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불, 물 구경

첫 번째 구경거리는 사람이다. 필자는 중소도시에 살다. 어쩌다 서울나들이 가면 우리고을에서는 상상할 수도, 볼 수는 없는 장관을 접한다. 지하철 탑승할 때다. 역과 노선, 거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지하철에서 그렇다. 전철을 타기 위해 100m 경주로 달리고, 길게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이 경이롭다. 특히 전철에 탑승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고, 고개를 돌리기도 힘들다. 역사와 플랫 홈, 전철 내에 사람이 넘쳐난다. 가히 사람의 홍수다. 구경거리 중에 사람구경이 으뜸이다. 1차로 많은 사람이고, 2차로 다양한 사람들이다. 한 때는 이번 전철에 탄 사람들을 모두 우리 마을로 태우고 가 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재자의 발상인가? 강제가 아닌  양호한 생활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인하면 되지 않을까? 철없는 순진한 생각일까? 넘쳐나는 곳에 그만 쏟아 붓고 모자라는 곳에 좀 투자하면 될 것을. 사람이 있어야 장사도, 사업도, 사랑도 할 것이 아닌가? 중소도시와 농어촌은 사람홍수를 기다린다.

 

두 번째 구경거리는 불구경이다. 어렸을 때 종종 마을에 불이 났다. 거의가 초가집이라 한번 불 났다하면, 끌 새도 없이 전소해야 끝났다. 동네 중앙정도에 있는 공동우물에서 물 양동이로 물을 이고지고 퍼 날라야봐야 시간의 한계에 막힌다. 흙과 볏짚, 나무로 지어진 집은 일단 불이 붙었다하면 속수무책, 금방 전체로 퍼지고 소화할 시간도 없이 타버린다. 어른들은 불 끄느라 정신이 없지만 아이들은 무서우면서도 불구경에 빠진다. 훨훨 타오르는 불꽃, 하늘 높이 날아가는 불새, 춤추는 검은 연기,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 아닌가? 이것은 집 불이고 산불은 더 멋지다. 우리 어렸을 때는 산에 나무가 거의 없어 산불이 크게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불이 나면 끌 생각은 안하고 가까운 곳으로 뛰어가 구경하기 바빴다. 집이나 산에 나는 불은 불의 홍수가 아닌가? 불 홍수는 재산손실을 가져오지만 병들고 지저분한 것들을 태워버리니, 새로운 나무 종으로 교체되고 새집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 구경거리는 물이다. 불은 태워 없애지만 물은 쓸어가 버린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거대한 물줄기가 되면 아무리 힘센 것도 그 앞에 버틸 수 없다. 견고한 흙은 파이고 콘크리트도 예외 없다. 무거운 바위와 아름드리나무도 견디지 못한다.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인 빌딩도 남아날 수 없다. 무자비하게 쓸고 간다. 태풍이 곁든 폭풍우가 홍수로 발전하면 세상은 재탄생할 수 있다. 사람이 무섭고 불이 무섭다하지만 물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러나 가끔 홍수가 터져야 좋다. 그래야 쓸려갈 것은 가고, 남을 것은 남는다. 정화된다.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오염은 그나마 물과 불이 있어 중간 중간 정리된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치와 경제다. 이 둘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상생한다. 상승도 하강도 단짝이다. 하지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일부 정치경제인들에겐 상승과 하강은 무관하다. 그들은 항상 좋다. 서러운 서민들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지금 한국은 국난에 빠졌다. 말하기조차 거북한 자들의 난입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의 탈만 썼지 보통 인간과 동류가 아니다. 별종 중의 별종으로 악질괴질에 걸린 이상한 종들이다. 민초들이 버틴다고 하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별종들이 상층부에서 똥물을 뿌려대는데 어찌 견디겠는가? 똥물 뒤집어쓰면서 온전히 살 수 있겠는가? 불 홍수와 물 홍수가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을 정화할 수 있듯이, 사람홍수가 정치경제의 오염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촛불혁명 이상의 사람홍수가 일어나야 한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곳곳까지 사람홍수가 넘쳐나야 한다. 몇 백만, 몇 천만 이상의 사람홍수가 일어나면, 이 심각한 정치경제오염을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홍수는 대변혁을 불러오고 정치경제오염원들을 일소하여 신세계를 열지 않겠는가?.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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