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는 것은 인간지사, 속은 것을 바로 되돌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구비해야
행정부 견제 포기하고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 남의 탓만 하고 앉은 국회부터 손봐야
직무유기 식물국회가 대통령 권력까지 빼앗아 거머쥐려고 해
‘5.18’을 헌법전문에 실을 것이 아니라, 5.18정신을 헌법에 구현해야

김영호 통일부장관 (사진출처: 한겨레, 2023.6.29.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082.html?_ga=2.62217515.627307431.1695865559-224284533.1684366304)
김영호 통일부장관 (사진출처: 한겨레, 2023.6.29.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082.html?_ga=2.62217515.627307431.1695865559-224284533.1684366304)

‘2찍’이 욕을 얻어먹는다. 대선에서 잘못 2번을 찍어서 오늘의 질곡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2찍’ 탓하기 전에 문재인부터 탓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문재인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기용할 즈음에 이미 질곡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 영부인 김정숙의 발언(손혜원 전 의원을 통한 전언)에 의하면, 다른 이의 말을 듣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문재인과 김정숙)’가 (검찰총장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윤석열이 상관인 법무부장관 조국 및 그 가족을 도륙할 때(아내 정경심을 한 번의 소환조사도 없이 공소시효 소멸 직전 전격적으로 기소), 또 추미애에게 대들었을 때도 문재인은 윤석열을 거들었다.

윤석열의 말에 속았든, 그의 풍덩한 몸집에 믿음이 갔든, 그 어느 쪽이든 ‘2찍’만 탓할 일이 못 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던 최강욱 의원의 회고에 의하면, 윤석열은 검찰총장에 임명될 당시, 검찰개혁에 앞장서겠다고 호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거짓말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2찍’이 아니라 원인 제공한 문재인을 먼저 탓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2찍’이든 문재인이든 탓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속이는 것, 속는 것이 다 인간의 일이다. 의도적 기만에 속았든, 아니면 중간에 변심해서 원래의 약속을 지키지 못 했든, 그 어떤 경우라도 계획, 믿음, 기대는 그대로 현실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속이기도 하지만, 운명이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관건은 속았다고 생각이 될 때, 바로 되돌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비되어있는지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런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어떻게 뽑는지 하는 것에만 집중될 뿐, 뽑힌 이가 권력을 오남용했을 때 어떻게 견제, 처벌, 축출하는가에 대한 담론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잘못 ‘2찍’을 했다고 깨닫는 순간, 바로 축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면, ‘2찍’으로 뽑힌 공직자 스스로 개판을 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잘못하다가는 쫓겨날 판이기 때문에 미리 알아서 눈치 보고 조신(操身)할 것이 분명하다. 칼자루는 일일이 내려칠 필요도 없이,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효과가 난다.

통일부장관 김영호가 “국민이 다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하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가 된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일전에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있던 나향욱도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해야 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말이라고 함) 등 발언을 했다. 또 냄비근성, 개돼지 근성의 국민 민중이 며칠 떠들다가 곧 잊어버리고 잠잠해질 것이라는 말도 회자한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나향욱 등이 공무원 신분으로서,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등,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것이다.

나향욱의 발언 관련하여, JTBC 뉴스현장의 김종혁 대기자(앵커)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고집했던 건 무식한 개·돼지들 가르쳐 주려고 그랬었냐, 논란 많았던 교육부의 다른 정책들은 개·돼지들 희생시켜 1%를 챙겨주기 위했냐, 당신은 그리 잘나서 개돼지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냐. 어디다 대고 개돼지냐!”, 또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 조정래도 신작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나향욱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국민의 99%가 개나 돼지 새끼라면 그 세금을 먹고 사는 그는 바로 기생충이거나 진딧물일 것”이라고 했단다.

정작 문제는 나향욱과 김영호 등이 국민 민중을 무시하는 위헌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들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 자체가 국민주권의 원칙을 현실화할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향욱과 김영호는 그 같은 현실을 솔직하게 까발린 것일 뿐이다. 또 국민 민중이 며칠 떠들다가 곧 잠잠해지는 것은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다. 겉으로 잊어버린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분함을 감추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 뜻을 개진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체념할 뿐이다.

나향욱, 김영호 등이 헌법 위반의 발언을 하면, 그 자체로서 입을 닫게 할 것이 아니라, 왜 이들이 그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일까 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같은 반성은 추호도 없고, 이들을 나무라기만 하는 현실이 더 절망적이다. 말 안 하고 입 다물게 한다고 해서 그 같은 현실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주체적이지 못하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는 존재'인 것은 나향욱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현실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향욱과 김영호가 잘못 인식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 될 뻔했다. 사실, 정치적 발언권을 빼앗긴 민중을 위정자들이 잘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발언권 없는 민중은 개돼지같이 언제나 주는 대로 먹고 살아야 하고, 현 윤석열 정부 하에서 보듯이, 흔히 홀대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모든 질곡의 원인은 나향욱이나 김영호가 아니라, 국회로 환원된다. 1987년 헌법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전두환의 마수 하에 만들어진 헌법이 제대로 민주 정신을 살리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 헌법이 근 40년 다 되도록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1987년 현행 헌법은 유신헌법을 쏙 빼닮은 비민주적 대의제 관료 공화국이다. 1987년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유신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은 국민이 뽑은 대리자에 의해 행사된다”의 판박이이다.

1987년 헌법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궁극적으로 유신헌법 제1조, “국민이 뽑은 대리자에 의해 행사된다”와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만 할 뿐, 그 권력은 국민 자신이 아니라 결국 그 대리자에 의해서만 행사된다는 것이 헌법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제외하고는 유신헌법과 1987년 헌법은 대의제만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똑같다. 국민은 대의할 위정자를 선출할 뿐, 직접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헌법 제1조는 권력의 원천이 어디인가(국민에게서 나온다)를 지적하고 있을 뿐, 그 권력을 누가 행사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헌법을 통틀어 대리인(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어떻게 뽑는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국민의 직접 결정권이 거의 없다. 대통령, 국회의원, 국무위원 등에 대한 탄핵발의권도 국민에게 없다. 국민투표 부의권은 대통령만 가지고 있고(헌법 제72조), 국회에도 없다. 일정 수 서명을 조건으로 국회는 물론 국민도 국민투표 부의권을 가져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58년 드골 헌법 이래, 국민 유권자 1/10 및 의원 1/5의 서명으로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

공직자 탄핵은 국회에서만 할 수 있고, 국회가 탄핵하지 않으면 국민은 하릴없으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300인 국회의 과두(寡頭)공화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는 국민 민초의 정치적 결정권을 가능한 한 빼앗고, 정치에서 배제하려고 든다. 대통령 직선제도 김 빼려고, 대통령의 권한을 빼앗아서 국회 중심의 의원내각제 혹은 국회에서 뽑는 총리에게로 그 권한을 넘기려고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민주적 1987 헌법을 앞에 두고, 국회는 “국민 민중이 개돼지 취급받지 않도록 하자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위정자들끼리 권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겨우 개헌이라고 입을 떼면, 대통령 4년 중임제, 아니면 의원내각제(국회의장 김진표 등), 아니면 “5.18을 헌법전문에 싣도록 ‘원포인트(한 가지만) 개헌하자”(이재명) 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 하고 있다.

5.18을 헌법전문에 싣는다고 해서 헌법 자체가 자동으로 5.18 정신을 구현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5.18을 헌법전문에 싣자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5.18정신을 헌법 자체에 구현해서, 국민 민중이 개돼지 신세를 면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탐욕하고 비겁한 국회는 믿고 있어 될 일이 아니다. 정철승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검찰이 과도하게 여러 차례 강진구의 더탐사 압수수색을 하려 했을 때, 자신이 나서서 항의했고, 그런 다음 부당한 압수수색이 사라졌다고 한다. 더탐사 외에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그런데 검찰이 727일 동안 3개 검찰청(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성남지청), 70여 명 검사가 야당대표를 376회 압수수색을 벌일 때, 고명한 국회는 가만 입 다물고 있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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