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삶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우는 초저녁이었다. 동천의 간이다리(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교량)를 다 건너 약간 오르막이 끝날 즈음이었다. 허리가 거의 90도로 꺾인 할머니가 한 바퀴수레를 앞에서 끌고, 그 할머니에 비해서는 훨씬 건장한 할아버지가 뒤에서 밀고 계셨다. 조그만 수레 위엔 엉성하게 쌓인 폐지 등이 수북했다. 밧줄로 매었다고는 하나 너무 느슨하여 곧 한쪽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보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국가사회의 안전망은 어디로 갔는가? 무너졌는가? 어찌 저렇게 늙고, 연약한 신체 더구나 불편하신 분들이 폐지를 팔아 살아간단 말인가? 전국으로 확대한다 해도 저런 분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정부는 또 예산타령하려는가? 불요불급한 사용처만 제외해도 남아돌지 않을까? 국가와 정부의 존재근거 첫째는, 시민의 생명보존과 안전이 아닌가? 당부한다. 시민의 세금은 시민을 살리는데 우선 사용하라. 그건 그렇다 치고 난 건장한 놈팡이가 아닌가? 그럼 난 무엇을 했는가? 더 생각할 틈도 없었다. 바로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할머니가 다니시는 우리고물상. 사장님께서 친절하셨다.
할머니가 다니시는 우리고물상. 사장님께서 친절하셨다.

 

놈팡이: 할머니, 제가 끌겠습니다. 이리 주시고 저리 비키세요.

라고 말씀 드리니

할머니: 아니에요, 이거 힘들어요.

하시면서 눈을 위아래로 훑으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 기가 막힌다. 몸무게는 겨우 30kg? 키는 140cm이 될까? 더구나 허리가 90도 정도로 꺾긴 노쇠한 할머니께서 나를 보고 힘들다 하신다. 그러니 수레 끌지 말라고? 저 신체로 자신은 괜찮단 말인가? 물론 인사로 한 말씀이겠지만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놈팡이: 거참,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이렇게 젊고 건강합니다. 자 저를 보세요. 어서 주시고 저리 비키세요.

할머니는 힘에 겨운 듯 한쪽으로 물러서시면서

할머니: 아니 미안해서...

말끝을 맺지 못한다. 나는 수레 앞 손잡이를 뺏다시피 부여잡았다. 민첩하게 언덕바지를 다 올라서는데, 뒤에서 밀던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 난, 이제 가요.

할아버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수레밀기를 그만두고 아무 거리낌 없이 유유히 떠나신다. 놈팡이는 상황파악이 안 돼 잠시 어리둥절했다.

놈팡이: (속으로)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놈팡이는 이 두 분이 부부인줄 알았는데, 어안이 벙벙했고 상황을 알고 나니 더욱 기가 막혔다. 그래도 부부라서 다소 괜찮다했는데. 이렇게 연약하신 할머니 혼자서 폐지를 가득 실은 한바퀴 수레를 끌고 오셨다고?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신단 말인가? 어이가 없고 가슴이 먹먹했다.

 

할머니: 이제 힘든 언덕배기를 다 넘었으니 이리 주세요. 내가 끌고 갈게요.

하시면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손수레 손잡이를 잡고 주라하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수레를 어찌 넘길 수 있겠는가? 양심에 털 난 놈이 아니고서야.

놈팡이: 아닙니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십니까? 제가 목적지까지 끌어다 드리겠습니다.

공손히 말씀드리니, 할머니께서 손사래를 치면서 수레 손잡이를 잡으신다. 그래서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놈팡이: 할머니, 저는 지금 시간도 많고, 특별히 갈 곳도 없습니다. 지금 산책 중이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가시는 데까지 끌고 가겠습니다. 이리 주세요.

할머니: 아닌데... 그러면 안 되는데.

하시면서 못 이기는 척, 수레 뒤를 붙들고 밀면서 따라오신다.

놈팡이는 용기 있게 수레 끌기에 나섰지만 비틀비틀 중심잡기가 힘들었다. 특히 한바퀴 수레고, 바닥이 고르지 않는 길에서는 한쪽으로 쏠림이 컸다. 자칫 중심이 흐트러지면 쓰러지기 십상이다. 할머니 눈에 체면이 좀 구겨짐을 느꼈다. 요령 없이 힘으로만 하려했으니 속으로 우스웠다.

놈팡이: 할머니 어디까지 가십니까? 댁으로 가십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갑니까?

할머니: 예~ 조금만 가면 됩니다. 다 와 갑니다.

할머니는 목적지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미안해서인지 그저 다 와 간다고만 하니, 조금 답답했다.

 

놈팡이는 다시 한 번 목적지를 물으니

할머니: 예, 저기에요. 저 길 건너에요. 다 왔어요.

말하면서 왕복 4차선 도로 건너편, 고속전철 고가다리길 아래를 가리킨다. 고물상이 거기 있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위험한 길이었다. 평소에 이렇게 위험한 길을 한바퀴수레를 끌면서,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 다니신다는 것이렷다. 이 왜소하고 가냘픈 할머니가. 건장한 놈팡이도 가기 힘든 이런 곳을 말이다. 가슴이 아렸다. 우여곡절 끝에 고물상 입구에 다다르니

할머니: 여기에요. 다 왔어요.

그런데 입구 바닥의 요철이 심해 수레에 실은 폐지뭉치 등이 한쪽으로 와르르 무너진다. 이를 어이하나.

놈팡이: 아이쿠~ 야단났네. 이거 어쩌지?

놈팡이는 난감했다. 익숙하지 못한 것을 힘으로만 하려다 보니 수레가 균형을 잃은 것이다. 이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다니 속으로 자신이 한심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세 두세하고 있으니, 고물상 안쪽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신다. 할머니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는

고물사장: 아, 괜찮아요. 이쪽으로 끌고 오세요. 이곳 위에 올리면 되요.

놈팡이는 어리둥절했다. 고물상을 지나는 가봤지만 내부에 들어와 구조를 보지 않았기에 뭐가 뭔지 구분하지 못했다. 어디에다 올리라는 것인지. 고물이 이곳저곳 쌓여 있고 사방이 어지러웠다. 어디다 가져다놓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물사장: 이곳으로 가져오세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엄청나게 큰 둥그런 쇠판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저울이었다. 고물을 실고 온 화물차도 그 위에 올라서면 무게가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놈팡이는 그제야 깨닫고

놈팡이: 아, 예~

 

땅에 떨어진 폐지 등을 주섬주섬 주워서 거대한 저울판위에 올렸다. 물론 한바퀴 수레도 통째로 올리고. 할머니도 같이 흩어져 있는 폐지들을 저울 위로 옮겼다.

고물사장: 예, 다 됐습니다.

고물사장은 사무실 쪽으로 가더니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고는 할머니에게

고물사장: 95kg입니다.

할머니가 고물사장께 가더니 돈을 받아 나오신다. 하루 수고 값이 궁금했지만 물어보기가 민만했다. 빈 수레를 끌고 나오면서 작은 소리로

놈팡이: 얼마에요?

머뭇거림 없이 말씀하신다.

할머니: 2천원이에요. 옛날에는 kg당 40원이었는데, 지금은 20원이에요. 그래서 얼마 안돼요.

기가 막힌다. 멀고 먼, 이곳저곳서 폐지를 모아, 이 고물상까지 끌고 왔건만 고작 2천원이라니.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해졌다. ‘나는 나쁜 놈이구나. 연금이 풍족하지 못하다고 불평을 했으니...’ 빈 수레를 끌고 나오다가 잠시 멈추고서 다소 미안하고 불편한 맘으로

놈팡이: 할머니, 이것 말고 수입이 있나요?

약간 눈치를 보더니

할머니: 노령연금이 나와요.

놈팡이: 그 외는 없고요. 노령연금만으로는 살기가 어렵겠군요. 그래서 이 일을 하시는 건가요?

머뭇머뭇하신다.

 

할머니: 이것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뭐해요. 이 돈을 누가 줍니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죄스럽고 미안하다. 국가는 뭐하고 공동사회는 뭐하는가? 집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들짐승들도 먹고 잠자는 것은 걱정 않는다고 했는데, 인간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이 연세되도록 국가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얼마나 큰가? 이런 분들일수록 피땀 흘려 일하지 않았겠는가?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함에도 그 작은 몸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지 않는가? 저 정도면 국가사회의 안전망이 작동해야 되지 않겠는가? 또 남의 탓인가? 놈팡이는 생각이 복잡하다. 꼬래 뭐나 된 듯이 걱정은 지가 다 한다.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할머니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손을 내밀며

놈팡이: 이거 식사 한끼 하십시오.

할머니는 깜작 놀라면서 받지 않고 손을 거두면서 돌아선다. 놈팡이는 손이 부끄러워 잠시 망설이다가 할머니의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할머니는 뿌리쳤지만 따듯한 미소로 손을 내미니 못 이기는 척 받으신다. 놈팡이는 얼마간 수레를 끌고 가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할머니 집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차후로 미뤘다. 할머니의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놈팡이: 할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몸조심하세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수레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를 계속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놈팡이는 수레바퀴에 걸려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서산 너머로 해는 떨어지고, 산 그림자는 동천을 덮어온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나보다. 강물과 세월도 무심히 흐른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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