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맛비가 하루종일 내리는 궂은 날씨라서, 내 방에서 별 생각없이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 한권을 펼치다가 김소월의 ‘님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발견하였습니다.
‘ 님의 노래’
김소월(1902~1934)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출처> : ‘(중고교생이 꼭 알아야 할) 교과서 시 읽기’(평단문화사/2012/ 39쪽)
위의 ‘님의 노래’ 시를 읽어보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나라에서 ‘이별과 그리움’ 등의 서정적이면서 향토성 짙은 시를 32세의 짧은 나이로 150여편이나 남긴 불우한 천재 시인이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남길수 있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됩니다. 즉, 김소월의 ‘가슴에 내재되어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시심(詩心)’이 그 비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되지요.
바로 1연에서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라고 말하는 싯구에서 이러한 추측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 님’이 무엇일까요? 어쩌면 김소월의 마음 속 깊숙이 감추어져 내재되어 흘러나오는 창작의 열기(熱氣), 혹은 ‘에네르기’(=에너지)를 ‘우리 님’이라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우리 님’이 저 멀리 오스트리아에서 1800년대초에 활동한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의 가슴 속에도 풍성히 내재되었기에, 역시 31세에 단명(短命)하였지만 600여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작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연과 3연은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가 시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그의 귓가에 끊임없이 들리는가를 말해줍니다.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러하고, ‘해지고 저물도록’ 그렇고, ‘밤들고 포스근히 잠들도록’ 그렇게 ‘귀에 들려요’라고 표현하여, 언제 어디서나 맑은 시심(詩心)이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4연에서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하소연(?)하고 있는데,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라고도 하고, 또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라는 말로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님의 맑고 고운 노래’에 젖어 꿈결 속에 지내다가도, 곧 각박한 고통과 질곡(桎梏)에 갇혀있는 현실을 깨닫고는 좌절감에 떨어지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운명은 어쩌면, 레바논계 미국 국적의 시인 ‘칼릴 지브란’(1883~1931)이 말한 ‘시인의 불행한 운명’을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는 “시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한껏 영혼이 천상(天上)의 열락(悅樂)에 이르러 즐거움을 맛보지만, 곧 지상(地上)의 눈물의 굴레에 갇히게 될 운명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이다.” 라는 요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소월의 ‘님의 노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이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3연의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라는 싯구에서 ‘포스근히’ 라는 낱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 ‘포근히’(=마음이나 분위기가 부드럽고 아늑하게)라고 현재 쓰이는 말보다 더 ‘포근하지' 않습니까?
※ 참고사항
김소월(1902~1934) : 평안북도 구성군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년 문예지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별과 그리움 등을 주제로 서정적이며 향토성 짙은 일상적인우리말로 개성적이고 시적 울림이 있는 많은 시를 창작했다. 시집으로는 <진달래꽃>(19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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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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