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세계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는 사자나 호랑이지만 이들을 지배하는 자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오히려 자신의 먹이로 삼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포획하는 존재가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이 인간사냥꾼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조사해본 결과,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이 한 때 그 존재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놈이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을 먹이로 삼으면서도 인간에게 그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인간에게 잡히지도 않은 채 살아남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존재가 거의 영생불멸의 존재인 냥 군림해오고 있는 근본 원인은 인간 자체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 인간 사냥꾼이 어떤 인간들을 먹잇감으로 좋아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그 놈은 나이에 불문하고 먹이로 삼는다. 키웠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잡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린이들이나 노인들이라고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남녀 불문이다. 한 마디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누구도 놈의 먹잇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자나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떤가?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으면 그 놈에게서 좀 더 자유로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아니었다. 돈이나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먹잇감이 되기 쉬웠지만, 그렇다고 돈이나 권력이 없다고 해도 놈의 먹잇감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에 걸쳐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본 결과 현재 돈이나 권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돈과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며 사는가 아니면 돈이나 권력, 명예와는 다른 보다 고귀한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가 하는 것이 오히려 그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타인을 배려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자아에 집착하고 자기 욕심을 앞세우는 자들일수록 좀 더 그 놈의 먹잇감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고대 철학가나 종교가들이 한 말이 틀리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인생은 헛된 것이니 현재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에 대해 생각하라'든지 혹은 '자신의 탐욕과 욕망을 추구하며 살려고 하기보다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든지 하는 말들은 결국 그 먹잇감에 노출되지 않고 살아가는 처방이요, 비법이었던 셈이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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