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2) 토요판 신문을 읽으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우연히 29면 아래쪽 <시인의 마을>에 실린 산문체 시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은 그냥 쓰~윽 읽고 지나치는데, ‘김봄희의 동시집(童詩集)에서라는 출처를 보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다 읽고나니, 무언가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의 제목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이 마음에 확 들어왔다.

그래, 왜 시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인지 이해가 가네...” 라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명시감상> 21번째로 이 동시를 소개해 보고자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 김봄희 -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마을버스가 서둘러 정류장에 들어왔어. 사람들은 우산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지. 그때 교복을 입은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거야. 다른 차를 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에 다 오를 때까지 한참 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서 있더니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는 거야. 그것을 본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한 발짝씩 자리를 옮겨 오빠가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 마을버스는 걷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 천천히 움직였지.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거야.

 

<출처> : 김봄희의 동시집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권소리 그림, 상상)에서 (=한겨레 신문 2023.9.2.토요일 29면에서 전재)

소나기가 내리는 날, 한 어린이가 종이로 비를 피하며 길을 지나고 있다. 출처 =한겨레신문 기사 (8/28 사회면)
소나기가 내리는 날, 한 어린이가 종이로 비를 피하며 길을 지나고 있다. 출처 =한겨레신문 기사 (8/28 사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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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이 시에 나타난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시적 화자(話者)를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장맛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아침 출근(등교)시간서울같은 대도시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어느 초등학교 여학생의 시선으로 본 어느 날의 풍경쯤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일 아침 출근과 등교 길은 참 바쁩니다. 그날도 아마 이 꼬마 숙녀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 아침에 우산을 쓰고 길게 서있는 뒷줄에서 00번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류장에 들어온 마을버스를 타려고 우산을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앞에서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대략 난감합니다. 우산을 미리 접자니 비를 모두 맞아야하고, 우산을 펼치고 있자니 버스에 오를 수 없고... 이때, 교복을 입고 앞줄에 섰던 어떤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것을 본 꼬마 숙녀는 저 오빠가 다른 버스를 타려고 저러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오빠는 맨 앞줄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산을 접고 버스에 오를수 있도록 한참 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지켜 서 있었던 것이었어요. (이 꼬마 숙녀도 그 덕분에 비에 젖지 않고 편히 계단에 오를수 있었겠지요?) 그리고는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 탔는데, 먼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만원 버스의 비좁은 틈새를 조금씩 벌려주어 이 오빠가 버스에 올라서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어요.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백미러로 지켜보고 있던 운전사 아저씨도 그날따라 인도를 걷는 보행자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욱 조심하며 천천히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썼더랍니다. 바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큰 우산말이지요. 그 오빠 덕분에 마을버스에 탔던 모든 사람들의 아침 출근(등교)길이 회색빛으로 칙칙하지 않고, 평소보다 더 따스하고 밝은 무지개 빛깔을 띠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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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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