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하늘은 너에게 흰눈썹울새가 된다"

시집을 펴내며,

내 힘으로 새벽을 깨워 일어난 것 같지만 얇은 눈꺼풀조차 내 힘으로 내 눈을 뜨게 할 수 없다. 매일 저녁 눈감았던 밤은 그분이 여지없이 내 눈을 뜨도록 해주셨기에 아침이 되면 광명한 빛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 빛을 견인하신 그분이 오늘도 내 눈을 만지시고 세상을 밝히며 내 길을 인도하신다. 나는 그분 은혜로 살아있으며 그분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갈 때 모자람과 부족함을 탓하며 더 담을 수 없는 그릇 때문에 불평한다. 그런데 어차피 그릇의 한계를 절감하는 자에게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채운다면 작은 것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자족하지 않을까. 첫 시집을 엮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한없는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부족하지만 헐렁한 마음의 공간에 상상력과 공감 능력의 가슴을 미련 없이 담아본다. 아름다운 창조 세계와 내 마음을 관통한 상상의 공간을 그려본다.

                                                       

   흰눈썹울새(어청도촬영)
   흰눈썹울새(어청도촬영)

 

언제나처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쉼을 얻기 위해 잠깐동안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 밤꽃 그윽한 향취에 누워 잠시 꿀잠을 청하면 충분한 휴식이 된다. 휴식은 피로와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장시간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휴게소는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시는 소중한 휴게소와 같다. 사람에게 감상하는 시를 통하여 삶의 여유와 쉼을 얻고 건강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

 그러므로 삶은 시이며 모든 역사는 시로 연결된다. 단지 시인이란 삶을 언어로 풀어내고 표기한 것뿐이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의미 있는 시인은 될 수 없다. 역설이지만 시는 부족해 보이고 불완전할 때 그 단어가 모여 아름다운 시로 탄생한다.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라고 삶의 성취를 찬양했던 어느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진실한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특별히 첫 시집을 내기까지 작품 해설을 손수 해주신 존경하는 시인 고훈 목사님과 모든 한겨레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시를 받아본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진실한 상상력의 공간으로 쉼을 얻기를 기대한다.

                                                            2023년 봄, 은천계곡에서 박 명 수

 

*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돌미나리 식사

                                                         박   명   수

이층 계단 밑 스티로폼 상자

추위를 껴안은 돌미나리가 푸른 머리를 푼다

미나리밭 부은 물이 사라지는 이유는

옆집 더부살이 흰둥이 소행인 것을 목격한다

 

한쪽 발을 다쳐

접시처럼 들고 다니는 흰둥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상자를 찾아

불침번 당번처럼 고인 물을 훌쩍거린다

흰둥이 따라 장에 온 검둥이도 들이킨다

 

지난밤 손주 녀석

아기상어 장난감을 잃는 꿈

저물어가는 노점에 허리 굽은 노파

붙잡고 싶은 애착은 파 한 단 팔려나간 애착

흙비로 굳은 주름은 파란 달빛으로 환해진다

 

왕재마을 다리 밑 얼음판

화석처럼 드러난 고라니 앞가슴은

까마귀들 시뻘건 입술을 만족시킨 먹잇감

 

물 고인 돌미나리

달이 떠올라 무성하면

흰둥이에게 저녁상을 같이하자 불러볼까

돌미나리 잘라 삶고 초무침 해서

손주 장난감을 되찾은 할머니도 초대할까

 

초대된 검은 손님은

배부른 이유 핑계있는 이유

기다리던 검둥이는 이웃 동네로 이사중

미나리 몫을 들이켠 흰둥이 때문에

부족한 저녁상을 이해하라고 말해줄까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2층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겨울철 스티로폼 네모난 상자에 물을 붓고 미나리 뿌리 몇 개를 심었다. 미나리가 자라도록 매일 물을 주는데 물이 너무 빨리 없어졌다. 알고보니 옆집에 있는 흰둥이와 검둥이 개가 매일같이 물을 먹고 갔기 때문이었다. 흰둥이는 한쪽 발을 다쳐 끌고 다니면서 물을 들이켰다. 혼자 와서 물을 먹는 게 아니라 검둥이까지 데리고 와서 물을 먹는 모습이 필자에게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미나리가 잘 자라게 되면 맛있는 초무침하고 요리해서 저녁상에 초대하고 싶었다. 오일장 노점에서 손주 녀석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야채를 팔고있는 할머니를 초대하고 이웃 마을 냇가에 고라니 사체를 먹잇감으로 요기를 하던 까마귀를 초대하고, 흰둥이와 검둥이를 불러 저녁상에 초대하고 싶은 재밌는 얘기를 엮은 시다. 하지만 이웃 동네로 팔려버린 검둥이, 고라니 사체로 이미 배부른 까마귀는 초대받았지만 올 수 없었다. 미나리 저녁상은 부실해졌다. 미나리밭에 몰래 와 물을 들이킨 흰둥이, 검둥이 때문이다. 미나리 저녁상이 부족한 이유를 흰둥이 소행이라 하면 흰둥이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명수 주주  kosen21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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