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 의거(義擧)는 일본 침략에 대한 항거였을 뿐, ‘공화국’, ‘법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윤석열은 평화가 자유를 지켜준다고 했으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항거
윤석열은 작금(昨今)의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저항을 포기한 채, 일본과의 연대 모색
평화가 보장하는 자유는 항거하는 한국인이 없는 가운데 누리는 침략자 일본의 자유

 

거사 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져 육군 작업장에서 처형되기 직전의 윤봉길(1932.12.19.)
거사 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져 육군 작업장에서 처형되기 직전의 윤봉길(1932.12.19.)

대통령 윤석열의 제77주년 8.15 경축사는 논리에 닿지 않는 사설을 써대는 조선일보를 닮은 데가 있다. 우선 그가 윤봉길 의사(義士)의 의거(義擧)가 “민주공화국, 법치”를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 것 등이 그러하다.

대통령 윤석열은 8.15 경축사에서 3.1 독립선언, 상하이 임시정부 헌장과 함께 매헌 윤봉길의 독립정신을 들고, 이것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규정했다. 윤봉길은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왕 기념식에 폭탄을 던져 여러 명 일본인을 상하게 했다.

독립운동한 이가 윤봉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고명한 안중근도 있고, 밀양에 기념관을 둔 의열단 김원봉도 있고, 또 밀양 사람으로 6형제가 전 재산 털어 온통 독립에 투신한 이회영 일가도 있다. 그런데 왜 윤석열이 유독 윤봉길만 언급했을까? 아마 같은 윤씨라 부대 효과로서 공감을 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실로 윤봉길과 윤석열은 차이가 하늘과 땅 같다.

윤봉길이 거사 직전 작성한 유언장에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조선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이때 ‘조선’이란 “민주공화국, 법치”가 아니라, 침략자 ‘일본’에 대한 항거의 주체일 뿐이다. 윤봉길이 침략자에 대항하여 구하려 한 ‘조선’은 반드시 “민주공화국” 혹은 “법치” 같은 개념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윤봉길의 의거(義擧)에서 앙코 같은 알맹이(일본 침략에 대한 항거)를 쏙 빼버리고, 그 대신 엉뚱한 것(공화국, 법치)을 연결하여 사실을 왜곡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거는 구체적인 사실이다. ‘일본’, ‘침략’, ‘항거’는 각각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이 윤봉길에게 연결시키려 한 ‘민주공화국’ ‘법치’의 개념은 추상적이고, 또 거기에 담기는 구체적 내용도 일정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면, 남한(한국)과 북한이 다 그 같은 국호를 가지고 있다. 남한은 ‘대한민국(대한 민주주의 공화국)’, 북한은 ‘조선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다들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한다. 그러니 윤봉길이 일제에 항거한 거사가 어떤 일정한 ‘민주공화국’을 지향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니는 ‘법치’의 개념이 이번 경축사에도 등장했다. 그는 ‘민주공화국’과 ‘법치’의 개념을 동렬에 나열했으나, ‘민주’와 ‘법치’는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민주’는 민중이 주인이고, ‘민중이 원하는 것’이 중심인 데 반해, ‘법치’는 법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민중이 원하는 법으로 ‘법치’할 수 있겠으나, 민중이 원하지 않는 법으로 ‘법치’하면 ‘민주’가 아닌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법치’ 했다. 다만 그 법이 일본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고, 조선 민중이 원하는 법이 아니었으므로, 민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법치’해야 한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 법치는 민중이 원하는 법으로 해야 하는 것이기에, ‘법치’보다 ‘민주’가 우선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공화국’과 ‘법치’는 동류의 개념이 아니라, 때때로 모순, 상반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억압에서 조선인을 해방하고 그 인권을 구하려 했던 윤봉길의 거사는 반드시 불확정적, 추상적 ‘공화국’, ‘법치’ 등의 개념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공화국과 법치의 개념은 국가권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 권력의 크기와 정도도 일정하게 정형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봉길의 거사는 그저 억압에 대한 항거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또 윤석열은 “독립운동 정신인 자유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준다”라고 한 데서도 사실을 왜곡했다. 첫째, 독립운동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지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항거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 항거는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고 말살하는 실천이 앞서는 것이고, 그 실천은 ‘정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또 자유와 평화 이전에 고뇌와 갈등의 소산이다.

둘째, 자유를 위한 항거는 반드시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가 오기 때문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평화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영원히 내가 사는 동안 오지 않는다고 해도, 우선 억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행하는 처절한 항거의 몸짓이다. 윤봉길이 거사 직전 죽음을 각오하고 쓴 유언장에는 아무런 대가에 대한 바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억압에 항거한 대가로서의 희생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 것일 뿐, 평화라는 단물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빈 무덤 앞에 부어질 한 잔 술 이외에는.

윤봉길은 유언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있으니.”(경향신문,2015.12.18./나무위키https://namu.wiki/w/%EC%9C%A4%EB%B4%89%EA%B8%B8) 유서가 적힌 윤봉길 의사의 수첩 원본은 현재 서울중앙박물관에 미공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셋째, 윤석열의 사실 왜곡은 ”평화가 자유를 지켜준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사기성 발언이다. 자유는 억압에 대한 항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일 뿐, 평화를 통해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은 한편으로 윤봉길 의사가 자유를 지향했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평화가 자유를 지켜준다”고 무대가리 발언한 것은 윤봉길의 자기희생적 항거에 완전히 먹칠하는 것이고, 그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실로 평화가 가져오는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일면적이다. 침략자 일본의 자유가, 항거하는 한국인이 없는 가운데, 평화를 통해 지속,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정신인 자유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준다”는 윤석열의 발언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거’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 대신 평화의 개념이 전면에 등장했다. 윤석열은 ‘항거’를 평화로 윤색하고, 또 ‘항거를 통한 자유’가 아니라 ‘평화를 통한 자유’로 사탕발림했다. 그래서 윤봉길의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거’는 윤석열의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서의 일본”으로 둔갑했다.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윤석열은 한국민 80%가 반대하는 핵오염수 방류에 동조하고,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다고 해도 입 꾹 닫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윤석열은 일본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고,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일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보편적 가치는 한국민의 가치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과거사 해결이라는 것도, 일제 강제동원 관련하여, 윤석열은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면제하고, 온통 우리네 한국이 ‘더욱 노력하여’ 다 뒤집어쓰자고 한다. 강제동원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하는 그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참고로, KBS(2023.8.15.)가 전한 윤석열의 경축사에는, 윤석열이 “글로벌 복합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무너진 자유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48718). 그러나 조선일보 등이 전하는 경축사 전문에는 현재로서 이 문구가 빠져있다.

KBS가 잘못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윤석열은 경축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무너진 “자유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규정한 것인데, 현재 유포된 원문에서는 이 문구를 삭제해버린 것이다. “자유시장경제” 발언이 이번 경축사에서 실제로 있었던가 여부를 떠나서, 이것은 윤석열이 평소 주창하는 지론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자유시장경제론”은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는 경제민주화”(헌법 제119조)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규정을 위배한 것이다. 또 그 자신이 8.15 경축사에서도 주저리 늘어놓은 이른바 “약자”를 위한 갖가지 경제적 조치와도 모순된다.

윤석열이 서로 모순되는 사실들을 맥락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기만 하는 것이, 마치 윤봉길을 인용하면서, ‘일본의 침략’과 ‘항거’를 빼버리고, 그 대신 일방적 구애(求愛), 아니, 구걸의 ‘일본과의 연대’, ‘평화가 자유를 지켜준다’ 같은 초점 잃은 말을 주절거리는 것과 같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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