대한 해석) 제3절에 나오는 증자(曾子·공자의 제자)가 하신 말씀이다. “십목소시(十目所視) 십수소지(十手所指) 기엄호(其嚴乎)·열 눈이 보고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것은 엄하도다!” 이 말씀은 나를 열 눈이 주시하고 열 손이 손가락질하니까, 언행이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주의하라 뜻으로 읽힌다. 결국, 십목십수(十目十手·많은 사람의 눈과 손)을 염두에 두고 신독(愼獨·홀로 처했을 때 삼감)하라는 뜻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를 열 눈과 열 손이 응시하고 가리킨다고 생각하니, 표현은 절제하나 그 내용은 정확하고, 또한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이 구분되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결혼하면 퇴직” 46년 전 은행 ‘결혼퇴직각서’ 찢어버린 여자들.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장도송(86)씨의 미수(88살)을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다. 이필영(왼쪽 위·77), 김광옥(78), 노미숙(왼쪽 아래·75), 이한순(76), 장도송(86)씨. 사진 이주빈 기자. 한겨레, 2022-08-18.
“결혼하면 퇴직” 46년 전 은행 ‘결혼퇴직각서’ 찢어버린 여자들.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장도송(86)씨의 미수(88살)을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다. 이필영(왼쪽 위·77), 김광옥(78), 노미숙(왼쪽 아래·75), 이한순(76), 장도송(86)씨. 사진 이주빈 기자. 한겨레, 2022-08-18.

증자의 말씀을 되새김하던 그 시절, 어느 공직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청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십목소시 십수소지’를 언급했다. 그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 분은 말하길, "내 사무실에 책상 달력처럼 만들어 그 글귀를 써서 세워놨지요, 그 말씀을 알려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그분도 나처럼 증자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셨던가 보다.

왜, 증자는 십목십수라 했을까? 십보다 더 큰 수인 백, 천, 만을 쓰지 않았을까? 만목만수(萬目萬手)라 하지 않았다.

문자대로 풀면, 백성(百姓)은 성씨가 백 가지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만 가지 상이 수풀처럼 펼쳐졌다는 뜻이다. 그 첫 번째 뜻이 확장되어, 후자는 우주공간의 온갖 사물과 현상으로, 전자는 국민으로 통용되어왔다. 십, 백, 천, 만은 대체로 많다는 뜻이다. 광주광역시 학동의 백화(百和)마을은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는 의미로 백범 김구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몇 사람이 말하는데요, ‘온 가구가, 모든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는 뜻으로 풀어야 백범 선생의 도량이 드러나겠지요.

늘 공부가 충분하지 않은 제가 어찌 증자 선생의 뜻을 알리오? 그래도 상상할 자유는 억압받아서는 안 되기에 상상해본다. 십목은 감은 눈이 아니라 열린 눈이다. 십수는 주먹 쥔 손이 아니고 손바닥을 활짝 편 손이다. 서양 사람과는 달리, 우리는 대체로 한 손으로 손을 편 후 1부터 10까지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면 주먹이 되어 손은 닫히고,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면 손은 펴져 열린다. 열 십은 애초에 숫자 10을 뜻하나, 열다 혹은 열린다는 뜻도 품었다.

장진석 수어통역사가 ‘축하하다’의 수어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모습을 환한 표정과 손으로 표현한다. 최형락 사진가. 한겨레21, 2022.12.01.
장진석 수어통역사가 ‘축하하다’의 수어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모습을 환한 표정과 손으로 표현한다. 최형락 사진가. 한겨레21, 2022.12.01.

사거리, 즉 십자로(十字路)는 길 2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서로 사귀는 곳이다. 또한, 열린 공간이다. 방향이 네 개다. 십자로에 선 사람의 선택지는 네 가지다. 열 십은 열린 상태다. 더 나아가, 십자가(十字家)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열 십은 부활하는 자리로도 보인다.

대체로 느끼시리라. 가방끈이 길고 많이 알 만한 일부 인사의 언사가 상당히 거칠다. 반응은 더 거칠다. 커지는 나선형처럼 상호 상승작용이 멈추지 않는다. 품위나 품격을 지키려는 절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글자 품(品)은 입이 셋이다. 오른쪽 말(정)과 왼쪽 말(반)을 듣고 내 말(합)을 해야 품격이 드러나겠지요.

권진규가 1969년 건칠상으로 만든 <십자가 위 그리스도>.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의 권진규 특별전 당시 2층 전시장 안쪽에 매달린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한겨레, 2023-01-10.
권진규가 1969년 건칠상으로 만든 <십자가 위 그리스도>.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의 권진규 특별전 당시 2층 전시장 안쪽에 매달린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한겨레, 2023-01-10.

한 달에 한 번꼴로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가면,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둘러싼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제출한 증빙자료 중에 각종 녹취록과 녹음파일을 마주한다. 오늘날 세태의 반영이겠지요. 그 어느 누가 스마트폰에 장착된 탁월한 녹음기능의 활용을 막겠는가. 그래서 생각한다. 듣는 귀가 많아졌다. 닫힌 귀가 아니라 열린 귀다. 열 귀 시대다.

감히 증자의 말씀에 열 귀를 덧붙여 마무리한다.

십목소시(十目所視) 십이소청(十耳所聽) 십수소지(十手所指) 기엄호(其嚴乎)·열 눈이, 열 귀가, 열 손이 보고 듣고 가리키는 바이니, 그것은 엄하도다!

*이 글은 <남도일보>(2023.02.20.)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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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14897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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