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들과 노래로 연대하는 '종합예술단 봄날'

4월21일 정기공연을 마치고 

421일 종합예술단 봄날의 첫 정기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큰 실수 없이 마무리 했다봄날은 길거리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노래로 연대하는 합창단이다. 이름처럼 봄날을 가져다주는 합창단이 되자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봄날의 햇살이 되자고 다짐하며  서로를 햇살이라고 부른다.

봄날의 활동을 소개한 시민방송 영상

 

 지휘자 반주자와 함께 기념촬영
 지휘자 반주자와 함께 기념촬영

노래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좋은 곡을 찾아 편곡하고, 추모나 응원을 위한 창작곡을 만드는 등 정성으로 연대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평소 연대공연은 대체로 일정이 급하게 잡힌다, 전체가 아니라 그날 일정이 가능한 단원들이 추모공간이나 투쟁현장을 찾아 위로와 연대를 하게 되기에 음악적 완성도에서는 늘 아쉬움이 많다.

비록 거리의 공연이지만 투쟁가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잘 준비된 노래로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년 1회의 정기공연은 단원 모두가 참여해 거리공연에서 미완이었던 노래를 완성해 내는 축제의 의미가 담겨있다. 정기공연의 레퍼토리도 그동안 거리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이번 정기공연 1부에서 우리사회가 안타깝게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추모하고, 2부는 산업재해로부터 소중한 이들의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다짐을 담았다. 그리고 3부에서 힘들어도 지지말자고, 우리들이 함께 손을 내밀고 연대하여 서로에게 희망이 되자는 다짐을 노래했다이야기가 있는 봄날의 공연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1부 공연 모습
1부 공연 모습

 

2부 공연 모습
2부 공연 모습

무엇보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합창단의 공연이니 가벼운 여흥 수준을 예상했던 분들이 <생명을 향한 행진>이라는 주제에 맞는 공연의 짜임새에 깊이 공감하며 봄날의 노래 실력도 높이 평가 해주었다.

봄날의 공연을 본 관객들이 산업재해와 사회적 참사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일상처럼 겪는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니 성공이다. 공연 후 많은 분들이 작은 합창단 하나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고 감사의 뜻을 담은 소감을 보내왔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3부 공연 모습
3부 공연 모습
3부에서 노래와 몸짓을 함께 선보였다.
3부에서 노래와 몸짓을 함께 선보였다.

첫 정기공연 마친 종합예술단 봄날은 강릉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그날 밤 바로 강릉으로 떠났다. 다음날인 4월 22일이 국내 결선인 그랑프리대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기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던 어느 날 지휘자가 올해 한국 강릉에서 열리는 세계합창대회에 참가를 제안했다. 아마추어 합창단들의 축제 같은 경연이니 봄날도 국내 경연에 참가해 보자고 했다. 단원들은 정기공연 곡 중에서 경연곡을 선택하면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가를 결정했다.

세계적인 합창단과 경연을 벌일 정도의 수준이 아니지만 우리도 좋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기회를 즐겨보자 했다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서울 명보극장에서 열린 수도권 예선에 참가했다. 예상대로 봄날은 1등이 아니었지만 7월에 열리는 강릉세계합창대회 본선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40팀 안에 들었다. 우리는 7월에 강릉에 가서 합창제를 즐기기로 했다.

정기공연을 마치고 단원들과 기념촬영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우리 정기공연이 421일이고 국내 결선인 그랑프리 대회가 422일이라 예선에서 1등하면 정기공연을 마치고 정말 피곤한 상태에서 바로 다음날 결선을 치러야 할 테니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우리는 모두 정기공연에만 집중했고 지휘자도 반주자도 마음 편하게 그날 다른 공연 일정을 확정했다.

그런데 얼마 후 대회 본부에서 종합예술단 봄날이 4월 22일 강릉에서 열리는 국내 결선 그랑프리대회 참가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전국 5개 권역 1등 팀인 티지콰이어(강원권)’, ‘안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서울권)’, ‘아주소년소녀합창단(광주권)’, ‘오산필코러스(대전권)’, ‘조아콰이어(부산권)와 심사위원 추천팀인 종합예술단 봄날(서울권)까지 모두 6개 팀이 경연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심사위원들이 왜 봄날을 결선에 올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휘자와 반주자가 그날 다른 공연 일정으로 함께 갈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결선대회에 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며칠의 격론 끝에  단원들끼리 힘을 합쳐 참가해보기로 했다

성악 전공자들로 구성된 쟁쟁한 팀들과 경쟁해야 하니 성적에 연연하지 말자고, 이번 대회를 거리에서 노래하는 사회참여 합창단 <종합예술단 봄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기회로 만들자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정기공연을 마치고 공연장인 소월아트홀 밖 계단에 앉아 강릉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정기공연을 마치고 공연장인 소월아트홀 밖 계단에 앉아 강릉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정기공연을 무사히 마친 봄날 단원들은 무대와 공연장을 함께 정리한 뒤 밤늦게 전세버스를 타고 지휘자 없이 객원 반주자와 함께 강릉으로 떠났다. 도착이 늦어지는 전세버스를 기다리며 단원들은 모두 의연한 척 지휘자에게 빨리 들어가 내일 공연이나 준비하라고 등을 떼밀었고, 지휘자는 단원들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애를 태웠다.

새벽 2시쯤 강릉에 도착해 서둘러 잠을 청한 뒤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약속시간인 오전 11시에 경연장인 TG홀에 도착했다. 그때 여러 지역의 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는데 모두 공연복 등 연주에 필요한 짐을 잔뜩 들고 내렸다. 제비뽑기로 순서를 결정하고 이어서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다른 팀들은 모두 드레스로 갈아입느라 준비 시간이 길어져 마지막 순서지만 이미 공연복 정장을 입고 온 봄날이 제일 먼저 리허설을 마쳤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강릉의 한 음악스튜디오를  빌려 연습을 했다.

좀 더 연습이 필요했다. 한 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좀 먼 거리에 있는 연습 공간을 빌렸다. 리허설 때 실수를 다시 점검하며 지휘자 대신 우리를 이끄는 음악부장 김명진 햇살에게 강한 일치를 보내며 연습을 했다. 지휘자가 없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며 노래하자고 약속하며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경연이 시작되었고, 다른 팀들의 노래를 들으니 예상대로 모두 실력이 뛰어났다.

종합예술단 봄날의 그랑프리 대회 공연 모습

 

그랑프리대회 참가 기념촬영
그랑프리대회 참가 기념촬영

마지막 순서에 무대에 오른 종합예술단 봄날은 하림의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먼저 불렀다. 이노래는 2010년 당진제철소 사고로 숨진 노동자를 기억하는 노래로 태안 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을 추모하며 많이 불렸다. 우리가 많이 울면서 불렀고 이제야 좀 담담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곡이다. 두 번째 곡은 봄날의 이건범 햇살이 가사를 쓴 창작곡 <봄날이 온다>를 불렀다. 언 땅의 침묵을 깨고 봄날이 온다는, 함께 하는 행복과 마주보는 기쁨이 우리 힘이라고 노래하는 종합예술단 봄날의 주제가 같은 곡이다.

강릉세계합창대회에서 부른 봄날의 노래

이 두 곡이 모두 관객들을 울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1등인 최우수상은 아니지만 정말 노래를 잘하는 합창단들과 당당히 겨뤘으니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대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다른 합창단 단원들과 관객들이 봄날의 노래에 감동했다고 여러 명이 인사를 했다. 지휘자 대신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모아 노래했고, 노래를 잘 하는 것보다 가사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이 표현된 것 같았다

공연장 밖으로 나오니 대회 관계자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울었다고, 봄날의 점수가 아주 높았다고, 그랑프리가 아니어서 아쉽다고 미안해했다. 또 다른 전문가가 와서 우리 곡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악보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제서야  심사위원들이 종합예술단 봄날을 결선 무대로 초대한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왜 슬픈 노래가 아닌 희망의 노래 <봄날이 온다>를 들으면서도 우는 분들이 있었는지, 노래가 어떻게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지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한 하루였다. 우리는 강릉 바닷가에서 점심과 저녁을 한꺼번에 먹으며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했다이제  종합예술단 봄날은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거리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응원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4월29일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의 퇴근길 행사에서 공연을 마치고 전태일 동상에서 기념촬영 

 

편집 :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