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Lou Gehrig)병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의 별명이다. 이 병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사상 ‘2천130 경기 연속출장’(14년간·1925년 6월 1일~1939년 4월)이라는 진기록을 남긴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 ‘루 게릭’(헨리 루이스 게릭·Henry Louis Gehrig·1903.6.19.~1941.6.2.)이 38세에 이 질환으로 사망하자 그를 기리려고 ‘루게릭병’으로 명명됐다(한양대학교 병원). 그는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지 이른 시일인 1939년 7월4일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1930년대에 ‘베이브 루스’(Babe Ruth)와 함께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였다.

이번 직업병 사례의 노동자는 1970년생 남성이다. 노동자는 1994년(24세)부터 약 27년간 □사업장에서 라디에이터 등의 샘플 제작 작업자로 근무하였다. 2022년(52세) 3월 2일 ‘산발형 근위축측삭경화증’을 진단받았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筋萎縮性側索硬化症)에서 측삭(側索)은 ‘섬유단’의 예전 용어로 신경 섬유 다발을 말한다. 질병의 해부학적 분류는 신경제 질환이고 유해인자는 화학적 요인이다.

7월 4일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 초청된 사라 랭스를 포함한 7명의 루 게릭 환우들. 뉴욕양키스 트위터 갈무리. 한겨레, 2023.07.05.
7월 4일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 초청된 사라 랭스를 포함한 7명의 루 게릭 환우들. 뉴욕양키스 트위터 갈무리. 한겨레, 2023.07.05.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마당 재해사례 직업병’(www.kosha.or.kr/kosha/data/occupationalDisease.do)에 올라온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심의 결과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우선, 노동자의 업무 이력과 환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1994년 12월에 □사업장에 입사해 연구소의 “시작실”(試作室)에서 2019년 12월까지 약 25년 동안, 동일 연구소 “성능시험실”에서 2020년 1월부터 2022년 9월(요양급여 신청일)까지 약 2년 동안 각각 근무하였다. 시작실의 주요 업무는 라디에이터(열교환기) 시제품(샘플) 제작, 각종 구조물(지그, 적치대) 제작, 기계 수리 작업 등이었다. 작업 중 비중이 가장 큰 업무인 라디에이터 시제품 제작을 약 12년간 수행하였다. 2006년(36세)부터는 시제품 제작 과정상 과도한 납땜, 도장, 세척 등의 작업으로 인해 시제품 제작은 외부 협력업체에서 이뤄졌다. 2006년 이후에는 각종 구조물(지그, 적치대) 제작과 기계 수리 작업을 주로 수행하였다. 노동자는 주 6일, 1일 12시간 근무하였다. 특히, 입사 이후부터(1994년 9월) 2000년대 초반까지(약 8~9년간), 월평균 약 2회 휴일 특근, 월평균 약 1~2회 철야 근무를 하였다.

질병 진단 경과를 보기로 한다. 노동자는 2020년(50세) 7월에 상지에 근육이 튀는 연축(攣縮) 현상을 시작으로 양측 상·하지의 근력이 점차 약해지고 위축됐다. 2021년 1월 기존에 수월하게 수행하였던 턱걸이 운동을 근력저하로 전혀 하지 못했다. 2021년 3월에 오른쪽 허벅지의 저림 증상이 나타나 방문한 A대학병원에서 3개월이 지난 그해 6월에 허리뼈 4, 5번 척추관 협착증을 진단받고 8월에 척추유합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9월에도 보행이 불편해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과 함께 점차 젓가락질이 어려워지고 상지의 근력이 저하되는 증상이 심해졌다. 이후 A대학병원에서 2021년 11월, 2022년 3월 두 차례의 신경전도검사와 근전도 검사 등을 통해 2022년 3월 2일 ‘산발형 근위축성측삭경화증’(Sporadic ALS)를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하였다. 질환의 이차적인 원인 규명과 치료 계획을 위해 2022년 6월 B대학병원 신경과를 방문하여 대뇌와 척수의 구조적 이상, 암, 혈액의 비정상 단백질 유무, 유전자 등의 검사를 진행하였으나 관련된 특이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평소 고지혈증 이외에 특이 질환은 없었으며 비흡연자라고 하였다. 가족력을 보건대, 아버지 고혈압이 있었으나, 노동자의 질병과 관련한 특이 질환과 가족력은 없었다. ALS는 그 발생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인데, 약 10%는 유전성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가족력 없이 산발성(散發性)으로 발병한다(분당서울대학교병원 척수·신경근육센터).

루 게릭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주인공이 되었다. 한겨레, 2023.07.05.
루 게릭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주인공이 되었다. 한겨레, 2023.07.05.

노동자는 약 27년간 납, 주석, 용접 흄, 유기용제 등 여러 가지 유해 물질에 대한 복합적 노출이 질환 발병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주장하며,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질병 인정을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2023년 5월 역학조사평가위원회(서면심의·2023.05.24.~5.26.)는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사항을 종합하여 노동자의 질병은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노동자는 2022년 3월 2일 산발형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진단받았다. 둘째, 노동자는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사업장의 연구소에 근무하여 생산제품의 샘플제작과 성능시험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셋째, 보고되어 오길, 노동자의 질병과 관련성을 보이는 직업환경 요인은 납, 유기용제, 유기인계농약, 과도한 신체활동 등이다. 넷째, 노동자는 업무환경에서 납, 유기용제에 대한 노출이 확인되고,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납과 유기용제에 높은 수준으로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자가 2022년 3월 2일 ‘산발형 근위축측삭경화증’을 진단받은 이후 약 1년 6개월, 업무상 질병 인정을 신청한 지 약 9개월이 각각 떠나간 2023년 5월에 역학조사평가위의 심의가 완료되었다. 다른 직업병 사례보다는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됐다.

그대의 고통과 참담함을 꽃 지고, 새가 울고, 별이 진다고 어찌 잊으랴.

대한민국 105년 8월 8일

*관련 기사: 루 게릭의 연설 이은 사라 랭스의 외침 “포기하지 않는다”(한겨레, 2023.07.05.)

https://www.hani.co.kr/arti/sports/baseball/1098882.html?_ga=2.1960374.680406198.1691386282-1404263838.1647078447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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