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민주정의당 노태우와 제2, 제3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의 야합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다. 이는 1988년 총선의 여소야대 민의를 배신한 것으로 의회주의를 부정한 사건이었다. 특히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섰던 김영삼에 대한 배신감은 전국을 들끓게 했다.

1990년 5월 10일. 3당 야합에 맞선 시위 중에 오른쪽 눈을 다쳤고, 수술대에 세 번이나 올라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실명을 했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복지카드를 발급받으려고 처음 안과를 찾았을 때, 스페아가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실명하지 않은 한쪽 눈이 보이기 때문에 장애인등록기준에 부적합하다는 말이었다.

- 시각장애인 작가·공연예술가 리오나 고댕. 누리집 갈무리- 출처 : 한겨레 2022.12.23
- 시각장애인 작가·공연예술가 리오나 고댕. 누리집 갈무리- 출처 : 한겨레 2022.12.23

나중에 법이 개정되고서야 장애인등록을 했는데 6등급을 받았다. 1등급으로 갈수록 중증, 6등급으로 갈수록 경증장애인이었다. 쉬운 얘기로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거랑 눈 하나가 없는 게 같은 등급이었다. 장애인등록을 함으로써 지하철을 무료로 탑승하고,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50%감면받았고, LPG차량을 구입할 수 있었으며 LPG가격의 50%를 보전 받았다.

장애등급이 중증과 경증으로 바뀌면서 LPG가격의 50%보전과 장애인주차장이용이 사라졌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거리 감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좁고 구불구불한 지하주차장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공간이 아주 넉넉하지 않으면 전면주차를 피하고,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주차를 한다. 이런 건 싹 무시하고, 경증장애인이이라는 이유로 장애인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칠팔년 전부터는 녹내장이 발생했고, 안약으로 안압을 조절해왔다. 그런데 다친 눈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눈이 늘 아프고, 충혈 돼있어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눈에는 눈물을 만드는 기관이 있고, 빠져나가는 기관이 있는데 눈이 망가져서 배출이 원활하지 않다. 눈물을 만드는 기관을 레이저로 일정부분 파괴하면 고통이 줄어들 것 같다는 전문의의 권고로 재작년(2021년)에 시술을 받았다. 하지만 시술에 따른 고통과 비용만 남았다.

- 눈멂과 눈뜸 사이의 장벽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책&생각]​​​​​​​ - (출처 : 한겨레 2022.12.23)
- 눈멂과 눈뜸 사이의 장벽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책&생각] - (출처 : 한겨레 2022.12.23)

어쩔 수없이 안구적출을 고민하게 됐지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눈을 있는 대로 벌려서 눈동자를 끄집어내고, 그동안 뚝뚝 흘러내리는 피가 자꾸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통증은 더 심해졌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두어 시간만 자고 나면 모든 게 끝나겠지’ 자기최면을 걸다가 지난 1월 말에 안구를 적출했다.

정부는 나를 경증장애인이라는데 사회는 장애인이라고 일자리에서 배제한다. 장애를 안고 살아온 지 벌써 33년 째. 장애인으로 산 시간이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프겠지만 장애인의 그것은 한층 더 힘겹다. 그런데 전장연(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의 투쟁에서 보듯이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으름장을 놓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치졸한 짓만 하고 있다. ​​​​​​​

 

편집 :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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