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걸레가

새삼스럽게 걸레를 본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걸레가 될 수 있을까?’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그래, 난 걸레가 될 수 있다.  아니 걸레가 되어야겠지? 때로는 수치스럽고 짜증도 나겠지만 노력하겠다.’ 정말 그럴 수 있냐고 다시 묻는다. ‘걸레의 성스러운 역할수행을 따를 수 있을까에 의구심이 들지만, 다짐했으니 최선을 다 하겠다.’ 말로는 쉬워도 어렵지 않을까? ‘맞아, 그렇지만 결국 나와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해야지. 분명 미흡함이 있겠지만 감안하고. 이행 자체를 위로 삼겠다.’

 

청소할 때마다 <걸레>의 성스러움을 느낀다. 그에 대해 짧은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는 보통 <걸레>에게 더럽고 추한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렇게 함을 당연시했다. 또한 인간사회의 사기꾼들과 더러운 짓거리 하는 자들을 걸레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실을 호도한 것이다. 걸레는 세상을 깨끗이 하지만 그들은 더럽히지 않는가? 비교불가하고 더우기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슨 개떡같은 소리인가? 시대불문하고 <걸레>는 가장 본받아야할 물상이라 생각한다. 그를 감안하면서 걸레와 대화를 시작한다.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걸인: 걸레야~ 안녕! 잘 지냈어? 또 만났네?

걸레: 응~ 반가워! 오늘은 무슨 일이지?

걸인: 오늘은 청소가 아니라 너와 얘기 좀 하고 싶어 왔어.

걸레: 무슨 말이야? 참~ 나 같은 것하고도 할 얘기가 있어? 항상 쓰고는 휙 던지고 가더니...

걸인: 맞아, 내가 그랬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 나쁜 놈이지? 무엇이든 던지는 놈은 자신을 던지는 놈이라고 했는데. 아이고~두야~

걸레: 새삼스럽게 뭘~ 그렇게까지.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편하게 부담 없이 말해봐. 난 걸레잖아. 흐흐~

걸인: 넌 늘 좋은 일을 하면서도 천대하대 받고 있잖아. 쉴 때조차도 음습하고 구석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지. 그렇게 무시 받는 게 억울하지 않니? 조금 전에 내게 말했듯이 필요할 때는 찾아 쓰고, 쓰고 난 후엔 언제 찾았냐는 듯 휙 던져버리는 등...

걸레: 어찌하겠어, 나는 걸레이고 그게 내 역할인데.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잖아. 지가 좋을 땐 찾고, 쓰고 난 후엔 가차 없이 던져버리잖아. 내가 참고 감수해야지 뭐~어쩌겠어? 그 정도는 괜찮아.

걸인; 대부분의 물상들은 자신을 깨끗이 하려고 타자타물을 더럽히지만, 너는 자신을 더럽히면서 타자타물을 깨끗이 하잖아. 험한 구석진 곳도 마다하지 않고. 그런대도 사람들은 너를 더럽다고 함부로 대해. 사실은 지들이 더 추하고 더러운데 말이야. 더구나 넌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잖아. 그들에게 화나지 않니?

걸레: 그렇기는 해. 하지만 난 괜찮아. 늘 그렇게 살아 왔는데 뭐. 이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나로 인해 그들이 깨끗해진다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 보람도 있고. 그것이 내 존재 근거고 가치잖아. 나마저 그 역할을 회피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나는 다시 깨끗해질 수 있으니 걱정 마.

 

걸인: 음~ 다시 깨끗해질 수 있다.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미안해~ 그리고 감사하고 고마워. 너의 공헌희생으로 우리가 깨끗하게 살 수 있어. 너는 어떤 성자보다 더 성스러워 보여.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권위로 높은 권좌에서 만물을 내려다보며 깔보는 그런 성자가 아니라, 낮고 천하고 험한 곳에 스스로 처하면서, 그들과 함께하고 위로하며, 더러움도 닦아주는 진정한 성자가 바로 너야. 누구보고 이래라저래라 가타부타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궂은 일하는 그런 성자야. 이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낙원과 천국이 되겠지?

걸레: 무슨 소리야? 별소리 다 듣겠네.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겠다 얘~ 다신 그런 소리 하지 마. 뚝~

걸인: 비웃어? 누가 감히 너를? 너의 행실은 맑고 순수해. 숭고하기까지... 너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성스러운 성자야. 아마 인류의 4대 성인도 너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걸. 너는 저 하늘이고 이 땅이지. 정말 고맙고 감사해!

걸레: 흐~ 이해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그 말은 조금 씁쓸해. 안 들은 것으로 할게. 내가 성자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는 물은? 그런 물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필요할 때 언제나 나를 찾아 마음대로 써. 내가 있는 곳을 잘 알잖아. 함부로 해도 괜찮아.

걸인: 겸손하긴... 물은 성자라 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만물의 근본이고 생명의 근원이지 않을까? 말은 이렇게 해도 너를 다시 만나면 또 함부로 대할 거야. 나 원 참.

걸레: 그게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순리가 아니겠어? 나를 걸레로 대함이 말이야. 누구나 외부의 것으로 자기중심을 잡을 수 없어. 그러면 항상 불안정하지. 중심은 늘 내부에 있어야 해. 그래야 흔들림이 없어. 내가 비록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이렇게 험할지라도 내부는 그렇지 않아. 정중여산(靜重如山)이고 청명해. 그래서 흔들림 없이 있는 거야. 칭찬과 비난, 비판과 조롱도 순간일 뿐, 나의 중심을 흔들지 못해.

 

걸인: 음~ 맞아. 중심은 내부에 있어야 한다? 고마워. 음침한 구석에서도 만사를 수용하는 듯 가만히 있는 너를 보면... 할 말이 없어. 난 언제나 가능할까?

걸레: 너무 애쓰지 마... 그런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만물은 다 자기 본연의 역할이 있으니까. 다만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공공의 유익을 제외하고~

걸인: 걸레야! 알았어. 으잉~ 네가 걸레지만 걸레라고 부르니 좀 듣기 거북하네. 나도 헛물이 든 때문이겠지? 먼지가 많은 절기라 너 수고가 많겠다. 몸 조심해! 너를 보면 맘이 퀭해. 아참, 요즘 세계정세와 나라꼴을 보니 지도자란 자들이 생각나. 그들이 너를 조금, 아니 1%라도 본 받았으면 좋겠는데. 어림없겠지? 안녕, 또 보자!

걸레: 그것 참...

걸인: 얼토당토 않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지도자들이 조금이라도 선해지기를 바란다는 거야. 그들이 아무리 양민들의 고혈을 빠는 게 본업이라 하지만, 일만의 양심을 기대하자는 거지.  이 또한 헛다리 집고 개소리하는 것인가?  미안하다 미안해... 음~

걸레: 아이고~ 아이고~

 

                       천자암에서 바라본 지리산자락
                       천자암에서 바라본 지리산자락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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