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로 돌아가 천진난만을 회상한다.

대략10세 전후로 양방간격은 약10년이다.

아직 세상물정 몰랐고 물들지도 않았으며 알 필요도 없었다.

영악하지 못했고 유익과 권부의 추구가 뭔지도 몰랐다.

좋고 싫음도, 옳고 그름도, 잘함 잘못도, 바름 틀림도 분명치 않았다.

꿈과 희망이란 말은 듣긴 들었지만 구체적인 목표설정이 없었고

그냥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통상 하는 말씀이라 여겼기에

무엇인지 어찌해야하는지 생각도 없었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다.

욕망과 욕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니 맑고 밝은 상태였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도 말글로만 알았지 염두에 없었다.

해 뜨면 일어나 그저 놀다가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걸로 알았다.

그날그날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을 뿐 그게 삶인지 뭔지도 몰랐다.

평소 생활이 조금은 불편하고 언짢음은 있었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대체 그럴 필요도 없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 다니며 놀았다.

산과 들로, 냇가로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희희낙락함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 외의 어떤 것도 필요 없었고 더 좋은 것과 다른 세상이 있는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무식함인지 어리석음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눈뜨기 무섭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마당을 거쳐 사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목적지 없이 내달렸고 이웃집 돌담장 넘기 바빴다.

흙먼지 날리는 들판으로 나가면 논이고 밭이고 두렁이고 구분 않고 넘나들었다.

금방 씨앗 심고 싹터 자란 곡식들 짓밟고 뭉개버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냇가에 가면 수중보 돌에서 빨래하는 누나들에게 물장구치고 도망갔으며

마을공동우물서 양동이에 물 길러 머리에 이고 가는 처녀 꽁지머리 잡아챘다.

징검다리를 담박질로 건너가다 개울물에 전신이 풍덩 빠지는 게 다반사였고

산에선 산 다람쥐가 나무에선 나무원숭이가 되어 천지분간 못하고 막 쏘다녔다.

종일토록 이산에서 저산으로 이 계곡서 저 계곡으로 오가며 뛰어 놀았지만

숨이 가쁘거나 피곤하지도 않았으며 사실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천지산하에서 보이고 갈 수 있는 세상은 우리들의 경계 없는 놀이터였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 차지하고 놀아도 탈이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놀이기구 하나 없는 맨손과 맨발, 맨몸으로 놀았지만

부족함도 모자람도 필요함도 지루함도 없었고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것인지 개구쟁이의 못된 짓인지도 구분 못한 채

그저 손뼉 치고 웃으며 장난쳤고, 소리치고 달리며 거침없이 뛰어 놀았다.

 

날이 저물어 서산으로 해 넘어가고 산그늘 져 어둑어둑해지면

어머니의 저녁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가 귓전에 맴돌았기에

아이고를 연발하며 발바닥 불날 정도 100미터 달리기로 집에 갔다.

마룻바닥에 차려진 꽁보리밥에 된장김치를 후다닥 먹어치우자마자

사립문을 죽달 같이 달려 나가 깨복쟁이 친구들을 또 만났다.

늦은 밤에 놀 때는 휘영청 밝은 달이 뜨면 금상첨화였지만

달님이 뜨지 않아도 초롱초롱 빛나는 별빛아래서도 그칠 줄 모르고 놀았다.

어떤 환경조건에서도 성한 몸뚱이 하나 있으면 노는 데 만사형통이었다.

 

야밤놀이 끝내고 친구들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이미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집안을 휘익 둘러본 후 마당에 펼쳐진 멍석 위에 큰 대자로 벌렁 누웠다.

검은 밤하늘에는 나를 위한 수많은 별무리들이 운하수를 이루고 펼쳐있었다.

저별은 무슨 별, 이별은 무슨 별, 갖은 별자리를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흐르는 구름은 어찌 그리 빠른지 정해진 곳이 있어서 빨리 가는지 궁금했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구름에 달이 가는지 달에 구름이 가는지 헛갈렸다.

그저 눈이 시리도록 보고 또 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고 말았다.

아무리 피곤을 모르는 소년이라도 하루 종일 쉼 없이 뛰어 놀았으니

강철요철 같은 몸일지라도 잠자고 쉬면서 체력보충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참을 자다보면 밤이슬에 몸이 젖어 축축해지고 살짝 추운기운이 덮쳤다.

퍼뜩 잠이 깨고 후다닥 일어나 방으로 냅다 뛰어 들어가 이불 속으로 쑤욱~.

그렇게 철부지 소년의 하루는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정신없이 흘러갔다.

 

제때 밥을 먹지 않아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몰랐다.

돌멩이 몇 개와 흙더미를 쌓고 부수며 친구들과 놀아도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길바닥에 몸을 맡겼고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띠우고 둥둥 떠내려갔다

몸은 흙투성이가 되고 머리엔 먼지를 뿌옇게 둘러써도 아무 탈 없이 자랐다.

있는 그대로 가식 없이 준비도 없이 주어진 대로 모두 함께 어울려 놀았다.

선택과 차별구분할지 몰랐고 무슨 옷이네 무슨 신발이네 알지 못했다.

만족이 뭐고 감사가 뭔지 몰랐고 책임과 의무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

 

아~ 소년시절! 첩첩두메산골 흙먼지 둘러쓴 반 벌거숭이 새카만 아이들

그 시절의 여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은 어디로 갔고 어느 곳에 있을까?

소년기 그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으니 내가 잘 못 산 것인가?

소년시절을 벗어나 이성理性에 눈뜨고 어느 정도 사리도리에 밝아지니

법제도와 규율규칙이란 벽과 울타리에서 선택과 차별구별을 강요받았다.

조직이란 명목으로 사람들 편 가르고 나눠 소속집단의 권익만을 추구했다.

남과 타 조직이 어찌 되건 말건 되레 그들 권익 뺏는 것을 승리로 자축했다.

세상은 땅을 먼저 차지하고 나눠가짐이 최대의 이권이 되어 사생결단을 냈다.

결국엔 국가란 이름으로 시민들을 강제로 징병하여 전장의 이슬이 되게 했다.

 

세계는 인종, 민족, 국가, 지역, 혈족 등으로 나뉘고 끝없는 분쟁이 지속됐다.

이를 없애는데 앞장서야할 종교는 그들 조직보다 더욱 앞서 기승을 부렸다.

깨복쟁이 친구들이여! 삶이 그대를 어디로 보냈는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다시 그 소년시절로 돌아가 그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놀며 살 수 없을까?

차별과 경쟁사회 적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깨복쟁이 친구들이여!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던 산간오지 마을에 살았지

소달구지 타는 것도 호사였고 자전거 타는 것은 꿈꾸지도 못한 촌놈들이었어.

이제 중형차에 초가흙집에서 으리으리한 삼사십 평대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비록 이웃과 가족의 끈끈한 정은 약해지고 대소사의 유대도 형식에 그치지만

그나마 그래도, 소년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물질풍요와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생활편리와 전국은 물론 미주유럽까지 해외여행도 심심찮게 다니게 됐어.

때론 창살 없는 호텔에 고급사료로 사육되는 애완동물 같음을 떨칠 수 없으나

문명이기를 한껏 누리며 안락과 쾌락에 안주하고 사는 현실에 감사해야 하는가?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