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후에는 8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 같다는 기상예보를 보고, 아침에 바나나 1개와 커피 한잔을 마시고 걷기운동을 30분쯤 하려는 마음으로 아파트 옆 수지천변으로 나왔습니다. 지난번 태풍이 불 때에 많은 비가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모처럼 맑은 수지천 냇물이 '지줄지줄' 소리를 내며 흘러가네요.

그렇게 흘러가는 냇물을 보면서 물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라는 싯구가 떠오르며예전에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함께 부른 향수(鄕愁)’라는 유명한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노래 가사이기도 한,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향수를 좀더 심도(深度) 있게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향수 (鄕愁)

정지용 (1902~195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출처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민예원/2005)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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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정지용 시인이 일본에 유학중인 1923년경에 썼다고 하는데, 1927년 당시의 (월간)잡지 <조선지광(朝鮮之光)>65호에 최초의 원본이 실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1927년 월간잡지<조선지광(朝鮮之光)>65호에 실린 ‘향수’(鄕愁) 원본 사진
1927년 월간잡지<조선지광(朝鮮之光)>65호에 실린 ‘향수’(鄕愁) 원본 사진

위의 5연 전체 시를 읽어보면, ‘향수(鄕愁)’라는 말뜻 그대로 정지용 시인이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노년기에 들어선 독자라면 누구나 예전의 시골에서 살거나 경험했던 분위기를 느낄수 있을 것인데, 특히 각 연의 끝에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구절이 반복되어 꿈에도 잊지못할 고향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요.

필자도 1960년대 중반까지 전깃불 없이 석유 등잔불을 켜고 살았던 충청남도 농촌 고향의 큰아버지 댁에 방학때마다 내려가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이 시에 나타난 1900년대초 시인의 고향인 충청북도 옥천군의 농촌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가 어느 정도 감정이입(感情移入)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1연을 읽어보면, 시인의 고향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의 고향이 실개천이 흐르는 벌판으로 농사짓기 알맞은 곳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데, 황소가 해설피’(=해질 무렵 햇빛이 옅거나 약한 모양)쯤에 황소가 ~하고 우는 모습을 석양(夕陽) 황금빛의 게으른 울음으로 표현하여 시각적, 청각적인 공감각(共感覺)적 표현이 돋보입니다

2연에서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의 시선이 겨울철에 사랑방에서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옮겨집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 바로 겨울철 고향집 사랑방의 모습입니다.  (진흙으로 구워만든) 질화로에 아궁이에서 퍼온 숯불이 식어지기 시작하는 한밤중이 되면, 사랑방 문밖으로 들리는 (근처 허허벌판 텅빈) 밭에 스쳐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가 말달리듯 휘잉~’ 하고 세차게 붑니다. 그 때쯤이면 (질화로 옆에서 담뱃대를 뻐끔거리시던) 주름살 가득하신 아버지가 꾸벅꾸벅 졸다가 아랫목으로 자리를 옮겨 짚베개를 높이하고 주무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3연에서는,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이 바로 시인이 어릴때부터 나고 자란 흙과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풀섶 이슬에 맨발과 바짓가랑이를 이슬에 적시며 뛰어놀던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여러가지 놀이를 즐기며 뛰어놀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러한 동심(童心)의 추억은 우리들로 하여금 평생 순수한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4연에서는, 이제 어린이에서 성인이 된 시인이 장가들어 혼인(婚姻)한 아내와, 아직도 어린 여동생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 바로 꿈에도 잊지못하는 그리운 고향의 모습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5연은 시인이 고향을 떠나 타국(他國)에서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애타게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이 보이고), 흐릿한 등잔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이 바로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진정 사랑한 정지용 시인에게 어찌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가 있겠습니까?

 

가곡 향수(鄕愁) :이동원 / 박인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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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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