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직업병 사례의 노동자는 1946년생 남성이다. 만 74세이던 2020년 9월 14일 NK(Natural Killer)/T세포 림프종(비강형·鼻腔形) 1기로 진단받았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림프 조혈기계(造血器系) 암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삼성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반도체 공정의 직업병 논란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고 황유미씨의 11주기인 2018년 3월6일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출발해 서초동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으로 향하고 있다. 맨앞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2023.03.06.
삼성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반도체 공정의 직업병 논란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고 황유미씨의 11주기인 2018년 3월6일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출발해 서초동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으로 향하고 있다. 맨앞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2023.03.06.

우선 노동자의 업무 이력과 환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1988년 1월부터 ◇사업장에서 약 1년 10개월 동안 프레스 기계 작동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이후 다른 사업체가 ◇사업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장 명칭이 달라졌지만, 같은 공정에서 약 3년 11개월 동안 근무하였다. 말하자면, 도중에 사업 주체가 바뀌는 와중에도 ◇사업장에서 5년 9개월 동안 근무하였다. 1994년 1월에 △사업장에서 유리를 달구는 공정에서 보조 작업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구루마 만드는 사업장에서 약 2년 동안 근무하다가 1998년 2월 □사업장에 입사하여 2020년 9월까지 약 22년 7개월 동안 생산부에서 구두칼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근무하였다.

요컨대, 노동자의 직업 생애는 4곳의 사업장에서 이뤄졌다. 42세이던 1988년 1월 이후 ◇사업장에서 5년 9개월 동안 프레스 기계 작동 업무를, 1994년 1월 이후 △사업장에서 3개월 동안 유리를 달구는 공정 업무를, 구루마 제작 사업장에서 약 2년 동안 근무를, 1998년 2월 이후 □사업장에서 22년 7개월 동안 구두칼 제조 공정 업무를 각각 수행하였다. 드러난 직업 생애 기간은 대체로 30년 7개월이었다. <심의 결과서>에는 노동자의 42세 이전의 직업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노동자는 기저질환은 없다. □사업장 소속이었던 1998년 2월부터 약 22년 7개월 동안 근무하던 중 2015년 무렵부터 코에 염증(코점막 출혈과 미란)이 심해져 비염 진단하에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종종 치료받았으나 재발을 반복했다. 미란(靡爛)은 썩거나 헐어서 문드러지는 증상이다. 점차 증상이 심해지면서 코막힘과 코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2020년 5월 동네 병원에서 원인 감별에 필요한 조직검사를 권유받았다. 2020년 9월 14일 대학병원에서 입원 중 혈액검사와 조직검사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2020년 9월 24일 대학병원에서 림프절 외 NK/T세포 림프종(비강형) 1기로 진단받아 방사선 병행 화학요법을 받고 경과를 관찰하는 중이다.

노동자는 비염 이외에 특이 질환은 없다고 응답하였으나, 입원하여 수행한 검사 결과에서 B형 간염 감염 후 회복에 대한 소견이 관찰되었다. 노동자는 음주와 흡연은 하지 않았다. 질환 발병 전까지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치료를 받은 이력은 없었다.

노동자는 근무 중에 시너(thinner), 래커(Lacque) 등을 사용하였기에 상병이 발생했다고 판단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고,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관련성 확인에 필요한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하였다.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기약없는 역학조사, 피가 마른다, 한겨레, 2023.03.06.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기약없는 역학조사, 피가 마른다, 한겨레, 2023.03.06.

2022년 12월 역학조사평가위원회(2022.12.16.)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사항을 종합하여 노동자의 상병은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노동자는 만 74세이던 2020년 9월 14일 NK/T세포 림프종(비강형) 1기로 진단받았다. 둘째, 노동자는 1988년 1월부터 약 6년간 프레스 기계 작동업무에, 1994년부터 유리 달구는 공정에서 3개월간 보조 작업에, 1995년부터 구루마 만드는 사업장에서 약 2년 동안 각각 근무하였다. 이후 1998년 2월에 □사업장 생산부에 입사하여 2020년 9월까지 약 22년 7개월 동안 목공구를 제조하는 공정에서 프레스 공정, 끝 말림 제거, 열처리, 유분(油分) 제거, 방청(防錆·금속의 표면에 녹이 스는 것을 막음.) 등의 작업을 수행하였다. 셋째, 노동자의 상병과 관련한 작업환경 요인은 충분한 근거로는 1,3-부타디엔, 펜타클로로페놀이고, 제한된 근거로는 벤젠, 산화에틸렌, 스티렌, 디클로로메탄 등이다. 넷째, 노동자가 근무 중 유해 물질에 대한 노출 가능성이 보이는 업무는 래커, 시너 등을 이용한 방청 작업이다. 2000년 전후의 선행문헌에서 보고되는 석유화학제품 내 벤젠 함유량을 적용하면 22년 동안 0.78-27.2 ppm-years 수준에서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27.2 ppm-years는 모든 관련 노동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끝난 시점에서 계산한 ‘누적 노출’(cumulative exposure)의 평균 추정치가 27.2ppm임을 뜻한다. x ppm-years는 작업 이력이 끝날 때 모든 작업자의 누적 노출값을 평균한 값 x ppm이다. 이는 평균 강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22년 동안 0.78-27.2 ppm-years 수준에서 노출’은 22년 동안 누적 노출의 평균치는 최저 0.78ppm이고 최고 27.2ppm이다. 다섯째, 2018년에 조사한 작업환경측정에서 톨루엔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 점에 비춰 보건대, 벤젠 함유량에 대한 제95백분위수(관측값의 95% 이하인 값)를 적용하여 추정한 27.2 ppm-years 수준의 노출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된다. 노동자가 감당한 22년 동안 누적 노출의 평균치는 최고 27.2ppm으로 평가된다는 뜻이다.

노동자는 2020년 9월 14일 NK/T세포 림프종(비강형태) 1기로 진단받은 이후 약 2년 3개월이 떠나간 2022년 12월 16일에서야 역학조사평가위의 심의가 완료되었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꽃 지고, 새가 울고, 별이 진다고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5년 4월 22일

*관련 기사:

*관련 기사: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기약없는 역학조사, 피가 마른다(한겨레, 2023.03.0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2247.html?_ga=2.265664783.1014273391.1682129767-1404263838.1647078447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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